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한국 정부가 2022년 11월~12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를 상대로 내린 업무개시명령은 본부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화물연대본부가 진정을 제기한 지 1년4개월여 만에 나온 권고인데, 정부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의미 축소에 급급하다. 일부 권고사항에 대해서는 사실관계가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박하기도 했다. 정부의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

17일 <매일노동뉴스>가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의 권고를 근거로 정부의 주장을 팩트체크 했다.

화물연대본부는 2022년 12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화물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와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을 위반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ILO는 지난 14일 350차 이사회를 열고 △자영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단체교섭 원칙 보장 △파업에 참여한 화물연대본부 조합원에 업무개시명령 불응만을 이유로 형사처벌 하지 말 것 등 5가지 권고안이 담긴 결사의 자유위원회 보고서를 채택했다.

■ 권고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용노동부는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안이 나온 직후 “결사의 자유위원회의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직접적인 제제가 없다”고 밝혔다.

노동부의 주장대로 권고안은 법적 효력, 구속력이 없다.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은 우리나라가 2021년 비준해 이듬해 4월 발효된 ILO 기본협약 87호·98호다. 그렇다고 권고 의미가 적거나 없는 것은 아니다. 결사의 자유위원회의 판단이 결사의 자유 원칙과 관련한 ILO 노동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화물연대본부는 앞서 우리나라가 비준한 두 협약을 근거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의 부당성을 주장했고,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이를 대부분 인정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 화물연대본부는 사업자단체, 파업 아닌 집단행동?=정부는 2022년 화물연대본부가 안전운임제 확대 시행을 요구하면서 벌인 파업을 ‘집단행동’으로 지칭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들로 구성된 사업주단체의 집단행동이란 것이다. 이런 주장은 결사의 자유위원회에서도 반복됐다. 정부는 화물연대본부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별도 노조설립 신고를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고, 노조법상 쟁의행위를 하기 위해 명시된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부 말을 액면 그대로 보면 사실이지만, 그동안 화물연대를 노조법상 노조로 인정하지 않았던 정부의 기존 입장은 쏙 뺐다.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화물연대본부 조합원은 화물 소유자와 운송회사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므로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돼야 한다”며 “이 사건에서 제기된 문제는 특수고용직 혹은 자영 화물차 노동자를 노조로 인정하길 계속 거부한 데서 비롯됐다”고 꼬집은 이유다.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정부가 노동자들이 결사의 자유 권리를 충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며 “화물연대본부가 조합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합법적인 단체행동권을 포함해 노동조합의 권리를 완전히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결사의 자유 침해 아니다?=정부는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우리나라의 ILO 협약 위반을 언급한 내용은 없다”며 정부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오인’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정부의 말대로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ILO 기본협약 위반 여부를 명시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이 화물연대본부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적었다. 경제 주요 부문에서 전면적 장기 파업이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 건강, 삶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합법적이지만, 명령을 내리기 전에 노조와 문제 상황을 막기 위한 최소 서비스 범위를 파악하는 노력을 해야 했는데 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정부가 11월29일 화물연대본부 조합원인 시멘트 운송 트럭 운전사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은 시멘트 부문에서 화물연대본부 파업을 금지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12월8일 철강·석유 분야 노동자들에게 내린 2차 업무개시명령에 관해서도 “어떤 방식으로 주민의 생명, 건강 또는 안전을 위협하는지 명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2022년 11월24일과 12월8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화물연대본부의 권리뿐만 아니라 파업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명시했다.

■ 업무개시명령 불응만으로 형사처벌 사례 없어?=결사의 자유위원회가 “단지 작업명령 개시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에 형벌을 부과하는 것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힌 데 노동부는 업무개시 불응만을 이유로 형사처벌된 경우가 없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화물연대 구성원에 대한 형사 제재는 개별 구성원의 불법적인 폭력·강압 행위에 대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노동부 주장은 일면 사실이다. 하지만 화물연대본부 조합원 3명이 고발당해 수사를 받았고, 이 중 1명은 무혐의 처리, 2명은 검찰 수사단계에 있다. 형사처벌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것일 뿐이다. 형사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정부가 한 것도 아니다. 정부의 답변은 동문서답인 셈이다.

■ 노동계 의견 반영돼, 사실관계 달라?=노동부는 “2022년 11~12월 파업에 참여한 화물연대본부 조합원에 대한 보복 조치와 반노조 차별, 개입 행위가 재발되지 않게 제재 조치 취하라”는 권고에 대해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파업 참여 노동자에 대한 보복 조치와 관련해 정부에 신고 접수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재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적절하지 않다는 게 노동부의 주장이다. 이어 결사의 자유위원회 보고서에 “일부 운송 회사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어떠한 신고도 접수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고 기술했다고 부각하기도 했다.

먼저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해당 권고를 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공공운수노조는 파업 진행 중 혹은 파업 뒤 개별 운송사가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에게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2022년 12월 현대오일뱅크 충남 천안지회와 대산지회 탱크로리 기사들은 화물연대본부를 탈퇴했다는 확인서를 가져와야 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는데, 이 같은 사례들을 근거로 주장한 것이다.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운송회사의 행위에 대한 신고가 정부에 접수되지 않았다고 적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화물연대본부를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시각에서 (운송회사의) 화물연대본부에 대한 보복조치를 반노조 차별 금지 및 방해행위에 관한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한다”고 밝힌 부분이 중요하다. 정부가 화물연대본부를 노조로 보지 않으면서, 사업주가 노조에 행한 부당노동·지배개입 행위에 대한 신고, 처벌이 배제되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신고가 없었다는 이유로 ‘재발’이란 표현 자체가 틀렸다는 정부의 주장이 황당한 이유다.

■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가 미치는 파장은?=화물연대본부 조합원 일부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부당하다며 행정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안은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노조는 행정결정 취소 이유로 정부가 비준한 ILO 기본협약 87호·98호 위반을 근거로 들고 있다.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안이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헌장, 필라델피아 선언의 판정례로 해석되는 만큼 법원이 결사의 자유위원회의 권고안을 고려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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