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탄소중립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노동자를 배제한 위법 행위를 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행정소송이 첫걸음을 뗐다. 정부 기본계획이 노동자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입증 여부가 재판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2기 탄소중립녹색성장위를 재구성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탄소중립 기본계획 위법 확인’ 소송 첫 변론
노동계 “당사자 배제해 결정한 기본계획은 위법”

17일 전력연맹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는 연맹이 제기한 ‘정의로운 전환에 반하는 국가기본계획 의결 위법확인’ 소송에 대해 지난 14일 첫 변론 기일을 진행했다. 연맹측이 소송 청구 사유를 설명하고, 정부측이 입장을 밝혔다.

소송은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가 지난해 4월10일 ‘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한 것이 발단이 됐다. 탄소배출량을 기존 계획대로 감축하되 산업계 감축 부담은 낮추자는 취지의 계획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36년까지 석탄발전소 58기 중 28기가 폐지된다. 발전부문 노동자의 고용과 직결되는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 노동계 목소리는 배제됐다.

정부는 2기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위원 구성을 대폭 줄였다. 1기 때 77명이던 위원 규모를 50명으로 줄였다. 한국노총 위원장 등 민간위원 다수가 2기 위원회에 포함되지 않았다. 청년·노동·시민 등 이해당사자가 빠진 채 기본계획이 탄생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는 위원회 위원을 위촉할 때 “아동, 청년, 여성, 노동자, 농어민, 중소상공인,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사회계층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거나 의견을 들은 후 각 사회계층의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연맹은 같은해 7월11일 “이해관계자를 대표할 위원을 배제하면서 위원회가 위법하게 구성됐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행정소송 유형 중 하나인 당사자소송으로 방향을 잡았다. 위원회 구성에서 위법을 확인하면, 자연스레 기본계획도 위법이 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 선택이다. 연맹은 소송을 ‘정의로운 전환 소송’이라고 부르고 있다.

소송제기 8개월 만에야 첫 변론이 열린 것은 정부측의 시간지연 때문이다. 법무부는 법원에 답변서를 제출하면서 “청구 취지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연맹이 법원에 기일지정신청을 하면서야 겨우 재판이 시작했다.

전력연맹
전력연맹

“기본계획으로 발생한 노동자 피해 입증할 것”

14일 첫 변론을 보면 앞으로 향후 재판 윤곽이 잡히고 있다. 연맹은 소송 청구 사유를 밝히면서 “탄소중립 전환과정에 있어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동등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의로운 전환 취지가 탄소중립기본법에 원칙으로 명시돼 있다”며 “정부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라고 할 수 있는 전력노동자의 대표성을 배제한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가 빠진 채 결정한 기본계획으로 전력노동자의 고용불안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측은 “위원회가 의결한 국가기본계획은 국가 거시적 정책방향이므로 원고들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이 없다”며 “탄소중립기본법에는 사회 각층의 대표성을 특정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사회 각층의 위원 추천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정부가 선정한 위원들도 사회적 대표성을 반영한 전문가라고 주장했다. 양측으로부터 청구 사유와 답변을 들은 재판부는 연맹에 기본계획으로 인해 어떤 피해가 있는지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부측에는 사회적 대표성을 반영한 것이 맞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자 피해 여부가 소송의 쟁점이 되면서 연맹은 정부의 석탄발전소 폐지계획·에너지산업 전환계획에 따른 전력노동자의 지위 불안 사실을 입증할 계획이다. 연맹 관계자는 “전력노동자의 목소리가 탄소중립 논의 과정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소송을 제기한 궁극적 목표”라며 “소송을 비롯해 정치권과 연대, 사회적 압박 등을 통해 요구를 현실화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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