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이달 25일은 변혁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인 김금수 선생(1936~2022)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주년 되는 날이다. 그의 일생은 동년배의 누구나 그러했듯이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발달을 관통하는 삶이었다. 따라서 그의 삶은 자본주의가 초래한 반인간적 상태인 착취와 억압에 대항하는 도전과 항거의 연속으로 “인간조건”을 향한 역정일 수밖에 없었다.

1936년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김금수는 ‘1차 산업혁명’부터 ‘2차 산업혁명’을 거쳐 지금의 ‘3차 산업혁명으로의 이행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자본주의 발전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살과 뼈가 갈리며 착취당하는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이 시기 대한민국은 세계체제론에서 말하는 ‘주변부국가’에서 ‘반(半)주변부국가’를 거쳐 ‘반(半)핵심부국가’로 발전했다. 남아공의 노동학자 에드워드 웹스터는 “이런 사례는 대한민국을 빼면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는 시기를 관통한 김금수의 일생은 “어떠한 희생도 치르면서”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려 했던” ‘암장’과 ‘인혁당’의 동지들에 기대어 이어 온 변혁운동의 흐름이었다. 일본과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지원을 받으며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줄기차게 이어지던 “파쇼적 통치체제”하에서 동지들은 희생돼 갔으나, 그는 노동자계급과 만나면서 변혁이론의 교훈에 따라 “반동적인 단체에서 체계적으로 참을성 있고 끈기 있게 버티면서” 각양각색의 상황과 구체적인 조건들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민주노조운동이 성장한 이후에는 “협조”와 “타협”이라는 몰이해와 비난 속에서도 “(노동자계급에게) 불리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유연한 대응을 꾀하면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에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운동 방향을 제시하려 애썼다. 그는 레닌이 “협잡꾼”이라 비난한 “모든 사건에 대해 판에 박힌 해결책이나 제시하면서 어떠한 어려움도 어떠한 복잡한 상황도 없을 것이라 약속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노동운동이 승리의 연속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노동운동이 침체와 고양, 패배와 승리, 정체와 도약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선형을 그리며 발전해 왔다”고 노동자들을 가르쳤다. “기나긴 역사의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무수한 패배를 통해 승리의 발판을 구축하게 됐고, 정체 속에서 고양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은 극심한 고난과 시련의 연속 그것이었다. 거기에는 참혹한 희생이 따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노동운동은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그는 이것이 “노동운동 발전의 합법칙성”이라고 말했다.

2015년 발간된 회고록 <인간 조건을 향한 역정>에서 그는 말했다. “노동운동 200년의 역사는 다 패배의 역사라. 이 실패의 역사, 패배의 역사가 그다음 단계를 준비한다고. 일시적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하지. 다만 주기성을 띨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데. 침체가 됐다는 것은 노동자의 상태가 그만큼 피폐돼 있다는 반증이니까. 불만이 축적되든 요구조건이 축적되든, 그것이 어느 시점에 가면 단층적으로 분출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정부나 사용자가 개량화했을 때는 그 분출이 축적됐던 것이 사그라진다든지 희석화된다든지. 끊임없는 좌절과 침체가 그다음 단계의 토대가 되는 게 노동운동 발전의 합법칙성 중의 하나라.”

우리 역사에서 1차 산업혁명과 2차 산업혁명을 관통하며 형성된 김금수의 ‘노동운동론’은 3차 산업혁명으로 이행하는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은 본질적으로 동일하고, 사회구성이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이며, 착취와 억압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상태와 조건이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기에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그의 ‘노동운동론’은 여전히 실천적으로 유효하다고 판단된다.

1970년대 노동운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선생은 한국 노동운동의 실천적 과제로 과학적인 이념과 노선의 설정을 일관되게 설파했다. 또한 말년에는 노동운동의 당면 임무로 ‘노동운동의 자기개혁과 권위회복’을 강조했다.

김금수 선생 1주기를 맞이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김금수의 노동운동론>을 발간했다. 책에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적 과제인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민족의 자주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그의 전략과 전술이 담겨 있다. 노동운동이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침체기인 지금, 다가올 고양기를 올곧게 준비하기 위해 <김금수의 노동운동론>을 읽어보자. 거기서 한국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이 나아갈 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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