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한심한 친구가 한 사람 있습니다.

이 친구를 보고 있자면 저는 새삼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절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 친구의 삶은 언제나 불안하고 답답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14년 전에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입니다. 미등록노동자로 14년을 산 것입니다. 어쩌다 열여덟 살에 자기 나라를 떠나 이 먼 곳까지 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가 유독 어린 나이에 떠나왔다는 것이 좀 다를 뿐이지, 그 나라에서는 너무도 많은 이들이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한 일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찾아온 한국에서 그는 그야말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살아야했습니다. 프레스, 합판, 가구, 사출, 청바지 가공….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힘들만큼 여러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스스로는 한 가지 기술을 익혀 자리 잡고도 싶었다지만 그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느 학자는 이주노동자를 '영원한 신참' 이라 했습니다. 제아무리 오랫동안 한 일터에서 일해도 이주노동자에게 승진이란 거의 없습니다. 늘 찬밥신세입니다. 새로 들어온 한국인은 왕고참을 따돌리고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기 일쑤입니다. 반말 욕설, 무시, 이런 건 아예 이야깃거리도 되질 않습니다. 항상 있는 일인지라 그냥 그러려니 할 뿐 그 때마다 따지고 들었다가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내쫓길 게 뻔하지요.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사회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한국말과 글을 부지런히 배우고 잘 써도 한계가 있습니다. 사실 공부도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정식으로 할 겨를이 없어서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조금씩 배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이나 신문을 보기에 한글 실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맨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이 친구에게 허락된 것은 그저 뼈빠지게 일하는 것 뿐, 한국 사회를 이해하거나 파고드는 것은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고 해야겠지요. 그러니 그는 늘 아웃사이더입니다.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를 보듬기는커녕 밀어내기에 바빴고 자신이 떠나온 본국 사회는 너무도 멀었습니다.

한국은 이 친구를 끝내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14년 동안 일했어도 '미등록노동자' 라는 딱지는 벗겨지지 않고, 이젠 단속이라는 올가미가 죽어라 옥죄고 있습니다.

이 친구는 이제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합니다. 14년 동안 돈도 못 벌었고 무엇 하나 얻은 것도 없어 그냥 가기 부끄럽지만 그래도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가는 게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깊은 한숨을 내뱉습니다. 막막해… 너무 막막해. 내가 지금 돌아가면 뭘 할 수 있을까.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정보도 없고, 고향은 너무 많이 바뀌었을 텐데, 나이만 잔뜩 먹고.

이주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주변인으로만 살도록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정작 그 사람 자체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마치 사람에게서 노동력이라는 알맹이는 쏙 뽑아먹고는 이제 껍데기라고 내다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겠지요.

이 친구에게 한심스럽다 말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저도 한심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축제는 6월5일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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