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16일 오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회사가 노조를 만들고 교섭을 좌지우지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어고은 기자>

대양그룹 계열사인 골판지 제조업체 대양판지에서 설립된 기업노조가 고용노동부 설립신고 취소 처분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대전충북지부 대양판지지회(장성·청주)는 직권취소에 따라 기업노조와 회사가 체결한 2020년 단체협약도 무효라며 교섭을 요청했지만 사측은 거부했다. 직권취소에 따른 단협 효력이나 교섭대표노조 지위에 관한 지침이나 법규가 마련돼 있지 않아 피해가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양상이다.

16일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 4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대양판지노조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10조1항과 16조1항을 위반했다며 설립신고에 대한 수리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했다. 광주지방노동청은 지난해 3월31일 설립된 대양판지노조가 설립총회를 개최하지 않았던 사실을 확인했다.

지회는 노동부 설립 취소에 따라 지난해 회사와 교섭대표노조로서 대양판지노조가 체결한 2020년 단체협약도 무효라고 주장했다. 당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3개 노조 중 대양판지노조를 제외하면 금속노조가 다수노조이므로 2020년 단체교섭을 새로 맺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2020년 단협이 무효가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사측은 지난 11일 공문을 통해 “설립신고 직권취소에 의해 대양판지노조의 설립 자체가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다”며 “대양판지노조의 교섭대표노조 지위와 기체결된 단협을 소급해 무효로 간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회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 3월 청주공장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한 사실을 알고 청주공장 관리직을 노조위원장으로 내세워 대양판지청주공장노조를 만들었다. 이후 장성공장까지 가입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명칭과 규약을 개정하는 총회를 개최했지만 총회공고 요건을 갖추지 않은 탓에 청주시청에서 반려됐다. 회사는 장성공장 관리직을 노조 임원으로 내세워 또 다른 기업노조인 대양판지노조를 설립했다. 금속노조는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청주지청과 광주노동청에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고소 이후 대양판지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노조 설립총회가 열리지 않은 사실을 노동부가 파악했다는 게 지회의 설명이다. 광주노동청과 청주지청은 각각 지난해 11월24일과 12월3일 검찰에 해당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직권취소에 따른 단협 효력이나 교섭대표노조 지위에 관한 노동부 내부 지침이나 법규는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노동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노동자들은 피해를 보고 있다. 지회는 “대양판지 장성공장장은 반장회의에서 제3 기업노조가 교섭권을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며 “기업노조를 지원하며 1년 전 금속노조의 교섭권을 뺏어 간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광주노동청 관계자는 “대양판지노조는 해산처리가 됐고 다른 이름의 새로운 노조가 설립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서범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행정행위는 소급효가 있기 때문에 설립취소가 된 노조와의 단협도 무효라고 볼 수 있다”며 “노동부는 창구단일화에 대한 행정취소 관련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노동부가 직권취소한 것을 스스로 의미 없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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