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본부

“밥은 언제 먹나요?” “시간외수당은 주나요?”

신규간호사가 해맑게 묻는 말에 교육을 담당하는 경력 7년차 프리셉터 간호사 윤주는 “먹지 않아야 싸지 않는다”고 답한 뒤 “뛰는 것처럼 걷자, 나는 것처럼 걷자”는 불가능한 요구를 반복한다. 쏟아지는 업무량과 부족한 인력 속에서 ‘날아다니지’ 않고서는 도저히 업무를 소화해 낼 수 없는 탓이다.

불규칙한 3교대 근무로 4시간 자고 출근하며 ‘좀비’가 돼 버린 윤주도, 10주 교육만에 업무에 투입된 실수투성이 신규간호사도, 매일같이 온콜 당직에 불법의료에 내몰리는 PA간호사 성주도, 메르스와 코로나19 전사로 현장을 지키는 경주도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짬을 내 끼니를 때우려고 비품실을 찾는다.

코로나와 교대근무로 소진되는 간호사들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안양 안양아트센터에서 극단 낭만유랑단의 연극 의 막이 올랐다. 극단은 식욕·수면욕·성욕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조차 포기하게 되는 간호사들의 노동환경에 주목했다. 이날은 일반 대중이 아닌 경기지역 의료기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마지막 공연이었다. 극단은 지난달 9일부터 경기도 파주와 수원에서 각각 네 차례, 세 차례 공연을 하고 지난 14일부터 안양아트센터에서 네 번의 공연을 했다.

보건의료진을 대상으로 연극을 하자는 제안은 보건의료노조 경기본부(본부장 백소영) 아이디어다. ‘코로나 블루’에 시달리는 조합원들에게 단체협약상 공가로 인정되는 ‘조합원 하루교육’ 행사로 강의 대신 연극을 보고 마음을 치유하자는 취지였다. 본부는 지난 7월 경기도와 정책간담회 자리에서 심리치유연극 사업을 제안했고 경기도 예산과 경기도의료원 지원을 받게 됐다. 백소영 본부장은 “지난 4월 지부별 교육을 진행할 때 간호사들의 코로나 블루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연극으로 제3자를 통해 나의 모습을 보면서 치유를 받고, ‘넌 멍청이가 아니야’같은 대사들을 통해 위로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보다 무게가 두 배 가까이 나가는 중환자를 스포츠 경기처럼 들어올려 체위를 변경하는 장면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마스크조차 지급받지 못해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진 요양보호사에게 방호복을 입은 채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장면이나, PA간호사 성주가 수술 후 사망가능성을 고지하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내몰린 장면, 윤주가 환자의 발톱을 보고 업무에 지쳐 “내가 나무를 보는 건지, 사람을 보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에서는 관객들 모두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연극 말미에는 14년차 간호사 안애리 한림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의 독백이 이어졌다.

▲ 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본부
▲ 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본부

극단, 2016년 임신순번제·2019년 태움 다뤄

이날 연극은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일산 동국대병원·성남시의료원·아주대의료원·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한림대의료원 소속 조합원 120여명이 관람했다. 본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전체 관람객은 약 3천명이다.

이번이 네 번째 관람이라는 아주대의료원 14년차 간호사 박아무개씨는 “처음에는 발톱 장면이 잘 이해가 안 됐는데 오늘은 이 장면이 가장 뭉클했다”며 “인수인계 때 업무가 쏟아지는 장면은 현실과 너무 똑같았다”고 말했다. 한림대의료원 25년차 간호사 백혜성(44)씨는 “배우가 나이팅게일 선서를 읊을 때 잊고 있던 원칙과 윤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며 “자책하는 신규간호사를 보고 ‘저렇게 힘들겠구나’ 하고 공감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연극 <섹스인더시티>는 2016년 당시 ‘임신순번제’와 메르스 사태에 주목했고 2019년에는 태움(직장내 괴롭힘) 문제를 중심으로 다뤘다. 연출을 맡은 송김경화씨는 “당사자들 앞에서 연극을 하는 게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관객들이 점점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현장도 뜨거워졌던 것 같다”며 “드라마 속 간호사는 ‘어리숙한’ 보조 역할로 소비돼 왔는데 임신순번제 같은 기본적 욕구와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환경 등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 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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