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당원들이 당비 내서 운영하는 정당, 좋습니다!” 지난 총선, 선거운동을 하던 어느날, 택시 앞자리에 먼저 앉아 합승을 했던 어떤 분이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해주었을 때, 나는 이제야 우리 당의 아름다움을 알아주시는 국민들에 대한 감사로 마음 속 깊이 눈물 흘리면서 “고맙습니다!”를 연발하였다. 그 아름다움은 재벌들로부터 수백억씩 차떼기로 검은 정치자금을 받아서 정치를 하는 보수정당들의 추한 모습들과 비교가 되면서 얼마나 돋보였던가?

‘진성당원’은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힘

▲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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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이 당 재정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당의 주인으로서 ‘진성당원’의 존재는 민주노동당의 본질 중의 하나이고 당원의 힘이야말로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힘이다. 이제 그 당원이 수천명이 아니라 7만, 8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으니 민주노동당은 명실상부한 ‘대중정당’이 되었다. 당원이 없는 당, 오직 명예욕과 권력욕에 눈먼 정치인들과 그들의 연고자들만이 존재하는 ‘유사정당’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당이며 다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근본에 대해 끊임없이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당원은 무엇이며 어떤 존재인가? 민주노동당의 본질적 에너지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는가? 당비를 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당원이 너무 많고 당의 집회 시위에, 당원 모임과 행사에 참석하는 당원, 이른바 ‘활동당원’이 너무 적다는 한탄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당의 이념, 정책에 대해 학습하고 이를 대중 속에서 선전하고 또한 그를 통해서 당원이나 지지자를 조직하는 일상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우리 당원들의 말이 대중적 설득의 의욕이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점에서 당이 주최하거나 당과 관련 있는 단체가 주최하는 집회 시위에 참여하는 당원들이나 참여하지 않는 당원들이나 큰 차이가 없다. 그 결과는 심각하다. 지금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자면 우리 당의 당원은 박수치는 관객이 되어 있다. 당원이 당의 중심에 서 있는 주인이 아니라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이 되어 있다.

당원은 박수만 치는 관객이 돼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은 그동안 당원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고, 전사(戰士)로 만들어 전쟁에 내보내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들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삼 당원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문제는 더 근본적인 차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쌍방향 ‘소통’의 부족이며, 당 간부와 상근자가 당의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 당원이 주인이라는 생각의 부족이다.

비근한 예를 들어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관한 우리 당의 당론을 보자. 우리 당의 당론은 ‘독일식 정당명부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독일식이라는 지극히 복잡한 제도, 매우 복잡한 고급요리를 우리 당원들이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정말 큰 문제이다. 나는 심지어 최고위원들 중에서도 그 제도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누군가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보았다.

1998년 2월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권에 권고한 대로 “국회의원선거는 광역시도를 하나의 선거구로 하는 ‘대선거구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실시하자”는 당론을 채택했더라면(이재영 정책실장은 그것이 원래의 당론이고 ‘독일식’이라는 것은 협상을 위해 준비한 절충안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지 않다) 모든 당원이 1분만에 알아듣고 1분만에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당원을 무장시켜서 다른 당 당원, 지지자들과의 ‘포장마차 전투’에서 이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당원이 이해하지 못하는 당론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차례나 이 문제를 제기하고 당내 ‘정치개혁 TF팀’에게 토론을 제안했다. 그러나 원내의 교섭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정치개혁팀은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끝내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심지어 내가 열린우리당 일각의 중선거구제에 호감을 가진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포장마차 전투’의 무기가 없다

민주노동당 강령을 읽은 노동자 당원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강령을 읽은 당원들의 반응, 강령에 대한 당원들의 독해 정도로 강령의 내용과 형식이 적절한지를 판단하고자 하는 생각을 한 사람은 당내 이론가 중에서 몇사람이나 되는가? 노동당의 간부로서 노동자의 마음과 정서를 이해하고 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는 명쾌한 언어로 세계를 설명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하겠다는, 그리고 강령도 바로 그러한 문서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불가피하게 당 간부와 상근자, 그리고 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열성당원들 중에는 지식인, 인텔리겐챠가 많다. 말하자면 ‘운동권’이다. 그들은 집회 시위에 참석한다. 선거운동에 운동원으로 참여한다. 자연히 그들이 당의 중심에 서고 당의 활동 방식이나 문화는 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당은 ‘운동권의 놀이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동자 당원들은 소외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는 노동자 당원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당에 대한 충성도야 다양하지만 많은 노동자 당원들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대중 속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민주노동당의 주의주장을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며 당에 의해 기획되고 조직되고 격려, 지원되지 않고 있다.

당원들은 당의 전사로 자리 매김 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주인으로 자리잡지도 못하고 있다. 당의 의사 결정이 당원의 뜻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당 간부나 열성 당원은 자기 생각만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말없는 다수 당원들의 정서와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소통의 노력이다. 특히 중앙위원이나 대의원은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주요 안건에 대한 당원들의 의사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중앙위원이나 대의원들이 당원들의 의사를 충분히 묻지 않기 때문에 종종 주요한 정치적, 전략적 쟁점들이 당원의 뜻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파’의 뜻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당원의 소외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년 반 동안 내가 지켜본 중앙위원회의 토론이나 결정들 중에 상당한 부분은 내가 느끼는 당원들의 정서와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동자적, 대중적이 아니라 ‘운동권적’이다

그렇다면 지역위원회나 분회는 당원들에게 충분히 열려 있는 공간인가? 지역위원회 운영위원회나 각종 위원회의 분위기 역시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운동권적’이다. 그래서 어쩌다 운영위원으로 선출되거나 당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비운동권 당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함께 어울리고 발언하고 적응하지 못한다. 분회 모임의 분위기 역시 노동자적,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운동권적이다.

분회장은 '스토커'다.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댄다. 그렇게 해야 당원들은 미안해서 몇달에 한번이라도 분회 모임에 참석한다. 그러나 분회 모임은 노동자 당원들을 끌어당길 만한 컨텐츠가 없다. 중앙당 최고위원회에서 토론했던 것과 꼭 같은 내용을 다시 한번 토론한다. 분회다운 지역의 뉴스와 이슈가 없다. 그렇다고 당 이념과 정책에 대한 학습을 하지도 않는다. 그 공허감을 알콜로 메운다. 그러니 당원의 분회 참석은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의무적이고, 즐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참으면서 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당원이 소외된 대중이 아니고 주인이라면, 구경꾼이 아니라 싸우는 전사라면 우리는 막강한 전력(戰力)을 가지게 된다. 바로 그렇게 당원을 주인으로, 전사로 앞세우기 위해서 당 간부들은 당원 대중에 봉사해야 하는 자신의 본분을 상기하고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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