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입장과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지점은 두 곳. 하나는 사회적 교섭 찬성·반대. 또 하나는 다수결 인정·불인정. 이 두 가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지만, 각 의견그룹 간의 대의원 수 분포와 맞물리면서 이미 두 번의 파행을 낳았다. 수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을 막다가 노선의 차이까지 드러내지 못하게 됐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연재순서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② 임성규 전진 의장
조돈희 전노투 상황실장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파행이냐 처리냐를 점치기에 앞서, '차이'부터 분명히 짚는 게 필요할 때다. <매일노동뉴스>는 3월8일(화)부터 4일간에 걸쳐 특집으로 <격돌! - 민주노총 대대 이렇게 가야 한다>를 마련했다. 어려운 상황, 민감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원고를 보내주신 필자들에게 감사드리며, 독자 여러분께도 <격돌!>에 실리는 원고에 대한 반론권이 있음을 말씀드린다.
원고를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②임성규 전진 의장 ③조돈희 전노투 상황실장 ④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편집자 주>


 
사회적 교섭 방침을 둘러싸고 진행된 지난 일련의 과정을 새삼 거론하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 모두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흘렀고, 문제의 핵심이 뭔지는 분명해졌다.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잘 지적했다. “민주노총 내부의 정파간 갈등이나 이견은 노동계급 전체의 위기에 비하면 사실 사소한 것이다.”

왜 하필이면 사회적 교섭부터 서두르나

노동계급의 위기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강 수석은 “사회양극화, 비정규직, 실업자의 문제야말로 진정한 노동계급 위기의 근원”이라고 피력했다. 아마도 표현상의 실수였을 것이다. 그것들은 어떤 원인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이고, 노동계급의 실상을 포함한 사회현상의 일부다.

노동계급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로부터 왔다. 전지구적으로 팽창할 대로 팽창한 자본주의가 더 이상 개척할 시장이 없어 이윤축적의 구조적 위기에 처하자 마침내 체제 내의 노동계급을 공격하고 나선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익히 아는 바대로 노동의 사회적 배제와 노동착취의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아직도 조치해야 할 몇 가지가 더 있다는 사실이다. 강력하게 추진 중인 비정규확대법안과 노사관계선진화 방안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마당에 사회적 교섭을 한들 우리에게 돌아올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교섭’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 노동계급을 둘러싼 숱한 문제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만으로 다 해결할 수 없다는 데 반대하지 않는 한 교섭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민주노총 집행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교섭’이 노동계급 전체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 이렇게 만사 제쳐두고 기어이 선택해야할 우선 과제인가 하는 것이다.

산별로 가는 일상활동을 '교섭비용'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강 수석의 주장에 의하면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는 첫번째 이유는 “우선 교섭비용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단위 연맹에서 산별교섭 한번 하려면 교섭자리 만들기 위해 총파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힘을 다 소진해 막상 요구안을 관철시켜야 할 때는 투쟁동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하는데, 이 사례와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기나 했던가?

현상적으로 비슷한 사례가 있다 할지라도 그 준비과정에서 산별요구안과 투쟁전술, 그리고 교섭전술을 마련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집행부회의, 현장토론과 교육·선전, 집회투쟁 등을 전개했던가. 그것은 산별노조로서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필수적 일상 활동일 것이다. 그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교섭비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회적 교섭을 통해서 실제 정책담당자들을 불러 분명히 교섭을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교섭에 끌어내기 어려운 연맹들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 한다. 이야말로 교섭비용과 무관하게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근본적 차이에서 비롯된 발상이 아닌가 싶다. 그 정도 수준을 ‘산별교섭’이라고 말할 수 없을 뿐더러 아래로부터 조직된 투쟁동력이 없어도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적 교섭기구에서 다 해결해주겠다는 뜻인가?

노동자는 교섭이 무산돼야 투쟁에 나서나?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는 두번째 이유는 “지금 심각한 비정규문제나 산업공동화에 따른 산업정책문제 등의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이 문제들이 “노사나 노정 일방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문제들”이며 “적어도 논의를 통해 현주소를 분명히 하고 우리 투쟁과 역량의 결집점을 어디로 할 것인가는 분명히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결책이 없지 않다. 또한 비정규직, 산업공동화 등 심각한 현주소 또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우리가 알고, 정권이 알고 자본이 아주 잘 안다.

단언하건대 조합원들은 사회적 교섭기구를 통해 자본과 정권의 “곤란하다” 혹은 “안 된다"는 답변을 한다고 해서 폭발적으로 들고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내부 조건이 좋았던 과거 노개위와 노사정위 시절, 정권과 자본이 노동조합의 근본을 흔드는 개악안들을 쏟아내도 기업별노조들은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움직였고, 비정규직을 포함한 미조직노동자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대화의 노력이 없어서, 사회적 교섭에 참여하지 않아서, 조합원이 안 움직였고, 총파업투쟁대오가 적었다고 보는 것은 비약이고 왜곡이다.

폭력과 타협하지 않겠다면, 권력·자본과 먼저 싸워라

강 수석은 “사회적 교섭이 전술적 방침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지나치게 과잉반응”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전략적 방침도 아닌 전술적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무리한 시도를 하는 까닭이 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상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교섭 방침에 대하여 지나치게 과잉반응한 것도 없다. 꾸준히 반대의견을 피력했을 뿐이다. 2월1일 34차 대의원대회 사태를 두고 과잉반응이라고 표현한 모양인데, 민주노총 지도부는 그 사태가 결코 사회적 교섭 방침에 대한 과잉반응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민주노총이 회의구조에서 실천하는 ‘민주’는 자본주의 의회의 형식절차상 민주나 다수결 원칙 등과 달라야 한다. 지도부의 방침을 대놓고 지지하는 대의원이 과반다수를 점하고 있다고 하여 안건의 경중 구별 없이, 사전 설득과 합의를 위한 노력 없이 매사를 표결로서 결정(IT연맹 건이 대표적)해버린 태도가 원인은 아니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랬다면 그 또한 미필적 고의의 폭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2·1사태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고, 그 사태를 주도했던 사람들을 두둔할 의도도 없다.

어쨌든 2월1일 이후 바뀌지 않고 있는 사회적 교섭 방침 안건은 분명히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것이 전술방침이면 전술방침답게 취급되었어야 하고, 내부조율과정이 무엇보다 선행되었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폭력과 타협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하는데, 사회적 교섭의 대상인 권력과 자본이 우리 사회의 가장 폭력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교섭전술, 2005년 사업계획으로도 충분하다

민주노총은 1월 20일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2006년까지 이어지는 2005년도 사업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그 속에는 “노정교섭, 노사정교섭, 산별교섭을 포함하는 중층적·총체적 교섭을 추진한다”는 교섭방침도 담겨 있다. 사회적 교섭만을 따로 떼어내 안건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 투쟁사업을 중심에 두고 교섭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사안과 그 성격에 따라 대의원들과 함께 정한 교섭기조와 교섭방침을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위기의 노동계급에게 우선과제라 할 수도 없고, 여러 형태의 교섭방침 중 하나이며, 전술로서의 방침일 뿐인 사회적 교섭 방침을 굳이 이렇게 내홍을 겪으면서까지 별도의 안건으로 상정하여 기어이 관철시키겠다는 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2·1사태로 인해 연기했으면 통크게 풀어나가는 게 순리다. 솔직히 민주노총 내 의견집단들은 모두 3·15 대대를 맞아 진퇴양난에 처해 있을 것이다. 기존의 안건 그대로 상정하여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는 민주노총 집행부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 사회 변혁운동의 중심에 서서 조율하고 지도하고 힘차게 끌어나가야 할 민주노총 집행부가 여럿 중 하나인 일파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굳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집행부가 투쟁을 조직한다면 파행도 없다

늦지 않았다. 이럴 때 중심을 잡아야 하는 쪽은 집행부다. 다행히 집행부는 민주노총 대의원 과반다수의 지지를 업고 있다. 어떻게 결심하느냐에 따라 파행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모두의 훌륭한 지도부가 될 수도 있다.

정기대의원대회를 거쳐 이미 확정된 투쟁계획을 사장시키지 말고 순서대로 하나하나 실천을 조직하자. 집행부가 중심에 서서 정세인식을 통일시키고자 노력한다면, 선거할 때처럼 현장을 누비면서 자신감 넘치는 의지로 으름장이 아닌 진짜 총파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투쟁을 조직한다면,그리하여 민주노총 조직력이 살아나고 투쟁동력이 가시적으로 모아진다면, 교섭에 대한 전술의 폭도 훨씬 넓어질 것이다.

3월 15일 대의원대회는 지난 1월 20일 통과된 투쟁계획의 실천을 다시 한번 결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비정규확대법안 저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실천계획을 구체적으로 상정하여 결의하는 대회가 되어야 한다.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근래에 보기 드문 뜨거운 투쟁결의로 민주노총이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만만한 조직이 아님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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