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내린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결사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하자 환영하는 노동계와 달리 정부는 의미 축소에 급급한 모양새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지난 14일 350차 이사회를 열고 정부가 2022년 11월과 12월 화물연본부 조합원을 상대로 내린 업무개시명령이 화물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단순히 업무개시명령에 불이행했다는 이유로 파업 참가자에 형사처벌을 가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화물연대본부는 2022년 12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화물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와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을 위반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노조 할 권리 보장, 노조법 개정하라”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설명회를 열고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노사단체 등의 진정 제기에 대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고안을 채택한다”며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는 국제법상 구속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이번 권고는 모든 근로자의 결사의 자유 보장, 업무개시명령 불이행만을 이유로 한 형사처벌 금지 등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가 비준한 협약은 국내법상 효력을 갖지만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단 뜻이다. 권고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나, 정부가 비준한 협약을 근거로 결사의 자유 침해 여부를 판단한 권고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화물연대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ILO 350차 이사회의 정당한 결정을 환영한다”며 “그러나 노동부는 ILO 권고의 의미를 축소하려 애쓰고 있다. 책임감 있는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ILO 협약을 비준하고 있는 회원국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도 하지 않는 망신스러운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권과 정부는 법치주의에 입각해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가치를 따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며 “한국 사회의 국제적 위상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ILO 핵심협약을 준수하고, 결사의 자유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고 해석 두고 노정 의견 갈려

정부는 권고 내용을 사실상 부정하기도 했다. 이성희 차관은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자체의 부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며 “현재까지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 내용처럼 업무개시명령 불이행만을 이유로 형사 제재를 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이 부당했다는 명시적인 표현은 없지만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정부가 화물노동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기 전 노조와 함께 최소한의 서비스 범위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이날 “업무개시명령 처분서에 기재된 복귀 시점까지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다수의 화물노동자들에 대해 국토교통부 장관 명의의 고발장이 접수됐고 수사 절차도 진행 중”이라며 “일부 화물노동자는 업무개시명령 불응만을 이유로 (일정 기간) 자격 정지라는 행정제재가 가해졌다”고 반박했다.

노동부는 입장을 꺾지 않을 전망이다. 노동부는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거나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한 오해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답변을 통해 ILO에 반영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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