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S리테일

편의점의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에 엄지·검지 손가락을 그렸다는 이유로 포스터 디자인을 한 여성노동자가 징계를 받았다. 31일 GS리테일은 해당 포스터 제작을 맡은 마케팅팀장을 보직 해임하고 디자이너에게는 징계를 내렸다고 밝혔다. 조윤성 GS리테일 사장은 겸임했던 편의점 사업장직에서 내려왔다. 디자인 담당 직원의 징계수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GS리테일측은 징계당사자에게만 통보했다고 밝혔다. 다만 소속기업 인증 절차를 통해 가입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마케팅팀장은 평사원 강등, 해당 디자인 직원은 해고됐다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 무방비로 노동권 박탈

포스터가 문제가 된 것은 일부 SNS에서 엄지와 검지의 손 모양이 ‘메갈리아’를 상징이라는 주장 때문이었다. 메갈리아는 일베 등에서 만연한 여성혐오 행태를 그대로 따라하는, 일명 미러링 방식을 사용하던 인터넷사이트다.

논란이 커지면서 GS리테일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포스터를 전면 수정했다. 해당 디자이너는 “손의 이미지가 메갈리아나 페미니즘을 뜻하는 표식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며 “어떤 사상을 지지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조윤성 사장은 이달 초 가맹점주들에게 보낸 글을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해 저를 포함한 관련자 모두 철저한 경위를 조사하고 사규에 따라 합당한 조치를 받도록 할 것”이라는 방침을 전했다. 진상조사가 결국 징계로 이어진 것이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이라는 여론몰이에 노동권이 침해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게임·웹툰 등 디지털콘텐츠 분야에서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쓰인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페미니즘 이슈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업무배제와 해고를 요구하고 회사가 이를 수용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근로기준법은 성별이나 국가, 신앙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피해를 입은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웹툰 작가 6명은 2018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국가인권위는 “게임업계 내 여성 혐오 및 차별적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진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리랜서인 5명의 피해자는 노동자가 아니어서 국가인권위원법상 고용영역에 해당하지 않아 조사대상이 될 수 없고, 노동자 신분이던 1명은 피해사실이 1년 이상 경과해 진정시기가 지났다는 이유였다.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지회에 따르면 피해 노동자들은 여전히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일감을 수주할 수 없어 해외에서 일을 조달하거나 일을 해도 자신의 이름을 숨기는 등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별과 혐오 조장 원천 금지해야”

GS리테일 디자이너의 경우 정규직이기 때문에 노동위원회에서 부당징계와 관련한 다툼을 벌일 수 있다.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사용자가 징계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해당 행위가 비위행위거나 과실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번 사건에서 사측이 남성혐오라는 주장에 합리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 대단히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회사가 진상조사를 하기도 전에 사과문부터 발표한 점도 문제다. 사용자에게는 고객의 폭언이나 폭력으로부터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올해 1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업무와 관련해 고객 등 제3자의 폭언 등으로 노동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노동자가 이 같은 조치를 요구할 때 사업주가 이를 이유로 해고하거나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 노무사는 “고객응대 노동자에 국한했던 감정노동 보호조치를 전체 노동자로 확대한 것”이라며 “하지만 이 조항은 10월부터 시행해 현재는 적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시민사회단체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혐오와 차별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국민동의청원 중인 차별금지법은 성별 등을 이유로 적대적·모욕적 환경을 조성하는 등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줘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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