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노사는 2006년 말 3개월여의 논의 끝에 420명에 대한 전환배치를 단행했다. 기존 공정에서 잉여인력으로 분류된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담당하던 업무분야로
옮겨 갔고, 비정규직 420여명이 희망퇴직을 하거나 휴직했다. 당시 희망퇴직과 휴직을 신청한 비정규직들은 끝내 공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규직 고용안정을 위해 완성차 노사의 단체협약에 명시된 전환배치가 비정규직을 일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다.



GM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사내하청업체 대일실업 소속의 신현장(35)씨는 요즘 생계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다음달부터 월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씨는 지난 8일부터 기약 없는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무급휴직에 들어간다는 얘기는 하루 전인 7일에야 들었다. 대일실업에서 일하던 120명 가운데 100명이 그와 같은 처지다.

젠트라 왼쪽 앞문을 조립하던 신씨의 자리에는 GM대우차 정규직이 옮겨 왔다. 사내하청업체가 맡았던 공정이 정규직 공정으로 바뀌면서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신씨가 대일실업에 입사한 것은 2003년. 비록 하청업체지만 원청인 GM대우차가 망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대일실업을 택했다. 신씨는 “출근하지 말라고 하고 돈도 안 주겠다는 것은 그만두라는 뜻 아니냐”라며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도 막막하다”고 털어놓았다.

정규직은 전환배치, 비정규직은 해고

2005년부터 GM대우차 부평공장 하청업체 GI텍에 일하고 있는 김원진(36)씨. 그도 신씨와 같은 시기에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GI텍에서 일하던 80명 가운데 74명이 무급휴직을 했다. 자동차부품을 조립라인으로 옮겨 주던 김씨의 업무는 이제 GM대우차 정규직의 차지가 됐다.

GM대우차는 이달 8일부터 20일까지 부평공장의 조업을 중단하고 전환배치 실무작업을 진행했다. GM대우차의 전환배치는 지난달 20일 노사가 체결한 고용안정협약의 후속조치다. GM대우차는 부서별로 라인운영속도(JPH)를 조정하고 인력 전환배치를 진행했다. 작업공정 재배치 결과 정규직이 비정규직 일자리로 옮겼고, 비정규직은 무급휴직을 해야 했다. 부평공장에서만 500여명의 비정규직이 무급휴직에 들어간 것으로 추산된다. 김씨는 “조만간 경기가 풀리면 다시 불러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다”며 “다른 사람들도 넋을 놓고 있다”고 전했다.

쌍용차·현대차 비정규직도 전환배치 피해자

쌍용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 한윤수(38)씨는 지난달 27일 회사로부터 내용증명 우편물을 받았다. 경영상 이유로 해고한다는 해고통지서였다. 해고날짜는 4월25일. 한씨는 2002년부터 차체를 제작하는 하청업체 신천테크놀로지에서 일했다. 해고통지서는 한씨를 포함해 5개 하청업체의 35명에게 전달됐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쌍용차 정규직의 전환배치 과정에서 휴직에 들어간 비정규직들이었다.

쌍용차 노사는 지난해 10월 정규직 350명에 대한 전환배치 시행에 합의했다. 세계 경기침체로 초래된 경영상황 악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기 위해 인력을 전환배치하고 생산라인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자는 취지였다. 쌍용차 노사의 350명 전환배치 합의내용은 휴직이었지만, 비정규직에게는 사실상 해고였다. 휴직 이후 재고용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쌍용차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300여명은 지난해 11월 정규직 전환배치 뒤 희망퇴직했다. 한씨를 포함해 희망퇴직을 거부한 35명은 지난달 하청업체 폐업 등으로 해고됐다.

쌍용차의 ‘비정규직 밀어내기’ 전환배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사는 2006년 말 3개월여의 논의 끝에 420명에 대한 전환배치를 단행했다. 기존 공정에서 잉여인력으로 분류된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담당하던 업무분야로 옮겨 갔고, 비정규직 420여명이 희망퇴직을 하거나 휴직했다. 당시 희망퇴직과 휴직을 신청한 비정규직들은 끝내 공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 자르는’ 전환배치

현대차 울산 2공장은 지난해 말 대규모 전환배치를 단행했다. 에쿠스 단종에 따른 후속조치였다. 2공장 에쿠스라인에서 일하던 정규직 498명이 울산의 5개 공장으로 분산·배치됐다. 에쿠스생산라인 노동자들의 전환배치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비정규직 115명은 업체 폐업과 도급공정 반납 등으로 해고됐다.

인력 전환배치는 물량에 따라 노동자들이 각 생산라인으로 옮겨 가는 것을 말한다. 자유로운 전환배치는 재계에서 주장해 온 생산유연성 방안의 하나다. 반면에 노동계는 손쉽게 이뤄지는 전환배치를 고용안정에 역행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대규모 정리해고가 있었던 98년 외환위기 이후 완성차업계 노사 단체협약에는 전환배치에 관한 엄격한 절차들이 명시됐다. 노동자들이 다른 라인이나 공장으로 배치될 때 노조나 당사자의 동의를 얻도록 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이로 인해 2005년 이전까지는 완성차업계에서 대규모 전환배치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부분 개별 노동자들이 생산라인을 옮기는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2005년부터 대규모 전환배치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2004년 자동차·전자업종에 불법파견 판정이 잇따라 내려진 뒤 나타난 현상이다. 불법파견 판정은 주로 원청(정규직)과 하청(비정규직)이 혼재작업을 하는 업체에 내려졌다. 완성차업계는 불법파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원청과 하청을 각각의 생산라인으로 분리했다. 쌍용차는 2005년 5월 정규·비정규 생산라인을 구분하는 라인재배치를 진행했다.

2007년 7월부터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금지를 골자로 하는 비정규직법이 시행되자 전환배치는 더욱 확산됐다. 완성차업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현저한 차이를 나타낸다. 때문에 동일한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차별시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마땅한 해법이 없다”

불법파견으로 판정됐다면 차별은 보다 분명해진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하면 비교대상 자체가 없어진다. 2005년 4월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이후 시정조치를 강구해 오던 GM대우차 창원공장은 2007년 7월 라인재배치를 단행했다. GM대우차 군산공장은 그해 11월에 유사한 라인재배치를 시행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된 91개 공정을 재편성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라인을 분리하는 라인재배치는 해당기업에게 불법파견 ‘면죄부’를 부여했다. 대신 비정규직의 고용은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타나고 있는 완성차업계의 정규직 전환배치는 비정규직을 구조조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규직 고용안정을 위해 완성차업계 노사의 단체협약에 명시된 전환배치가 비정규직을 일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다.


전환배치가 고용이 가장 불안한 시기와 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조합원의 고용안정이 최대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며 “수세국면에 몰린 노조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정청천 기자 doolmail@

정영현 기자 andiba@



<2009년 4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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