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삶과 그가 추구한 가치를 21세기 젊은이들과 함께 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전태일 열사의 유족을 비롯, 전태일기념사업회 등 우리 사회 각계의 여러분들이 함께 뜻을 모았습니다. 그 첫번째 사업으로 '전태일 통신(C-Letter : Chun의 머리글자)'을 전태일 열사 분신 35년째가 되는 2005년 노동절부터 날마다 발행합니다. <편집자주>



전국 곳곳에 수 백 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한 외식업체 노동자들이 영업을 끝내고 밤 12시에 모여 노조 총회와 교육 행사를 치렀다. 지난 3월28일 경남지역의 노동자들이 부산에 모인 것을 시작으로 경북지역은 대구, 호남지역은 광주, 충청지역은 대전, 강원지역은 원주에 밤 12시에 모여 차례차례 행사를 진행했다. 마지막 날인 4월6일, 서울경기지역 노동자들이 건국대 새천년관에 모여서 새벽 두 시에 일정을 끝내는 것으로 전국순회총회와 교육을 모두 마쳤고, 그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야 했던 노조 간부들은 거의 매일 밤을 샜다.

그 행사의 진행을 맡았던 여성 부위원장은 유난히 작고 예쁜 몸집을 가진 동지였는데, 아직 겨울이 다 끝나지 않아 쌀쌀한 날씨에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열심히 뛰어다니기에 내가 "아직 날씨가 꽤 추운데 반팔이네. 건강도 생각하면서 일하세요"라고 했더니, 씩씩한 목소리로 "우리 아직 젊잖아요"라고 답했지만, 결국 나흘째 되는 날 과로로 쓰러졌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나에게 전화를 해서 남은 교육일정을 챙겨주곤 했다.

노조 간부들이 쌀쌀한 날씨에도 반팔 티셔츠를 입었던 이유는, 긴팔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 곳곳에 흩어져 일하느라고 얼굴 한번 마주 대할 기회도 없는 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간부들이라도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같은 옷을 입고 싶었는데, 지난 여름에 입었던 반팔 단체복밖에 없었고, 따로 긴팔 옷을 마련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밤 12시가 넘도록 일을 끝내지 못한 채, 매장에서 열심히 일하느라 교육에 참여하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샐러드 바의 얼음을 모두 깨끗이 치우라'는 지시를 받은 노동자가 혼자 새벽녘까지 그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매장의 동료들이 일을 도왔다. 그 초과노동에 대해 회사는 작업을 지시받은 단 한 사람에게만 임금을 줄 뿐이다. 그렇게 일하며 그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보통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다.

노사협의회에서 노조 간부가 회사 관리자에게 따졌다.

"그 일을 혼자 해 낼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한 사람에게만 작업지시를 하고, 매장 직원들 여럿이 달라붙어 그 일을 해내도 한 사람에게만 임금을 지급하니, 이것이 바로 무임금 노동, 노동력 착취 아닙니까?"

조합원들보다 몇 배의 고액 연봉을 받는 관리자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팀웍 아닙니까?"

언론이 "패스트푸드 업계가 웰빙 붐으로 고전하고 있는 사이 이 회사는 4천억원 대의 매출을 바라보게 됐다. 칭찬문화와 다양한 포상제도가 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었고 이것이 고스란히 양질의 고객 서비스로 이어져 고성장의 원동력이 됐다(한국경제TV, 2005. 2.17)"라고 보도한 곳에서 노동자들은 '1월1일 연초 휴무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였고 서울 강남역점과 종각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회사는 1월1일 영업을 강행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초 근무 동의서를 받았다. '연초 근무 동의서는 직원들이 100% 자율적으로 제출했다'는 것이 회사의 주장이고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매장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회사 압박이 있었다'는 것이 노조 주장인데, 어느 쪽의 말이 사실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맛있는 피자를 먹을 때마다 이 노동자들을 뼈에 사무치게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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