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입장과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지점은 두 곳. 하나는 사회적 교섭 찬성·반대. 또 하나는 다수결 인정·불인정. 이 두 가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지만, 각 의견그룹 간의 대의원 수 분포와 맞물리면서 이미 두 번의 파행을 낳았다. 수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을 막다가 노선의 차이까지 드러내지 못하게 됐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연재순서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임성규 전진 의장

조돈희 전노투 상황실장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파행이냐 처리냐를 점치기에 앞서, '차이'부터 분명히 짚는 게 필요할 때다. <매일노동뉴스>는 3월8일(화)부터 4일간에 걸쳐 특집으로 <격돌! - 민주노총 대대 이렇게 가야 한다>를 마련했다. 어려운 상황, 민감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원고를 보내주신 필자들에게 감사드리며, 독자 여러분께도 <격돌!>에 실리는 원고에 대한 반론권이 있음을 말씀드린다.
원고를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②임성규 전진 의장 ③조돈희 전노투 상황실장 ④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편집자 주>
 
 
 
먼저 몇 가지 양해부터 구해야겠다. 급하게 원고청탁을 받은 데다가 우리 노조 대대 준비등 시간상 제약 때문에 글이 매끄럽지 못하다. 그리고 이 글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논의라면 할 만큼 했다

솔직히 나는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논쟁에 끼어 들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 이유는 첫째, 이것은 잘해야 본전이다. 논지를 펴면 말꼬리 잡히고 무슨 주의로 매도당하고…. 상호 대립되는 입장이 토론과정에서 변증법적으로 통일되는 게 아니라 몇날 며칠, 아니 몇달 몇년을 가도 늘 평행선이다. 입장의 변화는 없고 상호 비난과 욕설만 난무한다.

두번째 이유는 그동안의 흐름을 볼 때 이 안건은 당연히 통과될 것으로 낙관했다. 왜냐하면 민주노총이 그동안 당위적 투쟁, 장외투쟁만 남발했던 과거 노선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교섭과 투쟁의 병행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수호 후보가 당선되었고, 이미 현장 분위기도 지금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고 있는 연맹을 포함한 거의 모든 연맹의 현장 설문조사에서 조합원들은 사회적 교섭 참여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건처리 시점도 작년 하반기에 처리하려다 더 충분한 현장 토론을 하자는 데 동의가 되어 해를 넘겨 이번 정기대대에서 처리하기로 이미 합의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제 남은 것은 사회적 교섭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지나친 피해의식’을 딛고, 반대하는 동지들의 우려를 충분히 반영한 ‘참여 전술’을 짜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의 관심은 사회적 교섭 참여 그 이후였다. 민주노총 대대를 통과한 ‘세상을 바꾸는 2006 총파업투쟁’과 이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우리 노동자를 고통에 빠뜨리는 이 지긋지긋한 신자유주의를 끝장내고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솔직해지자

그런데 현실은 나의 판단과 무관하게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만 갔다. 무난하게 통과될 줄 알았던 안건이 한번 유회되고, 폭력사태까지 발생하면서 두번 유회되고, 세번째는 연기되고…. 갈수록 악화 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뭔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겠다는 소박한 의무감에서 이 글을 쓴다.

먼저 강승규, 임성규, 조돈희 동지의 글 잘 읽었다. 저마다 절절한 문제의식과 민주노총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논점은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사회적 교섭에 대한 입장이고, 또 하나는 최근 이견을 둘러싸고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먼저 사회적 교섭부터 이야기해보자. 사회적 교섭을 반대한 임성규 동지의 주장은 다소 애매하다. 즉, 사회적 교섭을 지금처럼 별도의 안건으로 삼을 필요없이 지난 1월 민주노총 정기대대에서 확정한 ‘노정교섭, 노사정교섭, 산별교섭을 포함한 중층적,총체적 교섭을 추진한다’는 것이면 충분하고, 만약 교섭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그 성격에 따라 대의원들과 함께 정한 교섭방침을 수행하면 된다고 표현했는데, 이것이 사회적 교섭 전면반대인지 아니면 필요시 전술적 참여론인지 분명하지 않다.

후자라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전술적 활용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여진다. 그럼 남는 것은 내부 이견을 잘 조율하면서 전체가 단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사회적 교섭 반대하려면 대안부터 내놓아야

임성규, 조돈희 동지의 글에 대해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논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의도와 반 노동자적 정책이다. 어떻게 그런 정부와 사회적 교섭을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사회적 교섭 추진은 결국 정부의 의도대로 노동자 죽이기 프로젝트에 이용당하고, 사회적 합의주의의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식의 접근이다. 조건 미성숙론도 비슷한 논리이다.

하지만 이것은 ‘구조주의 결정론’이고 또 다른 ‘패배주의적’ 발상이다. 모든 것이 정부가 의도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조건은 주체의 움직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충분하진 않지만 사회적 교섭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만들어지고 -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시기상조론을 이야기하거나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에, 또는 법안 연기를 위한 전술로 사회적 교섭을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소극적이다.

나는 좀더 공세적으로 사회적 교섭을 활용해야 된다고 본다. 기업을 뛰어넘는 사회적 투쟁을 위해 사회적 교섭은 필요하다. 물론 사회적 교섭이 지금 노동운동이 막혀 있는 모든 지점을 푸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보는 것은 과도하다. 그 반대로 사회적 교섭 참여가 모든 악의 근원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도 과도하다. 사회적 교섭은 그 자체로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그리고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는 동지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계속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너는 사회적 합의주의가 아니냐고 윽박지르면서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것은 왠지 과도한 느낌이다. 이건 실체가 없는 유령과의 싸움이다.

사실 정부의 노사관계 로드맵 추진, 비정규직 증가, 제조업 공동화, 의료와 교육의 시장화 문제 등 노동자의 삶과 노동에 영향을 미치는 의제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은 사회적 교섭 거부 전술 이외에 정부 정책과 법 제도개선에 효과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교섭 반대론자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참여거부 이후 대안의 부재이다.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부에 반대하고 투쟁하자. 총파업을 조직하자. 지극히 옳은 말씀이고 그 뜻을 모르는 조합원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조합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더 정교한 투쟁방침이 필요하다.

내 주장대로 안 되면 분열?

두 번째 논점은 최근 이견을 둘러싸고 발생하고있는 일련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먼저, 나는 지금의 과정이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정상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고 생각한다. 규약과 의결기구의 결정사항에 따른 지도부의 자연스런 의사결정 과정 과정에 참여하여 토론하기보다는 ‘기필코 강행 처리할 것인가’ ‘만사 제쳐두고 기어이 관철 시켜야 할 과제인가’, ‘왜 그리 무리수를 두는가’ 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식의 음모론적 접근이다.

나는 사회적 교섭 안건이 지금 이 시기 ‘기필코’ ‘만사를 제쳐두고 처리할 사안’ 이냐는 식의 문제제기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이 안건을 천년만년 토론만 하면서 다 동의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사안은 아니지 않는가? 더 이상 불필요한 논란을 벌이지 말고 어느 주장이 맞는지 판단이 안 서면 일단 우리가 정한 규약과 절차에 따라 충분히 토론하고 결정하고, 실천하고 평가하고 다시 입장을 세우면 되지 않을까?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진리는 실천을 통해서만이 검증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런 과정을 자의적으로 예단하면서 무조건 시작부터 할 수 없다는 것은 자기만 옳다는 지나친 독단이다.

‘사회적 교섭이 통과되면 단결과 투쟁은 없다’는 식의 주장도 정말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이것은 조건부 사랑이다. 조건부 단결론이다. 조직은 단결이 생명이라고 하면서 어떤 것을 전제로 단결하자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함께 못하겠다는 것 아닌가? 자신들의 주장대로 되지 않으면 분열이라는 식의 접근은 너무 자기중심적인 발상이다. 주장하되 자신과 다른 입장으로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그 결정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게 노동자계급의 올바른 자세 아닌가?

사회적 교섭과 사회적 투쟁 조직에 매진하자

이제 제발 동지 간에 그만 칼부리를 겨누자. 무리한 행동을 저지르고, 문제제기를 받으면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식으로 모든 행위가 다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아무리 그 행위의 절절함을 이해한다고 해도 ‘해야될 것’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의사진행을 폭력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수의 대의원과 조합원은 물론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그런 폭력과 파행사태를 두고 ‘그게 뭐가 문제냐?’ ‘그럴 수도 있다.’ ‘과잉대응이 아니다’는 식으로 강변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민주주의 불감증’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누가 옳고 그러냐를 갑론을박하기 이전에 우리 내부의 조직문화와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견이 발생했을 때 너무 기본 룰이 없다. 우리끼리도 힘의 논리 그대로이다. 자본, 정부와 싸우던 그 방식 그대로 부딪치면서 더 많은 상처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내부 문제는 적대적 모순관계가 아니라 비적대적 모순관계 아닌가?

최근 어느 조직이나 대의원대회가 장시간 논쟁과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현장 대의원들은 그런 대회에 정말 가고 싶지 않다고 심정을 호소한다. 정말 투쟁 결의의 장으로서, 민주주의 축제로서 대의원대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싸우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없다. 정부와 자본은 날을 세우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루빨리 사회적 교섭 관련한 ‘참여-거부’ 라는 협소한 논쟁구도를 뛰어넘어 정부의 반 노동자적인 정책기조를 바꾸기 위해 2006년 민주노총 총파업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노동운동의 대표성 위기를 어떻게 극복 할 것인지, 기업별 임단협, 노동정책 중심에서 산업정책과 복지정책을 어떻게 결합시켜나갈 것인지 ‘노동운동 발전의 종합적인 전략 구상과 새로운 판짜기’를 위해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을 때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 논쟁은 1라운드를 넘어 2라운드로 넘어가야 한다. 우린 싸우면서 목마르다. 우리에게 부족한 2% 그것은 사회적 교섭과 사회적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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