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국노총 금융·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대정부투쟁을 시작했다. “집권 내내 노동이사제 도입 같은 약속은 지키지 않고 정책 실패 책임을 공공기관에 전가하고 사회적 대화 와중에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를 활용해 ‘땅굴’을 팠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이들은 지난 18일 대정부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2주간 집중투쟁을 하며 정부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안 철회 △노동이사제 도입 △사내대출 혁신지침 철회 △임금체계 개편 중단 △임금피크제 폐지 △경영평가 제도 개선요구 수용을 촉구했다. <매일노동뉴스>는 금융·공공부문 노동자의 대정부투쟁을 이끄는 공공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가나다 순) 대표자를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첫 순서로 25일 오후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박해철(56·사진) 공공노련 위원장을 만났다.

“성과연봉제·2대 지침 폐기 기대 걸었는데
전권 틀어쥔 기재부, 정권 말 갈수록 전횡”

- 대정부투쟁의 배경과 의미가 궁금하다.
“전권을 틀어쥔 기획재정부의 전횡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부문 노정관계는 긍정적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성과연봉제와 2대 지침(공정인사 지침·취업규칙 관련 지침)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철회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기대감이 커졌다. 그러나 정권 말로 갈수록 기재부의 전횡이 두드러지고 노정관계를 위협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자기들 나라로 여기는 기재부를 반드시 해체해야 한다.”

-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달라.
“사례는 쌓여 있다. 우선 직무급제가 있다. 서비스 대상이 국민이고, 순환근무를 하면서 다종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는 공공기관 특성상 직무급제의 직무를 무 자르듯 구분하기 어렵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게 임금체계 개편이다. 기재부는 이를 무시하고 직무급제만 도입하면 다 해결되는 양 호도한다. 호봉제는 나쁘고 직무급제는 좋다는데, 실제로는 내용도 없다. 오죽하면 수당에 직무라는 수식어만 달아도 직무급제를 도입했다고 할 정도다. 정부가 직무급제에 대한 철학이 없어서 그렇다. 그런 내용을 사회적 대화 도중에 경영평가 편람에 끼워 팔기 하면서 불신을 자초했다.”

- 임금피크제 갈등도 지속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도 공공부문에 맞지 않는다. 직무분석도 안 돼 임금피크제 대상에 된 57세 이상 노동자는 고려장당하듯 부서를 옮긴다. 이런 인력이 기관마다 5~10% 정도 된다. 문제는 이런 인원들에 대한 젊은 층의 반감이다. MZ(밀레니얼·Z)세대 입장에서는 하는 일 없이 고연봉을 타 가는 노동자가 아니꼬울 수밖에 없다. 임금피크제 대상 인원은 할 일이 없고, MZ세대는 이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세대 갈등이 지금 현장에서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문제를 기재부도 다 안다. 그런데 고치려 하지 않는다. 묻고 싶다. 직무급제와 임금피크제가 그렇게 훌륭하고 임금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라면 왜 정부는 (공무원에게) 도입하지 않는가. 왜 솔선수범하지 않는가.”

부동산 정책 실패를 LH에 전가하는 정부

- 기재부가 공공부문 세대 간 갈등을 방조한다는 것인가.
“정부는 항상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 LH가 대표적이다. LH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실제로 수행해 온 기관이다. 4명의 임직원이 조사 결과 구속됐다. 이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하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나. 문제는 정치적 목적에서 조직을 쪼개자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해체 운운한 시점 자체가 지난 4·7 재보궐선거 당시다. LH 투기 의혹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정부의 25차례 부동산 정책 실패가 배경이다. 발표할 때마다 아파트 값이 뛰었다. 정책실패다. LH를 해체하면 실패가 치유되는가. 오히려 LH가 담당해 온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지역균형발전 기능 약화가 우려된다지 않는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책임을 묻겠다며 박근혜 정부가 해양경찰청을 졸속으로 해체했다가 해양안전에 구멍이 생겨 2017년 7월 부활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 정부의 정책실패를 공공기관에 전가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꼬리 자르기다. LH 통합은 13년간 했는데 해체는 3개월 만에 결론지었다. 이런 내용을 국토교통부가 발표했는데 사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은 그들이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정책을 누가 짰나. 주거복지를 위한 비용부담을 외면해 대규모 택지개발에서 얻은 개발이익을 주거복지에 투입하도록 조직을 만들어 놓은 게 누군가. 정부 아닌가. 지금도 보라. 340개 공공기관 가운데 66곳이 도입한 사내대출 제도에 엄격한 대출규제를 적용하겠다고 한다. 부동산 때문이라고 한다. 공공기관 66곳의 사내대출 제도가 아파트 값 폭등을 불렀나. 아니다. 게다가 지금 해당 제도를 이용할 대상은 한창 내 집 마련이 필요한 공공기관의 젊은 노동자들이다. MZ세대다. 이미 이 제도를 활용해 집 살 사람은 다 샀다. 그런데도 공공부문 노동자, 그중에서도 일부에서만 운용하는 제도를 표적 삼아 부동산 문제의 원흉으로 표적 삼아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수익성·정책지표 내리꽂는 경영평가 제도
“기재부 손 떼고 다양성 수용해 개편해야”

- 공공기관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은 경영평가 제도다.
“기재부는 예산과 인력 배정의 주무부처이자 경영을 직접 평가하는 권한까지 갖고 있다. 기재부에 찍히면 예산·인력에 손해를 보고 평가점수가 낮아 성과급에서 손해를 본다는 것을 모두 안다. 고쳐야 한다. 공공기관 운영은 공공기관의 설립 목적에 맞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재부 입맛대로 정책지표를 신설하고 수익성을 강조하는 지금 평가를 고쳐야 한다. 우선 공공기관 평가 업무를 기재부에서 떼어내야 한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이나 국무총리실 산하로 옮기고 위원회 구성도 사회적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한다. 경영평가위원도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의 다양성 증대로 대국민 서비스도 다양성 강화가 필수인 시기다. 관료와 관변학자 위주의 수익성 중심 평가는 더 이상 효용성이 없다.”

- 공공기관 운영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위해 노동이사제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안 됐다. 지난 수년간 이야기했고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였음에도 입법이 안 됐다. 20대 국회까지는 여당이 과반수가 아니어서 어려웠다고 쳐도 21대 국회는 조금만 더 보태면 개헌도 가능한 수준이다. 사회적 이견이 많다고 해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 합의까지 했다. 그런데도 입법은 없었다. 정부와 여당이 의지가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 심지어 여당 일각에서는 다음 대선 공약에 넣겠다는 말까지 했다. 현 정부도 못하는데 무슨 다음 대선이냐고 화를 버럭 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최근 당 지도부를 만나 동지들 볼 낯이 없다고 강한 의지를 전달했다. 사실 노동이사제는 하려고만 하면 기재부 ‘지침’ 하나로 해결될 문제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운영지침을 만들면 다 따라야 한다. 그게 싫으니까 입법 핑계 대고 사회적 이견이나 재계 반대, 야당 반대 핑계 대는 것이다.”

- 앞으로 투쟁계획은.
“기재부를 대상으로 한 집중적인 문제제기를 2주간 집회와 기자회견, 피케팅으로 했고 이런 행동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2주간 집중 집회 이후에는 국회 앞에 농성장을 설치해 국회 대응을 강화할 방침이다. 물론 기재부를 규탄하는 집회는 매주 지속한다. 기재부가 일방통행하고 있는 사내대출 규제를 비롯해 노동이사제나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개편 같은 내용은 국회의 역할이 크고, 앞으로 국정감사도 예정돼 있어 국회 차원의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간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이번 정부에 희망을 걸고 대화에 응하면서 여러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집권 말기 이른 지금 노동이사제 입법도 안 됐고 임금피크제 같은 문제도 해소되지 못했다. 다시 공공부문 노동자의 투쟁의욕을 고취시키고 불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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