“우리가 사고가 나라고 등 떠밀어 보내지는 않아요. 저희도 공동책임이 있어서 송구하다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든 고인을 살려 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기도도 했지만, 이런 결과가 나와서 안타까워요. 유족들이나 저희 다 힘든데 참 난감하네요.”

안전조치 없이 홀로 전기 연결 작업을 하다가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고 김다운(38)씨를 고용한 한국전력공사 하청업체 대표가 사고 발생 2개월 만에 전화로 유족에게 한 말이다. 원청 한전은 물론 고인을 고용한 하청업체 누구도 유족에게 사고와 관련한 제대로 된 설명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유족은 회사에 수차례 사고 경위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시종일관 회피로 일관한다고 호소했다. 하청 대표는 현재 고용노동부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은 상태다. 유족은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했다.

“왜 혼자 보냈나” 질문에 “송구하다”
두 달 만에 연락하더니 “2시간 기다렸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신사역 근처 카페에서 고인의 매형 장아무개(47)씨를 만나 사고 이후 상황을 들었다. 이날 장씨는 하청업체인 ‘화성전력’ 윤아무개 대표와의 통화 녹취(기사 상단 파일 참조) 내용을 들려줬다. 하청업체 대표의 발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씨에 따르면 윤 대표는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이 흐른 지난 5일 유족에게 도울 방법을 물었다. 첫 언론보도 이틀 뒤다. 다운씨는 지난해 11월5일 감전사고를 당한 뒤 사경을 헤매다 같은달 24일 숨졌다.

윤 대표는 5일 오후 4시께 유족과의 통화에서 “송구하다”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장씨가 “왜 사고가 났는지 솔직한 내용을 듣고 싶다”고 묻자 윤 대표는 “제가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현장 대리인이 직접 다 말한 것으로 안다”고 답변을 피했다. 재차 “(다운이를) 왜 혼자 보냈냐”고 물었지만, “이렇게 물으면 더 드릴 말은 없고, 송구하다는 말밖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또 대표가 노동자를 직접 현장에 투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다운씨 누나가 “사고 첫날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말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직원들 모두 ‘작대기만 올리면 되는 간단한 작업인데, 걔가 눈에 뭐가 씌였는가 보다’는 식으로만 말했다. 이후 전화 한 통화도 없었다”며 사고 경위를 재차 물었다. 하지만 윤 대표는 “경황이 없었다. 경위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말만 반복했다. “중대사고인데 이제야 파악하느냐”고 따지자 “정확히 전달된 줄 알았다”고 했다. “(다운이) 혼자 왜 보냈냐. 활선차(고소절연 작업차)는 왜 안 보냈냐”는 질문에도 그는 “지침에는 혼자 갈 때 활선 차량이 꼭 가야 한다고 돼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더는 대화가 안 된다고 판단한 장씨와 누나는 전화를 끊었다.

윤 대표는 오히려 자신이 연락하고 나서 회신이 올 때까지 2시간 이상 기다렸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날 오후 3시께 다운씨 누나에게 ‘5분 후에 전화 준다고 해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16분 뒤 다시 회신을 재촉했다. 장씨는 “유족은 두 달이 넘도록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는데, 고작 2시간 기다린 것이 그렇게 어려웠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고 김다운씨의 비석. <유족 제공>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고 김다운씨의 비석. <유족 제공>

한전 관계자, 끈질긴 요구에 겨우 접촉
유족 “사고 경위 어떠한 답변도 없어”

유족은 화성전력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고 분노했다. 사고 발생 소식을 다운씨의 전 직장 동료를 통해 들었고, 병원 이송 이후에도 사고와 관련 없는 직원만 왔다고 주장했다. 화성전력 현장소장은 사고 6시간 만에 나타나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저야 모르죠. 119가 알아서 했으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전의 태도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한전측은 다운씨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 몰랐다고 했지만, 현장에는 한전 직원이 있었다. 사고 최초 목격자였다. 유족은 이 사실을 전 직장 동료에게 들었다고 전했다. 사고 이후 화성전력이 산재를 신청하라며 소개해 준 회사측 노무사를 통해 현장 직원 연락처를 처음으로 받았다. 한전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유족이 현장 직원에게 만나자고 요구했지만, ‘정신적 충격’을 이유로 거부했다. 끈질기게 미팅을 요구하자 사고가 난 지 보름이 지난 11월20일에서야 한전 여주지사 차장이 현장 직원과 함께 경기도 여주의 한 카페에 나타났다. 이 자리에서 한전측은 다운씨가 다른 하청업체 담당구역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한전측은 “사고가 발생한 전기공사 현장은 재해자가 근무하고 있는 화성전력의 계약지역이 아닌 또 다른 하청업체인 ㄷ사 작업구역이었다”고 설명했다.

한전이 해당 구역의 송전 작업을 위해 ㄷ사에 작업을 지시했는데, ㄷ사는 다른 작업으로 인해 사고 현장의 전기 작업에 인력을 투입할 수 없어 화성전력 소장에게 대신 작업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유족은 여주지사 차장에게 업무 지시와 관련해 ‘정확한 정보’를 요구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어떠한 답변도 없는 상태다. 한전 여주지사장 역시 장례식장에 왔지만, 유족에게 자신의 연락처는 알려줄 수 없다면서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조사에 들어간 노동부도 유족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장씨는 “여주경찰서 형사를 통해 노동부가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언론보도 이후 노동부 직원의 연락처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주경찰서와 수사를 공조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유족의 연락처는 알기 쉬웠을 것”이라며 “노동부가 노동자의 얘기에 귀 기울여야지 기업을 대변하면 그게 기업청이지, 노동부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고 김다운씨의 발인 모습. <유족 제공>
▲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고 김다운씨의 발인 모습. <유족 제공>

아버지 사망에 이어 아들까지 잃어
예비신부 충격 “반찬 상했는데 버리지 못해”

현재 유족은 악몽 같은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고인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1년6개월 전 세상을 떠났는데, 다운씨마저 불의의 사고로 숨졌기 때문이다. 다운씨와 한 살 터울인 누나는 약이 없으면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장씨는 “다운이 상태가 너무 심각해 어머니에게는 면회를 시켜 주지 않았다”며 “입관식 할 때도 장례지도사에게 붕대로 감아 달라고 했다”고 울먹였다.

특히 예비신부는 코로나19 탓에 면회조차 하지 못해 유골함으로 다운씨를 안아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장씨는 “예비신부가 한참 만에 함께 살던 집에 갔는데 다운이가 만든 찌개와 반찬에 파랗게 곰팡이가 폈는데도 차마 버리지 못했다고 울먹이더라”며 “다운이도 눈을 감으면서 예비신부에게 제일 미안하지 않았을까”라고 눈물을 흘렸다.

유족은 안전규정상 2인1조 작업을 해야 하는데도 다운씨가 홀로 현장에 투입되고 일반 트럭으로 이동한 경위를 끝까지 밝힐 계획이다. 장씨는 “한전과 하청이 다운이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재해가 아닌 살인이다. 다운이를 사지에 내던졌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작대기만 올려서 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라면 하청 대표도 한번 해 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은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결혼을 앞둔 제 동생을 죽음으로 내몬 한전과 하청업체의 강력한 처벌을 요청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9일 현재까지 2만여명이 동참한 상태다. 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한전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오후에는 전남 나주 한전 본사를 방문해 사고 경위를 따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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