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die Webster(1942-2024), University of the Witwatersrand

1980년대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열풍은 ‘노동문제’(labour questions)를 다루는 학문 세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용이란 말이 노동이란 말을 밀어냈다. 한국적 맥락에서 보자면, 근로가 노동을 대체한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노동문제를 정면에서 다루는 지식인의 역할이 절실한 이 때, 노동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식인 에디 웹스터(Eddie Webster)가 지난 5일 82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1942년 3월29일 태어난 에디는 남아공 로즈대학에서 학사를 마치고,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 정치학, 철학, 경제학으로 석사를 받았다. 남아공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동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에디는 ‘사회, 일, 개발 연구소’를 만들었다. ‘

‘유기적 지식인’(an organic intellectual)으로 1970년대부터 남아공의 흑인노동운동과 인연을 맺은 에디는 노동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노동조합들과 함께 했지만, 늘 독립성과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려 애썼다. 이런 태도를 두고 그의 운동적 동지이자 학문적 동지인 칼 폰 홀트(Karl von Holdt)는 추모사에서 “에디는 변화를 위해 일하다 보면 손을 더럽혀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자율성과 지적 완결성을 견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항상 말했다”고 썼다.

이런 자세는 흑인 저항운동과 민주적 노동운동의 성과에는 기뻐했지만 그 열매를 누리려 하지 않았고, 동시에 1994년 남아공 민주화 이후 운동의 후퇴와 타락에는 실망했지만 이를 이유로 운동을 비난하거나 이탈하지 않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 고투했던 그의 삶을 관통한다.

에디는 1985년 고전적 저작인 <인종의 틀에 박혀>(Cast in a Racial Mould)를 통해 남아공의 노동문제가 인종적 차별과 편견에 기반을 둔 사회구조 안에서 형성되었음을 논증했다. 2008년에는 롭 램버트, 안드리에스 베주이덴후트와 함께 쓴 <뿌리내린 세계화: 불안정 시대의 노동>(Grounding Globalization: Labour in the Age of Insecurity)에서 호주, 한국, 남아공 사례를 통해 초국적 자본의 글로벌 공급 사슬에 포획된 노동문제를 분석했다. 에디는 한국 사례 조사를 내게 맡겼는데, 부족한 결과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2023년 9월 출판된 마지막 저작 <노동자 권력의 재구성: 디지털 시대 그늘의 일과 불평등>(Recasting Workers’ Power: Work and Inequality in the Shadow of the Digital Age)에서는 북반구(Global North)가 주도하는 세계화와 디지털화가 남반구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다뤘다.

2001년 11월 민주노총 주관으로 경기도 광주 한국노동교육원에서 열린 ‘남반구노조연대회의’(SIGTUR) 참가 차 방한한 에디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주최하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후원한 ‘노동조합의 구조조정 대응과 정치세력화 토론회’에서 남아공 사례를 발표하면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2005년 11월에는 매일노동뉴스에 ‘노동운동의 최대강령주의 문제’와 ‘남아공 산별교섭 체제의 쟁점’에 관해 두 차례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마지막 인연은 2020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전태일 50주기 국제포럼이었다. 코로나19로 인터넷 연결을 통해 이뤄진 연설에서 그는 ‘인간적이고 문명적인 글로벌 공급사슬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결론은 글로벌 공급사슬 자체는 노동착취 체제이고, 노동자단체를 통한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만이 ‘낙수효과’를 가능케하며, 이를 위해 노동자권력을 재구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운동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경제적 정책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서 계급적 대표성과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노조주의’(social unionism)를 연구한 지식인 에디 웹스터는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세계질서를 꿈꿨다. 국수적 민족주의, 인종혐오, 고삐 풀린 글로벌 자본주의가 판치는 오늘날, 노동자를 위한 세계질서라는 그의 꿈은 복원될 수 있을까? 노동문제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그가 내준 숙제다. 굿바이 에디!

윤효원 객원기자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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