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분노에는 대부분 일정한 정당성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주 때때로 눈꼽만큼의 정당성마저 결여된 어떤 분노들을 접할 때 우리는 ‘후안무치’라는 말을 쓴다. 그럴 때 그 분노는 사회적 해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컨대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대우 문갑식 기자가 12월 14일 조선닷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사진>이 그렇다. 조선일보에 입사한 지 벌써 16년 8개월이 된 ‘신문통’인 문 기자는 이날 ‘신문시장이 망해가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신문시장의 붕괴 원인을 나름대로 짚으며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분노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는 특히 한 국영방송 심야프로그램의 여성 아나운서를 향해 “인생의 쓴 맛 한번 본 적 없이 멍청한 눈빛에 얼굴에 화장이나 진하게 한 유흥업소 접대부 같은”이라고 표현하는 등 명백한 인신공격까지 가해 파문이 예상된다.
 
문갑식 기자는 먼저 “내년 4월이면 조선일보에 입사한 지 정확히 17년이 되지만, 올해만큼 신문시장의 위기가 심각한 적은 없었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신문시장 위기는 신문을 안보는 독자층이 넓어지고 경제상황에 따른 광고 축소”에 따른 것이라며 “제가 몸담고 있는 조선일보도 이미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으며 그보다 훨씬 전에 한 신문사는 직원들 월급을 넉달째 주지 못했고 한 스포츠 신문은 청산에 돌입했으며 자신들만이 양심이라고 자랑해오던 한 신문은 엄청난 경영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퇴직금 출자전환을 하고도 다시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고 신문시장 전반의 위기상황을 설명한다. 
 
문제는 그 다음 대목부터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렇다면 왜 신문시장에 위기가 오게 됐을까. 저는 그 원인이 한국신문들이 인터넷이 종이를 대체하는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그렇지만 전적인 책임이 신문산업 종사자들에게만 있을까. 저는 그런 의견에는 반대합니다. 무엇보다 현 정권의 집요한으로 책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 정권만큼 신문을 미워한 정권도 없을 겁니다. 대통령부터 일개 정당원들까지 입만 열면 신문을 폄훼하고 신문을 욕해왔습니다. 그 주변에 소위 시민단체로 가장한 어용단체, 권력의 주구(무슨무슨 언론단체니 어마어마한 직함을 들고 TV에 단골로 등장해 신문을 비판하던 인물들을 독자들은 기억하실겁니다)들은 한술 더 떠 거의 '한국신문은 모두 망하게 하자'는 식의 발언으로 수년째 일관해왔습니다.
 
다수의 독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신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됐고 마침내 현 정권은 강력한 힘(정권의 힘, 어용시민단체의 힘, 정권의 나팔수인 TV의 힘)을 총동원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신문시장 위기의 원인을 크게 인터넷과 현 정권의 ‘집요한 책략’ 때문으로 해석한다. 인터넷의 등장에 적응하지 못해 신문시장에 위기가 왔다는 식의 지적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위기의 책임을 난데없이 ‘현 정권의 집요한 책략’으로 돌리는 일은 정말이지 쌩뚱맞다. 삼척동자도 웃고갈 일이다.  
 
그는 독자들이 신문이란 미디어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는 이유를 정권과 시민단체의 ‘폄훼’때문이라고 진실로 믿고 있는 걸까. 조선일보는 그동안 안티조선 운동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 독자들의 충성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고 틈만나면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그의 말은 결국 ‘안티조선 운동의 성과’를 전향적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일까. 
 
그의 ‘쌩뚱맞은’ 이야길 끝까지 들어보자.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신문들이 택한 길은 세가지였습니다. 먼저 자신들이 이 정권의 창출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믿은 극소수의 신문은 마침내 자신들의 시대가 올 것으로 믿고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죠. 신문시장 점유율이 오르기는커녕 과거 '야당지'로서의 색채 상실에 실망한 독자들이 떨어져나가고 정체성에 혼란을 갖게 됐습니다.
 
둘째 앞서 말한 극소수의 신문처럼 논조를 확 바꾼데 변절한 신문들이 있었습니다. 다수 신문들이 그랬죠. 그러나 그들의 말로 역시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줄을 바꿔서고 고무신을 꺼꾸로 신는 사람을 보고 한국인들은 절대 박수를 치지않는다는 사실을 모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정권의 나팔수, 끄나불이라는 지적에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TV에 개나 소나 등장해 (제가 개나 소라고 표현하는 것은 인생의 쓴 맛 한번 본 적 없이 멍청한 눈빛에 얼굴에 화장이나 진하게 한 유흥업소 접대부같은 여성 아나운서가 등장하는 국영방송의 한 심야 프로그램을 보며 느낀 것입니다) 씹어대는 조중동이 있습니다.
 
엄청난 탄압에 시달리고 있지만 조중동이 받는 타격은 앞서 말한 두부류가 받는 타격만큼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조중동 사이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 세 신문의 존립근거가 과연 언론지향형인가, 기업에 백그라운드를 둔 것인가, 진짜 엄청난 대공황같은 사태가 와 신문이 망하게 생겼을 때 뒤에서 도와주는 쪽이 있는가 없는가를 생각하면 쉽게 그 차이를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현 정권이 모든 신문을 망하게 하려는 것은 아닐겁니다. 아마 자신들이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는 신문의 힘을 떨어뜨리려 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정권이 계산한 공식처럼 맞아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만일 이런 상황이 계속돼 현 정권이 신문시장 새판짜기에 몰입할 경우, 저는 이런 결과가 올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시장은 재벌의 이익을 앞장서 대변하는 신문이 선두로 서고 정권을 앞장서 빨아온 신문이 이런 저런 형태의 보조금이나 유무형의 도움을 받아 생존하는 겁니다. 그런 구도가 올 때 한국신문시장은 완전히 망하게되는 것이고 한국인들은 마침내 눈과 귀가 가린 채 재벌 이익과 정권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춘 기사만을 보게될 것입니다.

 
문 기자는 조중동 만큼은 ‘건재’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기업에 백그라운드를 두지 않은 순수한 ‘언론지향형’인 조선일보 같은 신문의 경우 누구보다 위기에 민감할 것이라며 독자들을 향해 엄살을 부리고 있다. 그가 말한 ‘재벌의 이익을 앞장서 대변하는’ 신문은 삼성의 측면지원을 받는 ‘중앙일보’일 것이다. 그는 중앙일보가 조선일보를 제치는 형태의 구도가 될 때 “한국신문시장은 완전히 망하게 되는 것”이라며 “한국인들은 마침내 눈과 귀가 가린 채 재벌 이익과 정권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춘 기사만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그동안 재벌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불편부당한’ 언론사로 거듭난다.
 
더욱이 탄압받고 있는 ‘조중동’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문 기자는 결정적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국영방송의 한 심야프로그램을 가리켜 ‘인생의 쓴 맛 한번 본 적 없이 멍청한 눈빛에 얼굴에 화장이나 진하게 한 유흥업소 접대부 같은 여성 아나운서가 등장하는’이라고 표현했다. 이 프로그램은 두말할 것없이 KBS의 모 시사프로그램일 것이다. 아무리 공식적 지면이 아니라고는 하나 ‘개인미디어’를 표방하는 블로그의 성격상 그의 정제되지 않은 ‘분노’는 인신공격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사회부 ‘차장급’의 언행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공인인 한 여성을 향해 ‘악의적 저주’를 퍼부은 것이다. 
 
이 시사프로그램의 담당피디는 “우리는 어떤 입장에도 열려있으므로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지만 문 기자는 자신의 발언에 일정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아닐까. 
 
문갑식 기자는 그동안 적지않은 문제성 기사를 생산해온 스타급(?) 기자다. 특히 그가 오랜세월 노동부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써온 ‘노동 관련’ 기사는 노동계 안팎의 열렬한 ‘피드백’을 받았다. 그는 일관되고 노련하게 노동계를 비판하는 기사를 생산해내면서 언론계에서 나름의 입지를 굳혔다. 민주노총 등에서 안티조선 운동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그의 기사들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근 공무원노조 교육과정에 주체사상이 포함돼있다는 ‘특종’보도를 한 것도 문갑식 기자다. (그후 조선일보는 공무원노조측의 반론보도를 싣고 말았지만.)
 
하지만 신문시장 위기의 원인을 정권과 시민단체에 돌리는 그의 단순무지한 ‘반작용’을 보며 기자는 ‘조선일보가 망해가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회부 차장 대우인 ‘잔뼈 굵은 언론인’으로서 그의 분석은 초라하고 실망스럽다. 더욱이 ‘접대부’ 운운은 물론 비문과 오문으로 가득한 그의 수준 이하의 글을 읽으며 기자는 분노를 넘어 안쓰러움마저 느낀다.   

최근 우리나라 기자들의 77%는 언론이 사회적 갈등해소기능을 못하고 있으며 이중 64%는 회사의 당파적 보도 경향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 기자들의 이런 인식에 문갑식 기자는 자신의 글들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이제 곧 기자생활 ‘17년째’를 맞는 문갑식 기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후배 기자들은 주눅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번 글처럼 노골적인 인신공격과 편가르기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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