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올해 1월부터 상반기 비정규투쟁의 중심에 섰던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그리고 현대하이스코 61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인정'을 요구하며 11일간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기까지.

850만 비정규노동자 숫자의 급증만큼이나 봇물처럼 터져 나왔던 올해 비정규노동운동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2일 비정규노조 대표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들의 목소리를 30일부터 2일까지 3회에 걸쳐 지상중계 한다. 30일에는 올해 비정규노동운동의 성과와 특징, 정부의 비정규법안에 대해, 1일에는 비정규노동운동의 과제와 이후 전망에 대해 싣는다. 마지막으로 2일에는 이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비정규노동운동의 성과와 의미를 담아 올해 비정규노동운동을 재조명한다.<편집자 주>


1일자에 이어 계속

사내하청, 건설일용노동자, 기간제노동자…. 850만 비정규노동자 숫자의 급증만큼이나 올해는 유독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1월 현대차비정규직노조의 5공장 점거농성을 비롯해, 울산건설플랜트노조, 덤프연대, 화물연대, 금속노조 현대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기륭전자분회,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산업인력공단 비정규직노조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크고 작은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들.

지난 22일 <매일노동뉴스>에서 주최로 진행된 ‘비정규직노조 대표자 간담회’에 참여한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은 올해 비정규노동운동에 대한 성과에 대해 “비정규직노조운동이 시작된 2000년부터 이제 5년이지만 민주노조운동을 견인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4시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정리된 올해 비정규직노조운동의 특징은 ‘다자간협상’과 ‘원청사용자성 인정’, ‘연대의 모색’ 등으로 주요 화두에 대해 쟁점이 형성됐다.


◇ 다자간 협상 = 올해 상반기 ‘단협체결’을 요구하며 3개월간 파업을 벌였던 울산건설플랜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5월27일 울산시를 비롯해 울산공장장협의회, 울산경총 등이 참여하는 공동협의회를 구성해 ‘중간합의서’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76일간 진행됐던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11일간 ‘노조인정, 단협체결’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였던 금속노조 현대하이스코비정규직지회 역시 지난 3일 순천시가 참여하는 협의단에서 ‘확약서’를 마련, 사태가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같이 진행된 ‘다자간협상’은 비정규직노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사실상 비정규직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날 간담회에서 오희택 건설산업연맹 지역·업종협의회 조직국장은 “울산건설플랜트의 경우 공장장협의회를 중심으로 전경련, 경총, 하도급 전 업체를 비롯해 노동부, 공안, 지역여론까지 가세해 공동협의회를 발족한 뒤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는 노조의 요구를 무시하고 법적 효력도 없는 다자간협상으로 사태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며 “노사간 교섭을 이같이 해결하는 것은 비정규직노조의 투쟁을 무력화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차행태 현대하이스코비정규직회 부지회장은 “이번 확약서 도출과정에서 현대하이스코쪽은 계속해서 원청사용자성을 부정하며 교섭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11일간의 고공농성으로 전국의 여론이 움직였고 현대그룹도 나섰다”며 “물론 확약서 이행여부는 불확실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들의 주장처럼 사실상 다자간협상의 틀을 이용해 사태를 일단락 짓긴 했지만 울산건설플랜트의 경우처럼 그 누구도 ‘확약서’, ‘합의서’ 이행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는 않은 상태다.


◇ 불법파견-‘원청사용자성 인정’ = 현대차의 불법파견 판정을 이후로 사내하청노조들 중심으로 올해 불법파견 진정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곳은 현대차를 비롯해 하이닉스-매그나칩, 기륭전자, GM대우차창원지부 등이며 그 외에도 현대하이스코가 불법파견과 관련 고소·고발된 상태다.

그러나 불법파견 판정을 받더라도 즉시 시정되기보다는 오히려 노사갈등이 극대화되고 있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는 올해 1월 농성을 시작으로 지난 9월 현대차노조 임단협 타결시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일궈냈으나 결과적으로 현대차가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원청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있어 교섭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하이닉스-매그나칩 및 기륭전자 역시 교섭은커녕 노동부의 시정계획 요구에 대해 ‘완전도급화’를 추진하고 있다. GM대우차 창원지부 역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조에 대해 원청은 업체 계약해지를 통해 오히려 길거리로 노동자들을 내몰았다.

김광복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대외협력국장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으면 무엇에 쓰겠느냐, 법은 만들어놨지만 불법을 시정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부족한데”라며 “현 정부법안 역시도 불법파견과 관련해 고용의무를 명시하긴 했지만 어디까지 의무이고, ‘고용의제’와도 명확히 차이가 난다”고 정부법안의 문제를 지적했다.

오석순 기륭전자분회 조합원은 “불법파견은 불법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했다는 문제보다 인권의 문제가 더 크다”며 “동일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부품보다 못한 대우, 파견법 자체가 인권을 말살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올해 주요한 노동계의 과제였던 ‘불법파견’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현실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지만 불법파견 판정 이후 고용의제 등이 불분명한 현재의 법 상태에서 비정규직노조 투쟁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 노동자연대 = 이날 간담회에서는 ‘연대’와 관련한 주장들이 많이 제기됐다.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적이지 못한 정규직노조의 연대의 부재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불거졌지만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은 정규직노조의 연대의 부재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다만 이들은 기아차, GM대우차 창원지부에서 보여줬던 35%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지지에 대해서 ‘민주노조운동’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기아차 화성지부, 현대차 울산공장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활발히 전개된 곳에서 오히려 비정규직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해주는 정규직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며 “‘고용불안’을 이유로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적일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정규직노조가 사고방식의 전환만 가져온다면 ‘연대’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훈배 학습지노조 위원장은 오히려 비정규직노동자들끼리의 연대를 강조했다. “올해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분출됐지만 이들의 투쟁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며 “‘원청사용자성 인정’이라는 공동의 요구를 하나로 모아 함께 연대하고 공동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밝혔다.

차행태 부지회장 역시 “현하이스코 투쟁에 여수건설노조, 전남동부건설노조 등이 지역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연대가 큰 도움을 줬다”며 “지금까지 단위 연맹 중심으로 진행됐던 연대의 요구가 이제는 지역으로까지 확대된 양상”이라고 말했다.

이는 원·하청 중심의 연대구조를 벗어나 산별, 지역 등 연대의 틀을 다양한 각도에서 만들어 힘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4시간여의 짧은 간담회 속에서 올해 비정규직노조운동을 정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주요했던 비정규투쟁에 나섰던 비정규직노조대표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다자간 협상’, ‘원청 사용자성’, ‘연대의 문제’ 등 주요한 쟁점들을 짚어보고 향후 과제를 도출하는 중요한 자리였음은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현안 투쟁으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날 간담회에 참여했던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께 지면을 빌어 다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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