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각 공인노무사(사무금융노조)
▲ 정윤각 공인노무사(사무금융노조)

‘해방’은 구속이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구속은 관계로부터 시작되며, 그 관계는 서로 대등하지 않기에 억압이 동반된다. 이에 인간은 끊임없이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해방 의지를 통해 역사를 변혁시켜 왔다. 봉건 신분제로부터의 해방, 제국주의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폭압적인 국가권력으로부터의 해방….

이러한 해방은 그냥 이뤄지지 않았고, 피땀 흘려 싸워서 쟁취한 것이다. 이를 법·제도로 규정해 권리로 보장하는 것은 기억하고 지키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노사관계 역시 약자인 노동자의 해방 의지와 단결 투쟁으로 이뤄 낸 결과물이다. 헌법상 노동 3권을 명시해 자본가에게는 지켜야 할 의무로, 노동자에게는 보장받을 권리로 규정한 것이다. 모든 생산물은 노동을 통해 이뤄지지만, 여전히 그 결과물에서 노동의 가치가 차지하는 정도는 낮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진심인지 모르겠으나 이전 정부나 현 정부는 모두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들먹이고 있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쟁의행위 중 유형력이 수반되지 않은 채 단순히 근로자들이 사업장에 출근하지 않음으로써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행위(단순파업)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의 처벌대상으로 하는 것이 4(합헌):5(위헌)의 의견으로 합헌이라고 결정했다(2022. 5. 26. 2012헌바66). 노동 3권이 자유권적 성격과 사회권적 성격을 가진 기본권이라는 점에서는 재판관들이 같은 의견이었다. 그러나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4명은 “근로 3권이 달성하고자 하는 헌법적 보장의 목적과 취지에서 벗어나 노사 간의 사회적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하는 범위에서 필요한 제도와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전체 헌법 질서 내에서 단체행동권의 헌법적 보장 목적과 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그때그때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반영하여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단체행동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5명은 “근로 3권 보장은 연혁적으로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시작된 것으로 근로 3권은 헌법의 규정만으로 구체적 권리성이 인정되는 기본권이며 근로 3권의 사회권적 기본권으로서의 성격은 집단적 노사자치의 기반을 조성함으로써 근로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근로 3권을 제도적으로 구체화하는 입법을 함에 있어서는 근로 3권의 자유권적 측면을 존중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근로 3권의 사회권적 기본권으로서의 성격이 근로 3권의 제한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활용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판대상 조항이 단체행동권을 침해한다고 했지만, 애석하게 위헌 심판정족수(6명) 중 1명이 부족해 합헌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헌법상 노동 3권은 자본가의 재산권을 침해(위력에 의한 업무상 방해)해서는 안 될 정도의 기본권으로 법률에 의거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읽은 논문1) 속 문장을 일부 인용하고자 한다.

“자유권이든 사회권이든 국가의 의무는 다면적이다. 개인의 자유권이든 사회권이든 간에 국가가 이들 권리를 제대로 보장(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여러 가지 의무를 충족시켜야 한다. 인권의 상관개념으로서의 국가의 의무를 3중 구조로 이해하는 경우에는 권리의 ‘존중·보호·충족’으로 설명하고, 4중 구조로 설명하는 경우에는 ‘존중(respect), 보호(protect), 충족(fulfil, 혹은 확보 ensure), 증진(promote)’ 의무로 설명한다. ‘존중 의무’는 국가 스스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것은 어떤 권리에 대해 국가가 침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특정 행위를 금지하거나 회피하는 것을 말하며 그 속성상 소극적이다. ‘보호 의무’는 3자에 의한 침해로부터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 3권은 오로지 국가가 운영하는 기업에서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기업에서도 적용돼야 한다. 따라서 사기업 내에서 노동 3권이 침해된 경우 국가는 이 보호의 의무에 따라 노동 3권 보호를 위한 일정한 작위 의무가 있다. ‘충족(증진) 의무’는 권리가 국가의 적극적인 조치가 있어야 비로소 실현되는 경우 그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증진 의무라고 하는 것은 권리의 실현을 증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인적·물적 조건을 정비(예컨대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 및 홍보활동을 하는 것)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은 권리로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여전히 우리나라 노동인권에 대한 국가기관과 사회 속 인식은 헌법 수준에 못 미치고 국가의 존중·보호·충족의 의무를 기대하기에는 현 보수 양당체제에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노동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인권교육을 제도권 교육에서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된 적이 있지만 정치권은 적극적으로 입법에 반영하려 하지 않고 있다. 만일 인권교육이 의무화된다면 노동 3권이 대다수 시민들이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기본권이라는 인식이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주로 노동조합에 가입된 노동자와 새로이 조직하려는 노동자이기에 노동에 대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더불어 노동조합 조직률은 겨우 10% 수준에 맴돌고 있고, 단체협약 적용률 역시 마찬가지 수준이다. 파업을 하면 하위 법률에 의거 제한되고 오히려 처벌받고 재산상 피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기에 노동권은 존중받지도 보호받지도 충족(증진)되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해방은 그냥 오지 않기에 노동자는 국가를 상대로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거리에서 외쳐야 하고, 현장에서 더 많은 노동자를 조직하고 단체행동을 해야 한다. 그러기에 노동자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각주
1. 박찬운, 「사회권의 사법구제가능성 강화를 위한 사법부의 역할」.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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