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1년반 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는 글을 보내 왔다. 정책위의장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던 만큼, 주 전 의장의 수기는 현재 민주노동당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모색에 토론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기대된다. 주대환 전 의장의 수기는 1주에 1회씩 다섯차례에 걸쳐 연재된다. <편집자 주>



"나는 과연 ‘정책위의장’이라는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중책을 벗음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일까? 2004년 6월17일부터 2005년 10월31일까지 1년4개월 그리고 보름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모든 생각들을 마음대로 털어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중 몇가지만, 나의 주관이나 심정까지 담은 ‘수필’이라는 전제 하에 쓰고자 한다. 나의 당에 대한 충성의 과잉 표출로서 읽어 주시기를, 혹시 읽으시는 분 누군가 불쾌한 대목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21명의 지역구 낙선자와 함께 2명의 지역구 당선자, 그리고 8명의 전국구 당선자를 얻었다. 그 ‘절반의 성공’의 경험으로부터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모두가 믿고 싶어하는 것이 있다. 다음 총선에서는 ‘비례대표의 정수가 크게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아무런 근거 없이 믿고 싶어한다. 희망은 믿음이 되고 때로 사실과도 혼동이 되고 있다.

지난번에 늘어났으니 다음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심지어 100명쯤 되리라고 믿는다. 과연 그러할까? 그건 분명하지 않다. 아니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더 ‘합리적’이다. 우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를 기본으로 하고 그 보완으로서 비례대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그런 만큼 그것을 늘릴지 줄일지는 전적으로 대다수가 지역구인 현역 국회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전면적인 선거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거듭 거듭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을 권력과 바꾸자고 해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코방귀를 뀌고 말았던 데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태의 근저에는 무엇보다도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도 대다수 소선거구제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을 걸고’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이며, 또한 그래서 박근혜 대표가 코방귀를 뀌었던 것이며, 마지막으로 바로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만 ‘웃기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한편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여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도 더많은 당선자를 낼 방책과 전략을 가져야 한다. ‘영남권 진보벨트’라는 단순소박한 발상이라도 더 구체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해당 시·도당 만이 아니라 중앙당도 ‘영남권 진보벨트’ 주민들의 정서와 지역적 특성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염두에 둔 정치활동을 하며, 그 지역에서의 인물 발굴이나 계획적인 인적 자원 배치에 힘써야 할 것이다.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지역구 당선자가 한 사람으로 줄어든 지금 가장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는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기 위한 철저한 준비요, 빈틈없는 전략이다. “아무리 큰 말이라도 두 집을 내야 산다”는 바둑의 룰에 따르면 우리 당은 지금 다시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하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 당에는 전략 이전에 마인드가 거의 없다고 나는 느낀다. 비근하게 예를 들면, 지역구 출마 예정자나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배려가 없다. 좀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최고위원이라는 ‘계급장’은 다음 지역구 출마자를 위한 계급장으로도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는가? 반면에 우리 당에서는 최고위원 자리는 다음 비례대표 후보로 가는 지름길로 인식되고 있다. 크게 잘못된 것이다.


중앙당에는 지역구 낙선자를 격려하고 그를 도우고자 하는 고려가 거의 전무하다. 나는 작년에 몇번인가, 총선이 있은 지 100일이 되었거나 6개월이 되었을 때마다 거듭 ‘2004년 총선 낙선자 대회’ 같은 행사를 하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니 그전에 나는 당연하게도 총선 직후에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정파를 떠나서 121명의 낙선자들 중에서 선출되어 나올 줄로 생각했지만 내가 마주친 현실은 전혀 그게 아니었다.

지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총선의 학습 효과로 인해서 “지역구 후보로 나가서는 고생만 하고 당선 가능성이 없는 반면 전국구 비례대표 후보로 나가면 의외로 쉽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고 누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창당 이전부터, 1997년 대선부터 오랜 세월을 당에 충성하고 세번씩이나 지역구에 출마했지만 아직도 ‘재야’를 벗어나지 못한 최규엽 동지와 당원이 된 지 한달만에 국회의원이 되신 몇분들을 누구나 비교해서 바라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과연 다음 총선에서 후보로 나서려는 사람이 지난 총선만큼 그렇게 많이 나타날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한번 선거를 경험한 후보가 “다음에는 반드시 당선 되어야겠다”고 독한 마음을 먹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출마하는 그런 ‘준비된’ 후보가 많지 않을 것 같아서 더 걱정이다.

사실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공직당직 겸직금지도 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당이 지역구 국회의원 만들어내기가 얼마나 힘든가? 만약 누가 어렵사리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가 된다면 그에게는 아무런 금지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정도의 차별, 또는 ‘지역구 프리미엄’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당직과 공직의 금지를 풀자는 최고위원회의 제안이 지난 중앙위원회에서 부결되어, 그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이런 제안도 하고 싶다. 지금 서로 겸직이 금지된 공직과 당직은 국회의원(공직)과 최고위원, 시도당 위원장, 지역위원회 위원장(당직)인데, 이를 공직쪽에서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비례대표 시도의원, 비례대표 기초의원, 광역 및 기초단체장으로 확대 및 축소하고 당직쪽에서는 최고위원, 시도당 위원장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지역위원회 위원장은 지회장, 분회장과 마찬가지로 겸직금지 대상에서 제외하고 오히려 공직자들의 겸직을 장려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국회, 광역, 기초의회의 지역구 의원에 대해서는 당직을 맡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렇게 당규를 개정한 후에 8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연고지를 찾아 지역위원회 위원장을 맡도록 강요(?)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지역 사회에서 우리 당의 위상이 높아지고 당 조직이 활성화될 것이며 당원들의 사기가 높아질 것이다. 원내외가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정당법상 등록된 공식 당부도 아닌 지역위원회의 위원장, 대단한 권력이라기보다는 가장 힘든 당직으로 열성 당원들이 충성심으로 버텨 나가고 있는 자리까지 겸직을 금지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당장에는 겸직금지 제도 때문에 지역위원회 위원장을 맡지 못한다면 비례대표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지방선거 전에 차기 총선 출마 지역구를 선정하고 그 현지에서 당원들을 모아놓고 출마선언이라도 하도록 하라. 그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시급한 지방선거 대책이다. 그런 점에서 순박하게 출신 지역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지역에다 사무실을 낸 강기갑 의원과 현애자 의원이 백번 잘 하는 것이다.

계속 이렇게 개념도 없고 대책도 없이 나아가서는 민주노동당은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을 내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남은 단 한 분, 지역구 국회의원 권영길 의원도 지역에서 ‘큰 인물론’이 무색해지면서 이미 위태로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그렇다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지난 총선보다 늘어나리라는 어떤 보장도 없다.

2007년 대선에서 큰 성과를 내서 다음 총선의 밑천을 마련하자는 주장도 있다. 물론 상당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인제는 500만표를 얻고도 6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국민신당’의 깃발을 포기한 전례가 있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대선에서 성과를 내야만 다음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선에서 성과를 내는 것만으로 총선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우리 당이 지금처럼 안이하게 비례대표 국회의원 정수 늘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커다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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