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종묘공원의 움직임이 분주해 보인다. 삼삼오오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담배를 나눠 피기도 하고, 바둑을 두다가 언성을 높이기도 하던 한적한 평상시 풍경이 아니다.

종묘공원의 분위기가 어딘가 들떠 보인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는 곳을 찾아봤다. 사람들의 손에 빵과 우유가 들려 있다. 아직 빵과 우유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조바심이 나 발을 동동 구른다. 무슨 빵인지 봤더니 민주노총 순환파업 4일째를 맞아 서비스연맹이 준비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무료 급식이다. 사람들의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700인분의 빵과 우유는 30분만에 모두 동나버렸다.


또 한켠에서는 할아버지들이 줄을 서서 앞을 기웃기웃 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따라 기웃거려 봤더니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들이 줄줄이 앉아 있다. 이제 보니 할아버지들은 그 앞에 차례로 앉아 혈압과 혈당을 재고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들을 돌봐주고 있는 이는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의료봉사를 벌이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다.

차례를 지키지 않고 새치기하는 할아버지들을 친절하게 줄을 세워 안내하고, 할아버지가 물어보는 말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성심성의껏 대답해준다. 요즘 어느 병원에서 이렇게 친절한 서비스를 받아봤던가. 혈당을 재기 위해 손을 따도 굳은살이 박힌 할아버지들은 이 정도의 '따끔함'은 이미 세월로 견뎌내왔던 듯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는다. 오히려 돈 안들이고, 진료를 받는다는 그 사실때문인지 할아버지들의 얼굴이 오늘따라 웃음을 한가득 실은 밝은 얼굴이다.

혈압과 혈당을 잰뒤 진료기록서를 가지고, 그 옆의 의사 선생님들에게 가 상담을 받는다. 74세의 한 할아버지는 혈당이 130mg/dl이다.


"할아버지, 식사 언제하셨어요?"
"12시쯤에 했죠."
"식사한 뒤에는 혈당이 좀 올라가거든요. 그러니까 정상이고요. 또 오늘처럼 바람 많이 불고 날씨가 추울 때도 혈당이 조금 올라갈 수 있어요. 그래도 혈당이 조금 높은 편이니까 밥 짜게 먹으면 안 돼요. 국물도 많이 먹지 말고요."
"국 먹으면 안돼요?"
"국은 드셔도 되는데 국물에 밥 말아 드시고, 국물 마시고 그러면 안 좋아요. 밥은 조금 깔깔하게 드시도록 하세요."
"네. 약은 안 줘요?"
"네. 정상이니까 약은 안드셔도 돼요."

특별히 몸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돌아서는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가볍다.

77세의 한 할아버지는 "내가 다리가 많이 절어요. 한 2주쯤된 거 같애. 계단 올라갈 때는 괜찮은데 내려가질 못하겠어"라고 말한다. 의사 선생님은 이것저것 살펴본 뒤 "허리디스크 때문에 다리에까지 무리가 온 것"이라고 설명한 뒤, "병원에 꼭 가서 진찰받아보셔야 돼요"라면서 손등과 허리에 테이프를 붙여준다. 2시간 가까이 의료봉사를 벌였지만 할아버지들의 발걸음은 한시도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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