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산업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이었던 제네럴모터스(GM)가 지난 1일 파산해 일시적 국유화 상태에 처하는 등 미국의 ‘빅3’(GM·포드·크라이슬러)가 모두 표류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도 일대 구조개편이 불가피해졌다.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떠나간 쌍용자동차가 첫 희생양이다. 미국 GM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위기를 맡고 있는 GM대우차는 다음 순번이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진행 중인 쌍용차는 자동차산업 구조개편의 신호탄이다. 쌍용차 위기의 배경에는 세계 자동차산업 구조개편이 있다. 상하이차는 쌍용차 인수 4년 만인 지난 1월 사실상 경영을 포기했다.

쌍용차 시작으로 막 오른 구조개편

대주주인 중국 상하이차의 성장전략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상하이차는 2006년 122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해 중국에서 처음으로 판매량 1위에 올랐다. 상하이차의 성장에는 인수합병과 합작투자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 내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GM·폭스바겐과 제휴를 맺었고 기술력 확보를 위해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상하이차는 2005년 쌍용차와 영국 MG로버, 2007년 난징자동차를 차례로 인수합병했다.

상하이차는 쌍용차 인수와 함께 기술 빼가기 논란을 불러왔다. 약속했던 1조2천억원 투자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쌍용차는 지난 1월 법정관리 신청에 이어 전체 직원의 37%에 해당하는 인원에 대해 인력감원을 진행하고 있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상하이차에게 쌍용차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없는 곳이었다”며 “상하이차가 기술획득 뒤에 쌍용차를 버렸다”고 말했다.

‘뉴GM’이 아니라 유동성이 문제

GM대우차도 앞날이 불투명하다. 파산보호 신청 후 법정관리에 들어간 GM은 8~9월 뉴GM으로 거듭난다. 뉴GM은 기존 GM 계열사 중 시보레·캐딜락·GMC를 핵심 브랜드로 육성하고 오펠·복스홀·홀덴 등은 내년 하반기까지 매각한다. GM대우차는 상하이GM 등 해외공장과 함께 뉴GM에 포함됐다.

GM의 북미지역 공장 17곳과 판매망도 대폭 축소된다. GM 해외 판매망에 의존해 생산물량의 90%를 수출하고 있는 GM대우차에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감산 폭도 확대될 수 있다. GM대우차 부평공장 가동일수는 한 달에 10일가량에 불과하다.
GM대우차의 불안한 위치가 지속되면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는 마이클 그리말디 GM대우차 사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유동성 위기는 더 큰 문제다. 뉴GM 출범 뒤 해외법인들은 독자경영을 하게 된다. GM이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더라도 GM대우차에는 돌아올 돈이 없다는 이야기다. GM대우차 부채는 모두 8조원으로 추산된다.

‘소형차 생산기지’뺏기나

GM대우차에 대한 부정적 전망은 GM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전미자동차노조(UAW)와 GM이 최근 맺은 구조조정 합의안을 볼 필요가 있다. 양측은 앞으로 미국 내 유휴공장에서 16만대의 소형차를 생산하기로 했다. 생산하는 차종의 조건으로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소형차’라는 단서를 달았다.

세계 GM공장 가운데 소형차를 생산하는 곳은 한국과 중국이다. GM대우차가 지난해 출시한 라세티 프리미어(수출명 시보레 크루즈)가 그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세계 자동차산업의 구조개편도 활발하다. 개편방향은 △채무조정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 △공적자금 지원을 통한 유동성 문제 해결 △고용조정을 통한 비용절감 등으로 요약된다.

미국과 일본 자동차기업들은 채무조정과 고용조정을 통해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채무조정을 통해 GM을 국유화한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 6천명 가운데 3천명을 해고했다. 혼다도 270명의 비정규직을 해고했다.

‘GM대우차+쌍용차’ 대안론

유럽국가들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르노와 푸조에 각각 30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 독일 정부는 폭스바겐에 40억~50억유로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자동차산업 구조재편에 대한 발 빠른 행보와는 달리 우리나라 정부는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간접적이나마 자동차산업 구조재편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나타난 것은 지난 4월 공개된 지식경제부 내부 문건이다.
국내 5개 완성사를 3곳 안팎으로 합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완성사 2곳의 파산·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식 검토되거나 보고된 내용이 아니다”는 지경부의 해명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같은 시기 자동차업계를 중심으로 삼성그룹 역할론이 제기됐다. 삼성그룹 중심으로 르노삼성·GM대우·쌍용을 묶어내자는 논리다. 현대·기아차와 함께 양강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삼성그룹 주도 3사 통합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르노삼성과 GM대우가 르노와 GM의 판매망을 이용해 수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기업과의 분리는 곧 판매량 급감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관점에서 자동차산업 구조개편은 노동계 일각에서도 수용되고 있다. 쌍용차가 인력감원 중심의 구조조정을 표면화한 시점부터다. 쌍용차의 독자회생이 아니라 GM대우차와 결합하자는 주장이다.

중소형 승용차에 강한 대우의 기술력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디젤엔진에 강한 쌍용의 기술이 만나면 상당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분석으로 이어졌다. 현대·기아차의 독과점 구도를 깨고 경쟁구도를 갖출 수 있다는 논리다.

구조조정 방식 둘러싼 이해관계 충돌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은 “정부에서는 자동차산업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며 “두 기업이 안고 있는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적자금 투입”이라고 말했다.
GM대우차가 잠재적 구조조정 대상이라면 쌍용차는 당면한 문제다. 쌍용차의 구조조정 사례가 GM대우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쌍용차 구조조정이 완료되기 이전에 정부가 GM대우차 지원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쌍용자동차 노사 간 정리해고 갈등 이면에는 기업 구조조정 방식에 대한 노동계와 정부·재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쌍용차가 인력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면, 노조는 고용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른바 ‘GM대우차 모델’과 ‘쌍용차 모델’로 표현된다.

쌍용차는 2001년 옛 대우차 정리해고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인력감원은 재매각의 전제조건이다. 대우차는 2001년에 1천725명을 정리해고한 뒤 2002년 GM으로 매각됐다.
 


실패한 구조조정 되풀이하지 말아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쌍용차 모델’은 구성원의 희생 없는 구조조정으로 요약된다. 인력감원 없는 구조조정을 전제로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하자는 제안이다. 지부는 소유구조에서도 회사와 다른 입장이다. 산업은행이 출자전환과 추가투자를 통해 실질적 대주주가 되고 지방정부·부품사·노조 등 이해당사자가 지배구조에 참여하는 공기업화를 요구하고 있다.

쌍용차 구조조정에 깔린 지배구조 공방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공기업화론(국유화론)’과 ‘해외매각론’ 논란과 유사하다. 옛 대우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기업화론은 노조·학계·시민단체에서 대두됐다.

김대중 정부 내에서도 대우차를 해외매각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와 정부연구기관에서 초기에 공기업화를 주장했다.
반면 금융감독원과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등 재정·금융라인은 해외매각을 주장했다. 최종 구조조정 방식은 재정·금융라인이 주장한 해외매각으로 결정됐다.

이렇게 처리된 GM대우차와 쌍용차는 실패한 국가기간산업 해외매각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두 기업 모두 자생력을 잃었다. 과거의 실패한 구조조정 경험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2002년 GM으로 매각된 GM대우차의 낮은 자생력은 수출중심 판매구조에서 기인한다. GM대우차의 전신인 대우차는 30% 안팎의 내수시장을 점유했다. GM대우차의 내수비중은 GM의 글로벌 생산전략이 작동한 2004년부터 급감했다. 수출은 연평균 30% 이상 늘었지만 내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GM대우차는 내수시장을 제외하고는 독자적인 판매망을 갖고 있지 않다. 수출은 GM의 판매망을 이용한다. GM대우차가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종의 명칭도 해외에서는 달라진다. 국내에서 낯익은 브랜드들이 해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GM대우차는 GM 브랜드를 사용하는 대가로 로열티를 GM에 지불하고 있다. 매각 7년째를 맞고 있는 GM대우차에 ‘대우차는 없고 GM만 남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재계를 중심으로 성공적인 해외매각이라는 평가가 내려지는 GM대우차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정명기 한남대 교수(중국통상·경제학부)는 “부실자산 처리에만 눈먼 산업정책을 펼쳐서는 안 된다”며 “자동차산업의 전후방 연관효과를 고려하는 산업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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