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30일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오피스텔 신축 공사장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건설 노조 조합원들이 충돌했다. <건설노조>

‘주먹질, 고성, 욕설, 부상’

최근 강원도 원주시를 비롯한 지역에서 벌어진 양대 노총 건설 노조 조합원들의 충돌 현장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단어다.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노조 간 갈등이 물리적 폭력이 동원될 정도로 거칠다는 것을 방증한다.

지난달 22일 양대 노총 건설 노조 조합원들이 충돌한 원주시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는 주먹질과 욕설·고성이 오간 끝에 20여명이 다쳤다. 일부는 전치 8주의 중상을 입었다. 올해 1월부터 원주지역 건설현장에서는 두 건설 노조 조합원 충돌이 잇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오피스텔 신축 공사장에서도 올해 1월 말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해고당했다고 주장하며 항의 집회를 하던 중 출근하던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부딪혔다. 일부 조합원들이 다친 당시 상황에 대해 민주노총은 “쌍방 다툼이 아니며 한국노총 조합원이 우리 조합원들을 집단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현장에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30명가량, 한국노총 조합원이 300명가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압력으로 회사가 자신들을 해고했다”고 주장했다.

폭력이 동원된 노조 간 갈등은 건설현장 곳곳에서 수년째 반복하고 있다.

노조 간 갈등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임금이나 노동시간을 비롯한 노동조건이 좋다 보니 건설사 입장에선 고용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다 보니 건설사에서 우리 조합원을 채용하기로 해 놓고는 막상 일이 시작되면 ‘어용노조’ 조합원들을 채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한 고용차별이 노노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이 마뜩지 않다”며 “어용노조에 노동자가 어디 있나”라고 반문했다.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도 항변한다. 건설산업노조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건설노조가 ‘우리 조합원을 채용해 달라’라고 회사에 요구했다면, 아주 최근에는 ‘건설산업노조 조합원은 채용하지 말아 달라’는 식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건설노조의 조합원수가 더 많아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보니 강자로서 약자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설노조
건설노조

 

“일자리 부족하니 노조 부흥, 경쟁 치열”

건설현장의 갈등과 충돌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노조 간 견제가 원인이다. 우상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과거 민주노총에서 건설 분야 노조가 먼저 만들어졌는데, 이후 한국노총에서도 건설 노조가 생기면서 규모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그런 이해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우 연구위원이 지난해 1월 한국노동연구원의 <월간 노동리뷰>에 게재한 ‘건설업 노사관계 평가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2019년 기준 200만명이다. 노조 조직률은 약 7% 정도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은 12만명으로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 2만명보다 10만명가량 많다.

보다 근본적으로 보면 갈등 기저에는 ‘건설 일자리 부족’이 주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건설업 취업자는 상당수가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일용직·비정규직이다. 그런데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 각 노조는 자기 조합원을 더 배치하기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회사가 한쪽 노조 조합원과 근로계약을 체결하면 경쟁 노조가 이의를 제기하고, 자기 조합원 채용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부딪힌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건설 일자리 부족은 건설 경기 악화와 이주노동자 증가로 심화하고 있다. 3년 전후로 증가한 양대 노총 조합원수가 건설업 일자리 감소 현상을 방증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10여년 전부터 건설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해 노동자들은 조직화된 힘 없이는 고용되기 힘든 처지가 됐다”며 “양대 노총 건설 노조 조합원수도 2017년 후반부터 급격하게 확대됐는데, 그해 산별중앙교섭을 실시했기 때문도 있지만 일자리 부족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설 분야 일자리수와 노조의 부흥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우 연구위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은 5만1천690여명으로 2017년 3만9천여명에 비해 약 1만2천여명 늘었다.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 조합원도 비슷한 시기 대폭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간 갈등이 특히 심한 공종은 형틀목공·철근공이다. 육길수 건설산업노조 사무처장은 “해당 공종은 수익이 괜찮은 편이고 숙련도도 쉽게 올릴 수 있어서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몰린다”며 “이주노동자 고용 증가가 내국인 일자리 부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규제가 건설 노조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공정의 경우 내국인만으로는 건설업 일자리가 오히려 남는다는 통계가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2019년 건설근로자 수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수요는 151만9천명인데 공급은 내국인 138만9천명, 외국인 22만8천명으로 총 161만7천여명이다. 직종별로 보면 형틀목공 수요는 7만9천명인데 내국인 공급은 7만2천명, 외국인 공급은 6만6천명으로 총 13만8천명이다. 반면 용접공과 배관공은 외국인을 반영해도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육 처장은 “합법적인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이주노동자들까지 건설업계에 고용되다 보니 건설업 일자리 총량이 부족하게 된 것”이라며 “법을 어기자는 것이 아니라 법의 취지대로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 규제해야”
vs “미등록 이주노동자 악용하는 업계가 문제”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 규제방안으로는 전자카드제 활용·기능인등급제 도입도 제시된다. 전자카드제는 건설현장의 출입구 등에 설치된 단말기에 신용카드 형태의 전자카드를 태그하는 방식으로 출·퇴근, 근무 일수를 관리하는 제도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전자카드를 발급하지 않으면 내국인 고용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기능인등급제는 건설근로자 기능별로 등급을 부여해 높은 등급의 건설근로자는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제도다. 우상범 연구위원은 “(합법적 비자가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기능인등급제 안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제도를 활용하면 불법고용을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측은 ‘이주노동자 불법고용 근절’보다는 ‘내국인 구인’에 방점을 찍고 있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근절을 요구한다기보다는 건설업체들이 내국인을 구인하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악용해서 (건설업계)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업계의 문제 자체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기업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제한 요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부 공종의 경우 이주노동자가 아니면 공사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다.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공기단축’이라는 분석도 있다. 공사 시간을 단축하고 싶어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장시간 노동과 재하도급을 마다하지 않는 이주노동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이 국내 숙련인력 육성이나 청년층의 건설업 진입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건설산업노조
▲ 건설산업노조

 

“사업주 불법행위가 노조 간 갈등 심화시키기도”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편법과 불법이 노조 간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건설현장에서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 규정을 준수하지 않거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거나, 다단계 하도급 방식을 사용하는 등 불법행위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업주는 노조에 ‘흠집’이 잡히면서 이쪽저쪽 노조 요구를 수용하는 데 급급하고, 자기 조합원 채용을 원하는 노조들은 힘겨루기를 하게 된다는 얘기다.

사업주의 경영부담은 불법행위로 이어지고, 이는 노조 간 갈등으로 번지고, 노조 간 갈등은 감시체계를 약화시켜 다시 사업주의 불법행위를 손쉽게 하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강한수 건설노조 부위원장은 “노조가 하나로 단결하지 않으면 건설자본의 다단계 하도급 같은 행위에 놀아나게 된다”고 우려했다.

사업주가 법을 지킬 수 있을 만한 적정한 공사비가 확보되지 않은 탓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장은 “사업주가 준법해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돈이 부족하면 불법·편법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사업주도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을 고용하고 안전조치를 다 하더라도 이윤을 낼 수 있을 정도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 적정임금제 같은 제도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 센터장은 “사업주들이 운영을 법대로 하면 노조와 일정정도 선을 그으면서 정당한 요구만 들어주면 되는데 여러 노조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갈등이 생기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반복하면서 건설 현장에서는 노조와 노조 비슷한 단체가 10여개까지 난립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분쟁 당사자들 자율조정 능력 키워야”
“고용사전예고제 도입해 일자리 배분 필요”/b>

분쟁의 당사자들끼리 자율조정 능력 또는 의지도 빼놓을 수 없다. 제도개선이 뒷받침하더라도 최종적으로 갈등을 줄이는 것은 당사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노사 단체의 분발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심규범 센터장은 “어떻게 규칙을 정해서 일자리를 배분할 것인지에 대해 노사 상부 차원에서의 원칙이 필요한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우상범 연구위원도 “공사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공사 시작 전) 미리 계획을 세운다”며 “(계획을 세울 때) 만나서 (어느 노조 조합원이 몇 명이 일할지) 어느 정도 정리를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건설현장 고용사전예고제를 실시하면 노사 단체 간 협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노사정 협의체를 통해 연초에 예상되는 건설현장 정보를 공유하고 일정 규모(공공 50억원, 민간 100억원) 이상의 건설현장에서 양대 노총의 채용인원을 조정하자는 것이다. 전자카드제와 기능인등급제를 결합하면 실효성이 제고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상설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해 실효성 있는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협의체를 매월 또는 분기별로 열어 건설업을 둘러싼 임금·고용·훈련·도급체계를 논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노사정은 협의체를 구성해 해당 문제를 논의해 왔다. 2019년 6월엔 ‘건설산업 상생과 공정한 노사문화 정착을 위한 노사정 협력 약정서’가 도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효성이 크게 없었다”는 것이 노동계 평가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합의 이후 뚜렷한 활동보다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정부 차원에서 ‘뒤처리’하는 정도”라며 “진정성 있게 노사정 협력이 진행되려면 일 터지면 보는 게 아니라 정례적으로 꾸준히 만나고 대안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자체의 역할론도 제기된다. 수도권 이외 지역의 경우 건설노동자들이 다른 지역 출신이 아니라 대부분 지역 주민이기 때문에 지자체는 건설 일자리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 연구위원은 “이미 많은 지자체는 조례 등으로 지역민을 우선 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화됐다”며 “조례 내용이 추진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