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6.4 목 13:18
상단여백
HOME 안전과 건강 전문가 칼럼
노조파괴는 노동자를 병들게 한다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원전 2500년께 고대 이집트인들이 나일강가에서 자라던 파피루스(papyrus) 줄기를 이용해 만든 파피루스 용지. 오늘날 종이(paper)의 어원으로 여러 형태의 발전을 거듭하며 인류의 기록 역사와 함께해 왔다.

최근 대부분 정보를 신문·책 같은 종이 미디어보다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인터넷을 통해 얻게 됨에 따라 신문·인쇄용지 소비는 감소했다. 하지만 1인 가구 증가와 더불어 택배문화 발달로 포장용 골판지 수요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국민 1인당 종이 소비량이 189.2킬로그램으로 세계 10위의 소비국이다. 생산량은 세계 5위의 제지업 강국이다. 현재 국내 제지업은 상위 5개사가 총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과점구조를 보이고 있다.

쓰러지는 대양판지 노동자

우리나라 5대 제지그룹 중 하나인 대양그룹은 2개의 제지사업과, 4개의 판지사업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중 대양판지㈜는 전남 장성에 본사를 두고 장성공장과 청주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대양그룹 계열사다.

대양판지 청주공장은 전체 직원이 86명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사업장이다. 그런데 최근 연이어 2명의 노동자가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쓰러졌다. 올해 2월까지 12시간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하고 주말에도 특근을 했다. 주당 평균 68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했다. 그리고 제지산업 특성상 고열작업·분진·화학약품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왔기에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작업을 감내한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한솔제지 장흥공장에서 발생했던 사망사고와 같은 유사한 사고가 대양판지 공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할당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서 기계를 세우지 않고 트러블 조치를 하기 때문에 가동 중인 롤과 컨베이어벨트 사이에 손부위가 끼이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예방은커녕 산재 발생 신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공장별 성과급제를 실시하고 개인별 임금을 차등지급하는 대양그룹 노무관리에 있다. 아프거나 다쳐도 쉴 권리가 박탈된다. 실제로 한 공정에서 한 명이라도 빠지면 옆에 있는 동료가 대신 그 업무를 하거나 다른 조에 있는 동료가 그 노동을 메꿔야 한다. 노동자들은 동료에게 피해가 갈까 봐 눈치 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고 공상으로 급한 치료만 한 상태에서 붕대를 감고 일하기도 한다.

노조를 두 개나 만든 사측

이러한 상황을 참다못한 대양판지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서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그러자 회사는 그룹사 차원에서 임원을 내려보냈다. 회사가 개입해 관리자 중심의 노조를 만들었다. 금속노조 탈퇴를 종용했다. 회사의 CCTV와 녹취자료를 보면 지난달 24일부터 회사 임원들이 개별적으로 면담을 진행했다.

회사노조가 만들어졌다는 구체적 물증이 드러나자 회사는 부당노동행위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또 하나의 회사노조를 일사천리로 만들었다.

그런데 회사가 급하게 노조를 만들면서 장성공장을 포괄하지 못했다. 지난달 30일에는 가입대상을 장성공장까지 포괄하는 내용의 규약·명칭변경을 위한 총회를 진행했다. 그러나 회사는 7일 전에 총회내용을 공고하지 못하면서 교섭대표노조 계획이 물거품이 되자 같은달 31일 장성군청에 3노조 설립신고를 했다. 그렇게 설립된 3노조는 청주공장 관리자까지 포함하는 회사노조가 됐다.

웃으며 안전하게 일하고 싶을 뿐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조직하는 것은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바꾸기 위한 열망 때문이다. 대양판지 노동자들도 장시간·저임금 속에서 동료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빈번하게 발생되는 협착사고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최소한 방어하기 위해서 노조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회사는 불법행위와 꼼수로 노조탄압을 하고 있다. 이러한 회사 행위를 고용노동부와 행정관청이 그대로 방치한다면 대양판지를 비롯한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는 봉쇄될 수밖에 없다. 또한 수많은 사고와 산재들이 은폐될 수밖에 없다.

이미 유성기업에는 회사의 노조파괴로 1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9명의 노동자가 정신질환으로 산재인정을 받았다. 또한 매년 산재다발 사업장 목록에 오르고 있다. 비록 법원에서 회사노조 설립을 취소했지만 노조파괴의 상흔은 아직까지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노동부를 비롯한 주무 행정기관은 대양판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범죄행위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와 엄중처벌을 신속히 해야 한다.

이태진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태진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