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3월2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촛불혁명 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10일 출범 4주년을 맞는다.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노동개혁 의제 중 일부는 실종됐다. 적폐청산을 목적으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제안했던 15대 개혁과제를 고용노동부는 이행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의 강력한 리더십 없이 고용노동정책 전반을 관료 중심으로 수립·구상하고, 이에 따라 노동부는 목적의식 없이 바람 따라 흘러 다니는 유령선과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적폐청산 저항했던 노동부

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노동부는 고용노동행정개혁위가 제안했던 15대 개혁과제 대부분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 적폐청산은 첫걸음부터 느렸다. 조대엽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벽을 넘지 못한 뒤 새로 임명된 김영주 장관은 2017년 8월14일에야 취임했다. 고용노동행정 분야에 오랫동안 쌓인 폐단,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목적의 개혁위는 같은해 11월 출범해 이듬해 7월까지 활동했다. 예정 활동기간보다 3개월 연장해 운영됐다. 조사범위가 광범위했기도 했지만 노동부 내부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영향이 컸다. 개혁위 위원장으로 참여했던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관련 자료를 부서에 요구하면 없다고 하거나 제출을 질질 끌기도 했다”며 “불법파견·부당노동행위·권력개입 같은 적폐사건은 강하게 저항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개혁위 활동 고비고비는 당시 김영주 장관이 직접 나서야 해결되곤 했다.

개혁위는 조사권한은 없었지만 적지 않은 성과를 만들어 냈다. 삼성전자서비스와 현대자동차·기아 불법파견을 확인하고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고, 외압에 의해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 처분을 했고, MBC·한국철도공사에서 벌어진 합법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사실 등을 확인했다. 이 같은 조사를 토대로 15대 개선과제를 제안했다. 노동행정·근로감독·노사관계·산업안전·권력개입외압 방지 분야에서 노동부가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부당한 노동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5명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확대를 즉시 추진하라고 제안했다. 사업장 근로감독은 사전 통보하지 않고 방문하는 불시 근로감독을 원칙으로 삼고 감독 중 내용을 한국경총 등에 알려 주는 사례가 반복하지 않도록 근로감독관집무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관 교체 과정 개혁과제 자취 감춰

개혁위 권고를 담은 백서를 건네받은 당시 김영주 장관은 한 달여 뒤 사임하며 이행 책임을 후임 이재갑 장관에게 넘겼다. 2018년 10월 취임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장관은 “전임 김영주 장관께서 (개혁위 15대 과제 권고를) 잘 이행하겠다고 말씀하셨고 저 또한 충실하게 이행할 생각”이라면서도 “다만 그중 일부 과제는 사실관계 검토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관계가 틀린 일부 과제가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이재갑 장관 취임 후 적폐청산이라는 말은 노동부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는 국민취업지원제 도입·고용보험과 산재보험 적용확대 추진 과정에서 노동부 입지를 넓혔지만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최저임금 1만원 의제 등에서 재계 요구를 대부분 수용해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집단적 노사관계 분야에서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노동부가 권고를 하나도 이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용보험기금으로 박근혜 정권 노동정책을 홍보하고 노동계에 외압을 가한 혐의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김현숙 전 고용복지수석을 검찰에 수사의뢰하라는 권고는 수행했다. 다만 수사의뢰는 김영주 장관 재임 중이던 2018년 3월 일이다. 이 사건에서도 노동부는 조직보위에 충실했다. 개혁위 위원들의 말에 따르면 이 조사에서 노동부 공무원들은 예산 불법 사용 지시자로 김현숙·이병기 두 사람의 이름은 대면서도 당시 장관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비정규직 관련 국정과제 행방불명
“초대 장관 개혁 실패, 이후 관료통제 강화”

노동개혁에 미온적인 모습은 청와대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는 2017년 6개 국정과제와 26개 세부 실천과제를 제시하며 일자리 질 개선과 이를 위해 산업구조·노동시장 개편을 추진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사용사유 제한 등을 포함한 비정규직 감축 로드맵 제시, 부당해고 구제절차 개선, 차별시정 제도 개선, 노동존중 사회 기본계획 수립,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 금지, 1년 미만 노동자 퇴직급여 보장 등을 공약했다. 이 가운데 차별시정제·부당해고 구제절차 개선만 노동부가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 나머지는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도 국정과제 다수가 빠져 있다. 고용노동정책을 담당하는 청와대·노동부가 공약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언제, 어디에서 꼬이기 시작했을까. 한 노동 분야 전문가는 “보수정권 장기화로 적폐와 관련 인물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이유로 김영주 전 장관은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며 “재임 기간은 너무 짧았고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곧바로 관료 장관으로 이어지면서 개혁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했다. 개혁위에 참여한 한 인사는 “청와대·노동부를 관료가 점령하면서 개혁·혁신보다는 현안 관리·대응 위주로 고용노동행정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개혁위 권고 이행 로드맵을 만들어 추진해 주기를 기대했지만 현실화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지난 7일 취임한 안경덕 장관 체제는 달라질까.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 적용과 유급병가 추진 의사를 피력했지만 사회적 논의를 하거나 전문가 검토를 거치겠다며 시점을 못 박지 않았다. 정부 초기 발표 시점을 명시했던 포괄임금제 지침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터라 그의 공언이 언제 지켜질지는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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