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노사 교섭이 16일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노사 간에 법안 내용 뿐 아니라 ‘만남’의 성격을 두고서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교섭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대노총과 경총에 따르면 노사 단체들은 16일 서울 모처에서 교섭단 차원의 첫 만남을 갖기로 15일 합의했다. 이 자리에는 백헌기 한국노총 사무총장, 배강욱 민주노총 집행위원장, 김영배 경총 부회장과 대한상의 관계자 1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만남은 지난 10일 열린우리당 주선으로 노사 대표자들이 모여 교섭을 합의한 지 6일만에 열리는 것이다. 당시 노동계는 늦어도 12일까지 1차 교섭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노동자대회를 치르는 등 노사 각 단체들의 일정이 맞지 않아 첫 교섭이 지연됐다.


대화냐 교섭이냐

16일 교섭이 시작되지만 ‘만남’의 형식과 성격을 두고 한차례 논란이 일 조짐이다. 노동계는 ‘만남’의 형식을 비정규직법을 두고 벌이는 ‘교섭’ 또는 ‘협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반해, 사용자단체들은 ‘대화’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교섭 또는 협상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상대편과 의논하는 것인데 비해 대화는 서로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떠한 목적을 가진 교섭과 협상은 ‘합의’나 ‘타결’ 또는 ‘결렬’ 등 결과물이 도출되는데 비해 ‘대화’는 그런 결과물이 없을 수 있거나 도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동응 경총 상무는 15일 “지난 10일 노사 대표자회동에서 ‘교섭’이나 ‘협상’을 한다고 합의하지 않았으므로, 앞으로도 ‘교섭’이나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며, 할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대신 대화에는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10일 회동 합의서에서 노사 대표자들은 만남 형식을 ‘대화’라고 명시했다. 당시 노사 대표자들은 △비정규보호입법안이 정기국회 회기 내에 입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대화’하고 △노사 ‘대화’는 4월 노사정 협상에서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출발하며 △‘대화’의 기간은 10일부터 30일까지로 한다고 약속했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형식은 대화라고 부르든 교섭으로 부르든 개의치 않지만, 노사가 만나는 목적은 비정규법을 두고 ‘교섭’을 하자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합의서에서 ‘대화’라는 표현을 썼지만 “4월 노사정 협상에서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출발”한다는 표현은 교섭이나 협상을 한다는 뜻이지, 단순히 만나 의견을 나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10일 대표자회동에서도 대화와 협상, 교섭이라는 단어들이 혼용돼서 쓰였지만, 내용적으로는 교섭이나 협상을 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지, 단순하게 ‘얼굴이나 보자’고 합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영계, 비정규법 다루는 것 자체가 부담

이처럼 ‘형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는 노사가 만나 비정규직법을 다루는 것 자체가 경영계에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경총 등 경영계단체 회원사들인 사용자들은 비정규법으로 협상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협상을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것이다. 사용자들을 회원으로 거느린 경영계는 그래서 지난 4월 노사정 협상 결렬 직후 “더이상 협상은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경영계는 이번 교섭이 ‘4월 노사정 협상’이후 ‘재개’된 것이라는 점도 부인하고 있다. 4월 노사정 협상이 ‘재개’된 것이 아니라 당시와 다른 전혀 새로운 ‘대화’를 하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는 이번 협상이 환경노동위 차원의 ‘인정’을 받아 진행되는 것인지 열린우리당의 주선으로 열리는 것인지에 대한 ‘해석’ 차이로까지 이어진다.<3면 기사 참조>

이러한 신경전에 대해 배강욱 민주노총 집행위원장은 “경총이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며 이번 교섭에서는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정길오 한국노총 교육홍보본부장은 “이번 협상은 단기적으로 비정규법을 어떻게 만들지를 협상하는 성격도 있지만, 대립만 거듭하던 중앙단위 노사단체가 최초로 만나 합리적 노사관계를 형성해보자는 역사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며 “경영계가 대승적 차원에서 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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