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올 한해 윤리경영과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척결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산업현장 곳곳에는 납품단가 인하요구 등 대기업들의 횡포 때문에 못살겠다는 중소기업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되며 삼성SDS와 1년째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조성구 얼라이언스시스템 대표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 조 대표는 이해할 수 없는 검찰 수사와 주류 언론사들의 냉대, ‘삼성에 무모하게 맞선다’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들을 1년 넘도록 견뎌왔다.

그가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정리해 <매일노동뉴스>에 보내왔다. 그의 글 속에는 납품단가 인하 요구, 그뒤의 회유와 협박 등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전형이 백과사전처럼 수록돼 있다. 우수한 품질로 피땀 흘려 일군 한 벤처기업이 대기업의 횡포에 어떻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지를 조 대표의 생생한 증언을 담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서울 중앙지검의 무성의한 수사로 불기소처분장을 받은 날, 나는 다시 한번 검찰의 공정성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게 됐다. 수사결과가 궁금해서 올해 2월 둘째주 목요일, 처리결과에 대해 문의전화를 했을 때 담당검사는 ‘검토중’이라 했지만 사실은 이미 하루 전날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었다. 허탈감과 실망감에 더이상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아! 이래서 삼성 관련 검찰 수사가 편파적이라고 하는 거구나.” 수사 중간에 담당수사관이 교체되고 수사관의 수사의견서가 사실과 다르게 작성됐으며, 5개월간 끌어오던 조사가 담당검사의 이동발령이 나자마자 불기소처분이 내려지는 등 힘없는 중소기업에게는 법마저 평등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도 진실을 밝혀내고 이 나라 천대받는 중소기업이 겪는 불공정 관행을 근절시키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자는 각오로 올 3월15일 서울 고등검찰청에 항고장을 접수시켰다.

중소기업에 법은 평등하지 않았다

물론 청와대 신문고에도 몇차례 진정서를 올리고 서울고등검찰청 홈페이지에 있는 ‘고검장과의 대화’ 란에 삼성SDS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바라는 글도 몇차례 올렸다.

집으로는 검찰총장 명의로 “귀하가 대통령 비서실에 내신 진정서는 수사기록을 편철해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하겠다”는 안내 회신도 몇차례 왔다. 그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이번엔 그래도 제대로 처리해 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씁쓸하고 우울한 마음을 달래며 혹시나 직원들 사기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잘 살펴봐야만 했다.

삼성과의 싸움으로 이미 직원들 일부가 새로운 일터를 찾아서 하나둘씩 떠나고 있었고 몇몇은 다른 회사 면접을 보러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마음은 실로 무겁기 그지없었다. 틀림없이 옳다고 판단하고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인데도 현실세계는 너무나도 냉혹할 뿐이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돈이 생명줄이니 물론 이해는 하지만 마음은 공허해지고 가끔씩은 ‘내가 왜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시작했을까, 그냥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처자식은 먹여 살릴 수 있을텐데…, 삼성이 못된 짓 하더라도 먹이사슬 관계를 생각해 대들지 말고 참고 지냈으면 이토록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가끔씩은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여기에서 포기하고 나약해져서는 절대 안 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다시금 새로운 각오로 마음을 다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국회 심상정 의원실의 보좌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국회에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근절을 위한 토론회가 있는데 사례 발표가 가능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물론 흔쾌히 응했다. 그리고 국회에서 발표할 내용에 대해 마음 속으로 준비했다. 마침 발표 당일인 5월16일, 국회방송에서 이번 토론회를 생방송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차근차근 내가 겪었던 삼성SDS와의 비즈니스에 대해 하나하나 망설임 없이, 있는 그대로 모두 이야기했다.

입찰 후 부당하게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한 사례, 사용자수를 속이고 판 사례, 검찰 고소중지 포기각서 요구 등 겪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속 시원히 발표하다 보니 주어진 10분이 경과한 것 같았다. 발표가 끝나고 난 뒤 터진 커다란 박수 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난 그때 커다란 용기와 자신감을 또 한 번 갖게 되었다.

토론회가 끝난 후 전경련에서 온 아무개 상무와도 인사를 나눴는데 우리 사건에 대해 뭔가를 아는 눈치였다. 그는 “삼성SDS건 잘 알고 있는데 (삼성SDS의) 담당임원께서 오버해서 생긴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순리대로 잘 풀 수 있는 문제를 삼성SDS의 간부가 힘없는 중소기업이라 깔보고 윗선에 보고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려다 사건이 커졌다는 얘기였다.

순간 ‘아! 삼성도 잘못을 깨닫고 느끼고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삼성SDS가 워낙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 있던 터라 전경련 상무의 말은 오히려 큰 힘이 됐다.

심판장에서 공정위 국장 출신 삼성 변호사와 설전

그렇게 힘든 시간들이 하루하루 지나갔다. 그러다 수사진행 상황이 궁금해서 올 7월말쯤 검사실에 전화를 했는데 담당검사가 한번 들어오라며 약속을 잡아주었다. 나는 또 커다란 기대를 갖고 다음날 오후2시 서울고검을 찾아갔다.

그러나 담당검사는 “내가 삼성SDS측 변호사를 만나서 다 이야기 들었는데 당신 민사소송 148억 냈다며? 당신 미친 거 아냐?” 하면서 고소인인 내가 무슨 중죄를 지은 것처럼 호되게 나무랐다. 순간 기운이 쭉 빠졌다. 사건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리고 공정한 수사를 바라며 찾아간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삼성공화국이다.’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 그럴수록 나는 나 자신에게 더욱 채찍질을 가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끝까지 가보자. 이젠 죽어도 후회없다’고 더욱 더 굳게 마음을 다졌다.

그러던 어느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전원회의가 열렸다. 이전에 있었던 시스템통합(SI)업계 불법하도급거래에 대한 소회의에서 삼성SDS만이 이의를 신청해 9개 SI업체 중 삼성만 유일하게 전원회의에 상정된 상태였다.

나는 오후2시 과천 정부청사에 도착했는데 삼성SDS측은 8명이 나와 있었다. 삼성측 변호사는 지난번처럼 공정위 국장 출신이 맡고 있었다. 삼성SDS의 주장을 오랫동안 들으면서 위원들의 질문이 시작됐고 신고인인 우리와 한 가지씩 따지면서 누구에 의한 잘못으로 발생된 불공정 거래인지 꼼꼼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공정위 위원 중 한 명이 삼성측 변호사에게 “삼성SDS는 얼라이언스시스템과 계약서 없이 사전에 구두로 작업을 시킨 게 사실입니까? 금액은 구두로 합의하신 게 맞죠? 얼라이언스는 대구은행에 가서 무슨 일을 했나요?”라고 물었다. 이후 “계약서에 도장만 안 찍었을 뿐이지 하도급거래상 이미 구두계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삼성SDS는 인정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삼성SDS측 변호사는 “인정 못합니다!”라고 응수했고 다시 위원이 “인정하시라니까요”라며 강하게 말하자 삼성측 변호사는 "인정 못한다"고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위원이 “인정하라고 했잖아요!”라며 세 번이나 얘기했고 삼성SDS측 변호사는 끝까지 인정 못한다며 버텼다. 장중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됐다.

취재해도 기사화는 안돼

그리고 잠시 후 “누구에 의해서 구두계약이 파기되었는지 따져보겠다”며 위원은 나에게 “삼성SDS측이 가격인하 요구 외에 무엇을 더 요구했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우리은행과 관련된 검찰고소 포기각서와 그와 관련된 협약서 이행완료 요청 공문을 요구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위원은 “본건 대구은행과 관련 없는 우리은행에 대한 검찰고소 포기각서 요구와 협약서 이행 요구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라며 깔끔하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그러자 삼성SDS측 변호사는 “얼라이언스가 중간에 철수했다”며 반박했고, 위원은 “얼라이언스의 일시적 철수는 정당한 것입니다. 계약체결을 조건으로 잠시 기술인력 철수는 정당한 투쟁입니다” 라고 말을 잘랐다.

모처럼 우리의 투쟁이, 싸움이 정당한 것이고 정의로운 것임을 국가기관인 공정위에서 인정해 준 것이다. ‘대한민국에 아직 정의는 살아있구나’ 새삼 느끼게 됐다. 그 후 8월18일 공정위는 삼성SDS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제조위탁에 대한 임의취소는 삼성SDS에게만 내려진 처분이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시장에서 냉대받고 ‘왕따’ 당해온 우리에게 명분이 주어진 것이다. 검찰은 두 차례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공정위는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 사건에 대해 철저히 외면했던 언론들도 이번 판결은 크게 보도했다. 사실 공정위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기자들이 우리 사건에 대해 실컷 취재를 해가고도 웬일인지 기사화되지는 않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 사건은 현재 검찰에 재항고 돼 있다. 마침 국정감사 기간이어서 민주노동당 등 각 당 여러 의원들께서 우리 사건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져주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것이 정치적 이슈화나 ‘삼성 죽이기’는 아니다.

진정 바라는 것은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없애고 정부와 재계에서 그렇게 강조해 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다. 지금이라도 삼성SDS가 지난 과오에 대해 사과하고 상생을 모색한다면 나는 기꺼이 응할 것이다. 알게 모르게 지금 많은 중소기업들이 우리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얼라이언스시스템 혼자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들을 봐서라도 나는 물러설 수 없다. 정의와 양심이 살아 있는 사회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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