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쯤 서울 명동역 근처에서 살았을 때 명동역 10번 출구로 나가면 왼편으로 세종호텔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호텔 입구에서 아주 조금 더 걸어가면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있었다. 지나가면서 마음으로는 응원했지만, 결국 그 마음은 직접 전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세종호텔 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는 복잡하다. 그런데 동시에 아주 단순하고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익숙하다.세종호텔은 처음에는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을 받았다. 매달 희망퇴직 공고가 붙었고 그렇게 8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호텔을 떠났다. 그러다 호텔은 기
1948년 올림픽은 런던에서 열렸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그 파탄과 후유증으로 인해 12년 만에 열린 것이다. 정치적 분단이 영토 분단으로까지 전개되는 와중에 미군정 치하의 한국은 1947년 6월1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회원국으로 승인받았다. 남한이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을 선포했고 북한 또한 같은해 9월9일 건국을 선포한 것에 비춰 보면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우리가 일제에서 독립했다고 세계에 선언하고 또한 승인된 것은 1947년 6월이었는지도 모른다
윤석열 정권이 집권한 지 두 달째다. 새 권력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순조롭지 않다. 언론에서 연일 상황을 중계한다. 그 하나는 집권세력과 야당, 집권세력이 장악한 행정권력과 야당이 장악한 의회권력 사이의 싸움이다. 국회는 아직 원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부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지 않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집권여당 안에서는 국회의원 후보 공천권을 가진 당권을 둘러싸고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이준석 대표는 혁신위를 구성해 현 권력지형을 바꾸려고 하고, 정권 창출의 공신인 ‘윤
은 청계피복노조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지난 1월에 개봉했다.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작품상 후보작에 올랐고, 들꽃영화상에서 대상을 받은 수작이다.영화 제작은 2018년 김정영 감독이 서울에 있는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디지털영상 아카이빙 작업을 위해 봉제노동자 구술생애사 인터뷰를 진행한 것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이혁래 감독이 합류하면서, 실제 사진과 글 등 다양한 사료가 곁들여지면서 만듦새가 풍성해졌다. 영화에 쓰인 사료들은 각자 보관하고 있던 개인 자료 외에 전태일기념관과 민주화기념사업회
통계청이 지난달 11일 ‘4월 고용동향’을 발표하자, 언론이 일제히 ‘취업자 늘었지만, 절반이 고령층’이란 제목을 달았다. 언론은 이런 제목을 사용해 공공근로 같은 질 낮은 정부 주도형 노인 일자리 확충 때문에 전체 취업자가 약간 늘어나 보이는 착시일 뿐이라는 걸 강조했다.서울신문은 다음날 20면에 ‘취업자 86만명 늘었지만… 절반은 시니어’라고, 한국일보는 10면에 ‘4월 취업자 22년 만에 최대 늘었지만 절반이 60대 … 노인 일자리 확대 영향’, 동아일보도 B2면에 ‘4월 취업자 86만명 늘었지만… 절반이 60세 이상 고령자’
정부가 20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년연장·폐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723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붐세대(1955~63년생)의 은퇴연령 도래, 저출생과 기대수명 증가로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생산가능연령 인구 감소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다.정부의 문제의식처럼 인구구조 변화는 당장의 현실로 다가왔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2020~2070년’(2021년 12월9일)에 따르면 2020~2030년 생산가능연령(만15~64세)인구는 357만명 감소하고, 고령(65세 이상)인구는 490만명 증가할 것으로 추계되고 있
⑤파리바게뜨 투쟁이 한창이다. 2017년 SPC그룹은 파리바게뜨 제빵사 5천300여명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노동부는 직접고용하라고 시정지시했다. 이후 여러 파고를 거쳐, 노사·시민사회단체·정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가 맺어졌다. SPC그룹이 자회사를 설립해 제빵기사 전원을 직접고용하고, 3년 안에 본사 직원과 같은 수준의 급여를 적용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그렇게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SPC그룹은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적반하장으로 노조탄압과 인권침해를 일삼았다. 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중 우리 사회가 정말로 체감한 것은 바로 ‘주 52시간’이라는 노동시간단축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우리는 명백한 과로사회였다. 연간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위라는 기사가 식상해진 지 오래다. 누구보다 출근을 빨리하고 퇴근은 늦게 하는 것이 회사에 대한 충성이고, 승진으로 가는 길이었다.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오는 게 일상이고, 월요병을 극복하려면 일요일에 출근하면 된다는 조언까지 나왔다.그러던 것이 정부가 바뀌자 엄청나게 변했다. 정부가 삶과 일의 균형을 적극 주장하고, 국회는 근로기준법을
“공정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비 고장에 대한 신속한 정비가 강조돼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담당 영역이 100여개 이상의 설비가 있는 넓은 공간인 반면, 개인 방독면 보관함은 1개뿐이며 안전수칙 준수에는 60분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보호구를 적절히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진행해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산재 역학조사 보고서 중 일부다.안전과 위험.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 누구도 위험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는 안전한 방식이 아님을 알면서도 위
국회 앞이나 거리에서 쉽게 마주하는 원색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주장은 과장을 넘어선 허위다. 차별금지법의 목표는 고용·교육·일상서비스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지 성소수자 인권 침해만 문제 삼지 않는다. 법 제정은 시민들이 다양한 이들의 존엄한 가치를 제고하는 데 의미가 있다. 차별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입법만으로 장애인 이동권이 개선되거나 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질 리 없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멸시에 가까운 노동 차별이 줄어들거나 여성들이 가정과 노동시장에서 겪는 이중고가 해소되기도 쉽지 않다. 더욱이 차별을 금지한다 한
1. 오랜만에 법률학교를 진행했다. 지난주 사무소 교육장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하지 못했던 노동법 교육을 했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였는데 참석자 대부분은 노조간부였다. 임금피크제에 관한 대법원 판결의 내용과 노동자의 법적 대응 등을 살펴보기 위해 긴급히 편성해서 했던 강좌였다. 지난달 26일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돼서 하게 된 교육이었는데, 신청자들이 몰려 한 차례 더 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인사를 하고서 나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한두 개의 대법원판결이 있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올해 종료할 예정이었던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를 지속하기로 국토교통부와 합의하고 지난 7일부터 시작한 파업을 14일 종료했다.그런데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언론은 연일 불법이라느니, 2조원대의 피해가 발생했다느니 하면서 정당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하기 바쁘다.과연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이 불법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불법’의 최종적인 판단은 사법부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론이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 역시 억지다.우선 헌법 규정을 보자. 헌법 33조1항은 노동자들이 단결권·단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글을 에 두 번 썼다. 2월28일자 “3차 대전으로 치닫는 러시아의 특수작전”과 4월21일자 “미어샤이머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자는 중국’”이다.앞에서는 “무엇 때문에 침공이 일어났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썼다. 뒤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러시아에 대항하는 서방의 방어벽이 되는 것도 포기하고, 중립국이 되는 것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는 미국 정치학자의 주장을 소개했다.지난 18일 유튜브의 ‘BBC 뉴스’ 채널에 러시아 담당 편집자 스티브 로젠버그가 세르게이 라브로
100년 전 노동운동 선배들은 무슨 활동을 하고 있었을까?노동공제운동을 시작하면서 노동공제와 관련한 여러 가지 역사와 경험 자료를 찾아보게 됐다. 산업혁명과 노동운동이 먼저 발달한 영국을 비롯해 동업조합(길드)의 전통과 프랑스혁명의 경험을 가진 프랑스, 노동기사단과 우애조합으로 시작한 미국, 그리고 노동운동과 협동조합 운동을 결합한 일본의 노동공제까지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우리나라에서 나타난 노동공제회의 역사적 흔적에 대해서도 살펴보게 됐고, 그 관심은 자연스레 조선노동공제회까지 이어지게 됐다. 하지만 조선노동공제회에 대한 검색 자
지난 4월20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결사의 자유 협약)·98호(단체교섭권 협약)가 국내에서 발효했다. 그 무렵 ILO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 발효로 앞으로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지 많은 질문을 받았다. 이런 질문들에 필자는 “진정한 변화는 정부와 사법부가 ILO 결사의 자유 원칙을 존중하는 법의 적용·집행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이번 6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을 겪으면서 ILO 결사의 자유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정부의 행태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정부는 처
상담 활동 경력이 10년을 넘었지만 갈수록 해결하기 어려운 상담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난감할 때가 있다. 사회경제 환경 변화로 인해 다양해진 고용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노사갈등을 기존 노동법이 다 보듬지 못하기 때문이다.2000년대 초반 야구선수들이 선수노조를 결성하겠다고 나서 사회적 이슈가 된 사례가 있었다. 지금이야 고액연봉을 받는데 무슨 노동조합이냐며 선수들의 집단행동으로 비난받을 것이 뻔하지만 당시에는 선수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협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유명선수조차도 혹사당하는 현실이 알려지면서 ‘스파르타쿠스의 난’이
인구 8만의 작은 군단위 농어촌 버스회사 운전기사인 노동자 A씨는 2020년 3월 어느 날, 근무 중 브레이크가 밀리는 현상이 발생해 회사에 보고했다.A씨는 휴게시간에 차량을 수리하려 했으나, 차량수리 시간이 부족해 결국 브레이크가 고장났고 차량운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A씨는 회사에 차량이 고장났다는 것을 보고하고 한참을 대기하다 정비사가 도착해 임시 조치한 후 정비사와 함께 차량 운행이 불안정한 상태로 회사로 돌아갔다. A씨는 고장난 차량 때문에 하루종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운전을 했고 그날 오후 차량은 정상적으로 운행될 수 없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화를 좋아한다. 현실이 답답한데, 영화 볼 때마저 답답한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영화를 자주 보지 않고, 두 번 이상은 더욱 보지 않지만 은 두 번 봤다. 정의로운 결말의 영화도 좋아한다. 영화에서라도 ‘사이다’를 들이마시고 싶다. 영화 도 세 번쯤 봤다.하나 더 잘 본 영화가 있다. 이다. 주연 세 명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성 직원이다. 회사 내에서 권한 없고 발언권 없는 세 명이 회사의 폐수 방출 문제를 파헤쳐 나가는 내용이다. 회사에서 무시당하는
‘해방’은 구속이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구속은 관계로부터 시작되며, 그 관계는 서로 대등하지 않기에 억압이 동반된다. 이에 인간은 끊임없이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해방 의지를 통해 역사를 변혁시켜 왔다. 봉건 신분제로부터의 해방, 제국주의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폭압적인 국가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이러한 해방은 그냥 이뤄지지 않았고, 피땀 흘려 싸워서 쟁취한 것이다. 이를 법·제도로 규정해 권리로 보장하는 것은 기억하고 지키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노사관계 역시 약자인 노동자의 해방 의지와 단결 투쟁으로 이뤄
1. 9일, 판결이 선고됐다. 2018년에 소장을 제출했으니 4년을 기다려 받은 1심 판결이었다. ‘드디어’ ‘마침내’를 덧붙여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날 인천지방법원 417호 법정에서 재판장은 주문을 무심하게 읽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듣고 있던 나는 결코 무심할 수가 없었다. 무미건조한 판결 주문들이 생생하게 내 머리에 꽂히고 있었다.별지2 원고들이 피고의 근로자임을 확인하고 별지3 원고들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는 주문을 들었을 때에는 그 별지에 포함돼 있는 원고들을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으니 우리가 몇 명 승리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