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다솜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정보통신사에서 통신케이블 설치공사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하청업체가 있다. 위탁받은 업무의 대부분은 건물을 신축하거나 이전할 때, 가입자가 증가했을 때, 민원 등으로 전주를 이전하거고 철거할 때 통신선로를 신·증설하거나 이전하는 업무다. 그리고 여기에 종종 화재나 사고 등으로 인해 통신장애가 발생했을 때 원청이 긴급 임시복구를 하면 그 후 손상된 선로와 시설을 재설치하는 업무가 추가된다. 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할까?

특정 지역에서 위 업무를 위탁받은 하청업체 13개 사업장은 소속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후 단체교섭을 진행하다 노동쟁의 상태에 이르자 지방노동위원회에 필수유지업무 유지·운영 수준 등에 대한 결정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지노위는 통신선로의 신·증설 업무는 필수유지업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나, 통신장애복구 후 재설치 업무에 대해서는 별다른 근거 없이 “기왕에 설치된 통신시설에 통신장애가 발생할 경우, 쟁의행위로 인해 해당 업무가 정지 또는 폐지되면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할 수 있으므로 통신장애 수리업무는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필수유지업무 제도는 필수공익사업 중에서도 특별히 ‘공중의 생명·건강·안전·일상생활 등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업무에 한해 헌법상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정한 것으로, 기본권 제한의 측면에서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확한 목적하에서만 적용이 돼야 한다. 그렇기에 헌법재판소에서도 단순히 공중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반적인 공익사업을 넘어서 공익 내지 국민경제에 대한 위험 발생과 침해의 현저성 및 대체곤란성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할 수 있고, 나아가 필수공익사업 중에서도 그 업무가 정지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일반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으로 유지해야 할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일부 업무에 국한해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고용노동부는 통신사업을 수행하는 원청에서 일부 업무를 위탁받은 협력업체라고 할지라도 해당 업무의 실제 내용 및 성격, 대체 가능성 등에 따라 필수공익사업으로서의 통신사업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필수유지업무인 배전설비의 긴급복구업무를 수행하는 한국전력공사에서 일부 긴급복구공사를 도급받아 수행하는 전기공사업체에 대해서도 상시적으로 공사를 수행하지 않고, 긴급복구업무 일부를 원청이 직접 수행하며, 원청의 선택에 따라 타 업체의 시공이 가능해 대체 가능성이 상존하므로 필수유지업무협정 체결의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위 13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노동조합은 필수유지업무를 수행하는 원청에서 그 사업의 일부를 도급받았다 하더라도 곧바로 그 협력업체가 필수유지업무를 수행하는 사업장이라고 확정할 수 없으며, 구체적인 위탁업무의 내용 및 성격에 따라 엄격하게 필수유지업무 수행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노조법에서 의미하는 ‘통신장애의 수리 업무’는 ‘정상적인 전기통신이 가능한 상태로의 복구’라는 필요최소한의 범위를 의미하는 것이지, 정상적인 통신이 가능한 상황에서 선로나 시설을 손상된 이전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재설치 공사까지도 포함된다고 확대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원청은 해당 업무를 타 정보통신공사업체에 위탁할 수도 있기에 대체 가능성까지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재심신청 결과 하청업체가 위탁받은 통신장애 수리 후 재설치 업무는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뒤늦게라도 하청 노동자들은 필수유지업무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으나 재심판정이 있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제약된 그들의 단체행동권은 어디에서도 보상받을 수 없었다. 향후 이와 유사한 상황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필수유지업무 해당 여부 판단시 제도의 취지에 따라 반드시 대상업무의 본질적 측면을 면밀히 검토해 엄격한 법리적 판단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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