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대정부투쟁에 나선 한국노총 금융·공공기관 노동자들은 “참을 만큼 참았다”고 외쳤다. 공공기관의 예산과 인력·평가까지 틀어쥔 기획재정부를 정점으로 정부가 정책실패를 공공기관에 전가하고, 마치 ‘내부의 적’ 취급하고 찍어누르며 켜켜이 쌓인 불만이 임계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18일 대정부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2주간 집중투쟁을 하며 정부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안 철회 △노동이사제 도입 △사내대출 혁신지침 철회 △임금체계 개편 중단 △임금피크제 폐지 △경영평가 제도 개선요구 수용을 촉구했다. <매일노동뉴스>는 금융·공공부문 노동자의 대정부투쟁을 이끄는 공공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가나다 순) 대표자를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26일 오후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류기섭(52·사진) 공공연맹 위원장을 만났다.

풀리지 않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자회사 정규직으로 처우개선 공염불”

-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노동정책을 평가한다면.
“부정적이다. 이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정부다. 초기에는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이었지만 점차 정체했다.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은 직무급제와 교환했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의 합의로 속도를 내려 했지만 묵묵부답이다. 여당 의원 3명이 발의했는데 들리는 말로는 기재부가 반대한다고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어떠한가.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했지만 결과는 자회사 편입이다. 처우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는 어떤 상황인가.
“지난해 공무직위원회를 만들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공공부문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노정 대화기구였다. 약 1년6개월이 흘렀는데 사실상 성과는 없다. 논의 내내 쳇바퀴 돌 듯 시간만 지연했다. 정부는 일종의 무기계약직 지위로 전환한 한 가지를 두고 공무직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고 이야기한다. 모순이다. 실질적인 근로조건과 임금 개선까지 포함해야 처우개선이다. 임금 문제를 보라. 현재 1년 일한 노동자나 10년 일한 노동자나 임금이 같다. 그사이의 숙련이나 경험이 인정되지 않는다. 임금도 결국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러면서 직무급제를 통한 공무직 간 임금격차 해소만 강조한다. 직렬이나 직무에 따른 임금차이는 노동계도 인정한다. 그런데 20년을 일해도 1년 일한 사람과 15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를 어떻게 해소할 거냐. 그것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실태조사를 하자고 한다. 결국 공무직 처우를 개선한다는 보여주기식, 전시용 요식행위다.”

류기섭 위원장과의 인터뷰 이후 공무직위원회가 31일 공무직 인사관리 가이드라인과 임금·수당 기준 마련 계획을 확정했다. 이에 대해 류기섭 위원장은 추가 답변을 보내왔다. 그는 “만시지탄이나 합의에 긍정적인 대목이 없지 않다”면서도 “합의가 주로 중앙부처 공무직 위주 내용으로 구성돼 공공기관 자회사나 공공기관 내 공무직 같은 열악한 노동자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접근이 없다. 앞으로 논의에서 이런 대목을 더욱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류 위원장은 “이번 합의가 지지부진했던 공무직위 논의에 대한 평가를 뒤집을 정도도 아니기 때문에 향후 더욱 속도감을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산재처리 지연 해소 인력 요청에 기재부 칼질”

- 공공부문 노동문제 핵심에 기재부가 있다고 보나.
“단적인 예가 있다. 근로복지공단이다. 이번에 산재처리 지연 해소를 위한 인력을 요청했는데 반토막도 아니고 10분의 1만 줬다. 그 결정을, 인력심의를 하면서 해당 기관 사람들 이야기조차 들어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찾아올 필요도 없다는 것 아닌가. 자신들이 밀실에서 재단할 테니. 도대체 인력 배정의 원칙은 어디 갔나? 업무량과 필요성 등을 분석하고 인원을 측정해야 하는데 기재부가 총량을 정해 두고 나눠 주는 식으로 하니 문제다. 줄을 세우고 잘보이는 조직에 예산과 인력을 더 주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사업은 늘기만 하지 줄지 않는다. 필요 없어진 사업이라도 법을 폐지하지 않으면 공공기관은 인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계속 새로운 사업을 만들고 요구하면서 인력을 기재부가 틀어쥔 것이다.”

- 주무부처 책임은 없나.
“당연히 있다. 주무부처가 기재부에 항의해야 한다. 기재부와 갈등을 빚기 싫어서 조용히 있는 것이다. 기재부 앞에서는 다른 부처도 을이 되니까 그렇다. 해당 기관에는 기재부 핑계를 대고, 기재부 앞에서는 조용히 있는 게 구조적 문제다. 이 때문에 기재부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바꿔야 한다. 이게 이번 투쟁의 목적이다.”

- 그런 행태가 기관의 경영을 저해하나.
“물론이다. 공공기관은 각자의 설립근거 법률을 갖고 있다. 목적사업이 있는 것이다. 결국 공공기관이 사업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평가는 기재부가 아니라 국회가 해야 한다. 법률로 만든 곳이니 당연하지 않나. 그런데 기재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도입한 뒤 국회의 감시는 뒷전이 됐다. 경영평가에 대응하려고 필수 인력을 다른 사업에서 차출해 지표를 맞춘다. 이를 규제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다. 책임 방기다. 경영평가를 폐지하고 국회의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LH 쪼개기는 보여주기식·여론무마용”

- 6대 요구안을 점검해 보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문제가 크다.
“보여주기식이라 그렇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는 기관으로 본다는 생각까지 든다. 고위급 자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아쉬우면 책임 떠넘기고 꼬리를 자른다. LH가 그 전형이다. 부동산 정책을 실패하니까 LH에 책임 떠넘긴 거다. 지금 구속조사 상태일 뿐 무슨 결론이 난 것도 아닌데 공사를 쪼갠다고 한다. 대체 왜 사업을 개편하고 조직을 쪼개야 하는지 노조뿐 아니라 관련 전문가들도 문제제기하지 않는가. 이게 부동산 투기 근절대책이냐고 한다. 그저 보여주기식, 여론무마용 정책으로 밖에 평가할 수 없다.”

- 직무급제도 논쟁이 격렬한 사안인데.
“직무급제는 공공의 영역에 맞지 않다. 호봉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호봉제도 애초 재계가 능력 있는 인재를 저임금으로 묶어 놓으려는 의도로 도입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비용이 크니 직무급제를 하자고 한다. 직무급제를 한다고 치자. 공공부문 안에 있는 기관 간 차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는 그저 성과연봉제 구호를 직무급제로 바꿨을 뿐이다. 특정 직무가 지나치게 어렵다면 해당하는 인력을 더 투입해 1인당 업무 총량을 낮추고 승진인사에 반영할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방법을 무시하고 직무급제만 하자는 게 최선인가? 추상적인, 내용도 없는 직무급제를 공공노동자를 타깃으로 삼기 위해 여론몰이 하고 있는 것이다.”

-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도 유사하지 않나.
“똑같다. 강제 도입 안 한다던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이고 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외면한다. 우리는 우선 임금피크제가 공공부문에 맞지 않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본다. 중앙부처쪽 공공기관은 정년을 57세에서 60세로 늘리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정황이 있다. 지방공기업은 이미 정년이 60세였기 때문에 오로지 노동조건 후퇴에 다름 아니다. 강압 때문에 도입됐다. 바로잡아야 한다. 폐지가 어렵다면 국민연금 수급시기와 연동해 정년을 늘리면서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기재부는 아예 모르겠다며 또 실태조사를 하자고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로 어려움이 크다. 지난 기자회견도 한 명씩 릴레이로 했다. 코로나19의 주된 감염경로는 비말을 통한 전파 아닌가. 그런데 실외에서 마스크 쓰고 하는 집회를 못 하게 하는 것은 결국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집회에 대한 거리 두기를 따로 만드는 게 맞다. 결국 정부에 대한 쓴 소리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