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오후 고 김용균 2주기 추모제에서 김미숙씨와 산재 유가족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정기훈 기자
▲ 6일 오후 고 김용균 2주기 추모제에서 김미숙씨와 산재 유가족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정기훈 기자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날에 전화가 왔어요. 분명 식사 잘 챙겨 드시라고, 따뜻한 밥 드시라고 그랬는데…. 3천원짜리 빵 하나 드셨어요.”
인천 옹진군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추락사한 화물노동자 고 심장선씨의 아들이 청년노동자 김용균 묘 앞에 섰다. 그는 “(아버지가) 아직까지 따뜻한 밥도 못 드셨다”며 “아버지의 억울함을 벗겨 줘서 빨리 장례를 치러 드리고 싶다”며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2년 전 하나뿐인 아들을 떠나 보낸 김미숙씨는 심씨의 손을 잡고 같이 울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아빠를 위해서 할 수 있어. 나도 하잖아. 아들을 위해….” 울음을 삼킨 김미숙씨는 아버지 잃은 아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6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씨의 2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은 김씨가 태어난 날이다. 고인은 2018년 12월10일 낙탄을 줍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김용균씨 영정 앞에는 생전 좋아했다던 갈비찜과 정성 들여 무친 나물들이 놓였다. 추모제는 김용균씨의 죽음을 기리고, 제2의 김용균을 막으려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산재피해네트워크 다시는’과 고 문중원 기수의 아내 오은주씨, 김종철 정의당 대표,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도 함께했다.
김용균이 떠난 지 2년, 현장은 무엇이 얼마큼 달라졌을까. 김용균 노동자가 남기고 간 과제를 점검해 봤다.

“원·하청 대표 기소, 첫 공판 내년 1월 열려”

그의 죽음은 28년 만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을 이끌었다. 그의 동료들은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하위법령에서 구의역 김군이나 김용균씨 같은 사고성 재해가 노동부 도급승인을 받는 작업 대상에서 빠져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이란 논란을 불렀다.
노동자의 부고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 지난 9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화물노동자가 컨베이어 스크루에 깔려 숨지고, 지난달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석탄재를 싣고 난 뒤 내려오던 화물차노동자가 추락사하는 등 발전소 안 산재사망은 계속되고 있다. 두 노동자는 모두 간전고용 하청노동자거나 특수고용직으로 ‘위험의 외주화’현상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유족이 이쪽저쪽 뛰어다니며 진실을 밝혀 달라고, 사고 재발을 막아 달라고 호소하는 상황도 여전하다.
“책임자 처벌을 통한 사고 재발방지”라는 과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검찰은 지난 8월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대표를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김용균 노동자가 업무 중 재해로 숨진 지 20개월 만으로 의미가 적지 않다. 당초 경찰은 원·하청 업체 대표를 ‘혐의 없음’으로 판단해 송치했지만 검찰은 원·하청 대표가 안전 조치를 미이행해 노동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봤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원·하청 대표를 포함해 원청 9명과 하청 5명이 기소됐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원청 관계자 4명과 하청 관계자 3명이 기소됐다. 1차 공판은 내년 2월26일 대전지법에서 열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될까”

노동계의 오랜 숙원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174석의 거대 여당이 우물쭈물하면서 법안 통과는 미뤄지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현장과 다중이용시설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책임 있는 사업주를 처벌하는 내용이 담겼다.
권영국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우)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국민의힘이 전향적인 안을 냈고, 더불어민주당의 의지만 가지고 법안을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된 상태로 더불어민주당은 진정성을 가지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변호사는 “법안에 우려가 있다면 빠른 속도로 수정하고 보완책을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과 관련한 내용의 제정안·청원 5건이 계류돼 있다. 박주민·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안’,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기업의 책임 강화에 관한 법률안’이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를 비롯한 시민 10만명이 동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민동의청원도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여당이 당론법안 지정에 부담을 느끼면서 법 통과 의지를 의심받는 상황이다.
김재하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은 “최고의 추모는 투쟁”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포함한 전태일 3법을 입법하는 것만이 최고의 헌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7일과 8일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법안소위)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날로 함께 투쟁하자”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은 완료 안 돼
경상정비 노동자는 제외”


김용균 청년노동자의 동료들은 여전히 비정규직 신세다. 발전산업 안전강화·고용안정 당정TF는 지난해 12월 고 김용균 노동자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22개 권고안을 반영해 “연료·환경설비 운전 노동자를 정규직화하고 경상정비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하고,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발전소 연료·환경설비 운전 노·사·전문가 협의체는 지난 5월 한전(지분 29%)과 발전 5사가 자유총연맹(지분 31%)의 한전산업개발 지분을 매입해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고, 비정규직을 이 기관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분 매입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
물론 진전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한전 관계자는 “지난 10월20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한전이 매각해야 할 출자회사 중 한전산업개발을 제외해, 매각 계획을 수정했다”며 “한전과 발전 5사가 지분 인수를 위한 협의를 계속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정부 정책에 따라 한전 부채 감축을 위해 한전산업개발 지분을 팔려던 계획을 되돌린 것이다. 하지만 지분 매입을 위한 실사 등 넘어야 할 난관이 여전히 많다.
경상정비 노동자들은 앞으로도 비정규직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상정비 업무는 이미 민간에 개방된 터라 민간 정비사 파산, 상장 발전정비사 주주 반발 등 현실적 제약이 따른다는 이유에서다. 노·사·전 협의체도 현실적 제약을 인식해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송상표 공공운수노조 금화PSC지부장은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현장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노력과 대책이 있었다”면서도 “영흥화력발전 사고가 난 것은 현장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해 개선하지 못한 것으로 아직 개선할 것은 많다”고 주장했다.

“특조위 권고안 얼마나 이행됐나”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가 낸 22개 권고안의 이행을 점검하는 ‘이행점검회의’가 현재 진행 중이다. 이행점검회의는 올해 세 차례 열렸다. 3차 회의부터는 특조위원이 참여해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권영국 변호사는 “국무조정실이 주관해 직무부처와 진행하던 이행점검회의에 지난 3일 특조위원들이 처음 참여했다”며 “치밀하게 이행점검이 이뤄져야 하는데 빈 구석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모든 노동자가 아닌 일부에게만 처우개선이 진행되고, 산업보건의 (위촉과), 중앙 안전보건지원센터 (설치 등이) 여전히 검토 단계에 있거나 모호하게 추진 중이라는 형태로 돼 있다”며 “시기별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행을 완료할 것인지, 진행상황을 구체화해 이햄점검지표 등을 만들어 실효성 있게 점검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용균 특조위는 △노무비 착복 금지·입찰제도 개선 △산업보건의 위촉·의료체계 확립 △석탄화력발전소 중앙안전보건센터 설치 등을 포함한 22가지 권고안을 냈다.
노무비 착복을 금지하고 적정노무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사업도 경상정비 노동자에 한해 이뤄지고 있다. 연료·환경설비 운전 노동자의 경우 정규직 전환을 추진 중으로 적정노무비 지급 시범사업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산업통상자원부 입장이다. 또 산업보건의 위촉와 중앙안전보건센터 설립은 여전히 논의단계에 머물러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말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이런 억울한 죽음을 멈추지 않으면/ 감히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이날 추모제 막바지에 이르러 민중가수 ‘꽃다지’의 노래 <아무렇지 않은 듯>이 김용균 묘역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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