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노총이 화두다.
일부 노동계 관계자들은 틈만 나면 제3노총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서특필하고 있다. 마치 양대노총에 염증을 느낀 ‘건강한 노동자들’이 참지 못해,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 위해 행동에 나선 듯한 분위기다.
제3노총은 갑자기 떠오른 대안일까. 양대노총 구도를 뒤흔들고 뛰어넘을 수 있는 유력한 조직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제3노총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10여년 동안 ‘설’은 계속 돌았다.
99년 당시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이었던 배일도 전 한나라당 의원을 중심으로 현대중공업노조·병원노련·한국통신노조(현 KT노조) 등의 주요 관계자들이 진원지였다. 양대노총 흐름에 반기를 들었다기보다는 민주노총 내에서 비교적 큰 위치를 차지했던 노조 대표자들의 ‘변신’이었다. 결국 조직분열을 조장한다는 민주노총의 내부비판에 가로막히면서 ‘설’로 끝났다.

‘위기’때마다 튀어나와

한국노총 사업장이 거론되고 ‘공공부문’으로 구체화된 것이 2002년이다. 서울지하철노조가 중심이 된 전국지방공기업노조협의회와 한국노총 소속의 전국전력노조·도시철도연맹·정부투자기관연맹·공공서비스노련 등으로 구성된 ‘공공부문노조연대준비위원회’가 발족했다. 그들은 대정부 교섭과 제3노총을 주장했다. 하지만 공공연대 의장을 배출한 전국전력노조는 집행부가 바뀌면서 전력관련 노조와의 연대로 눈길을 돌렸고, 서울지하철노조에는 내홍이 발생했다. 다른 연맹도 선거국면이 겹치면서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2005년 말에는 이전부터 제3노총을 주장했던 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에다, 한국노총에서 제명된 한국교원노조, 제3의 조직이었던 공무원노조총연맹 등 공무원단체까지 가세해 ‘새로운노동조합총연맹 창립준비위원회’(준)를 발족시켰다. 새노총은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사회적 협의기구를 통한 임단협 교섭 등 나름대로 정책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1년만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2006년 말 복수노조 시행이 다시 3년간 유예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제3노총, 또는 공공부문의 새 노총 설립 주장은 기존 노동운동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터져 나왔다. 99년은 노사정위 정리해고 합의에 따른 후폭풍으로 민주노총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을 때다. 2002년은 발전노조 파업에 대한 민주노총의 연대파업 실패와 4·2 노정합의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한 시기다. 2005년 역시 사회적교섭과 관련한 대의원대회 폭력사태에 이어 수석부위원장 비리사건으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퇴하는 등 내부갈등이 극에 달했다. 최근의 제3노총 주장은 민주노총 성폭력사태에 따라 지도부가 총사퇴한 직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할 때마다 틈을 비집고 나온 셈이다.

앞서가는 서울지하철노조

제3노총 주장의 진원지는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과 전국의 지하철노조다. 서울지하철노조·서울도시철도노조·대구지하철노조·인천지하철노조·광주지하철노조·대전지하철노조로 구성된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전지협)는 지난해 11월 한국노동연구원에 ‘전국지하철노동조합의 조직활성화방안’에 대해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용역결과가 이달 말이나 다음달에 나오면 각 노조에서 조합원 설문조사를 한 뒤 하반기부터 연맹이나 소산별노조 설립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하철노조를 중심으로 공무원노총·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한국교원노조까지 포함해 제3노총 설립을 구체화하겠다는 것이 정 위원장의 생각이다.

하지만 각 조직이 느끼는 온도에는 차이가 있다. 정연수 위원장의 앞선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전지협 의장인 하원준 서울도시철도노조 위원장은 “위원장들끼리 의견을 모은 것은 지하철노조만의 결사체 구성뿐인데민주노총을 탈퇴한다거나 제3노총의 주력부대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놓고 제3노총을 주장할 정도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배일도 전 의원과 정연수 위원장이 한나라당 소속이고,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점도 제3노총 추진세력에게는 부담이다. 공무원노총 관계자는 “원론에는 동의하지만 지금 제3노총을 주장하는 일부 세력이 정치권과 연결됐기 때문에 섣불리 나설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최대 11만8천여명으로 추산

제3노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기업(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돼야 한다. 배일도 전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언론인터뷰 등을 통해 복수노조 도입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공공부문 중심의 제3노총에 동의하는 노조들을 보면 △공무원노총(6만5천명) △전지협(1만8천명) △전지협을 제외한 서울의료원노조 등 전국지방공기업노조협의회(독립노조나 양대노총 소속 7천명) △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5천명) △한국교원노조(8천명) 등 10만3천여명이다.
 
여기에 공공부문 노총에 관심을 보이는 토지공사노조(4천400명)·대한지적공사노조(2천500명)·인천국제공항공사노조(800명) 등 7천700여명의 국토해양부 산하 공기업노조들이 포함될 수 있다. 양대노총과 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 및 협의회, 공무원노총·전공노·민공노·법원노조·기능직공무원노조 등 주요 공무원노조·단체에 포함되지 않은 노조들은 1만2천여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 중 전력산별노조 건설에 적극적인 한국수력원자력노조 4천900여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중간노조들이 전부 제3노총에 참가하면 11만8천여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복수노조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수치다.
이 가운데 전지협과 국토해양부건설에 적극적인 소속 노조 등은 양대노총을 탈퇴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최근 인천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찬반투표가 부결된 것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다.

노선·철학 불분명해

국내 최대 공기업노조인 전국철도노조(2만5천명)와 전국전력노조(1만6천500명)가 버티고 있는 양대노총의 벽도 여전히 높다. 통합을 준비하고 있는 12만명 규모의 전공노·민공노·법원공무원노조는 통합 뒤 민주노총으로 편제될 가능성이 높다. 공공부문의 대정부교섭을 강조하는 제3노총 세력이 지난 10여년간 대정부교섭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도 한계다. 2007년 공무원노총이 공무원노조특별법에 따라 합법적 사용자인 행정안전부와 단체협상을 체결한 것이 유일하다.

특히 노선과 철학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이 제3노총의 상징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양대노총을 벗어난 공공부문의 노총이 필요하다는 주장 외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공공부문 노총 설립에 동의하고 있다는 한 지방공기업노조 관계자는 “최근 제3노총을 주장하는 노조를 보면 투쟁과 교섭을 고민하기보다는 노사화합선언이나 노사공동 봉사활동에 주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명망가 한두 명이 주장한다고 해서 제3노총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나름대로의 운동관이 없으면 노조 무력화에 일조하고 뉴라이트에 이용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노총 설립이 마냥 대안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기존 노총을 자극해 변화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제3노총이 긍정적일수도 있지만 외국사례를 보더라도 하나의 노총으로 통합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2009년 3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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