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부품 계열사인 H그린파워가 정부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시정지시를 근거로 근로시간 면제자를 모두 무급휴직 발령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기업도 근로시간 면제자 3분의 2를 대상으로 유급 노조활동을 철회하는 등 타임오프와 관련해 정부의 노동계 압박이 현장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통합’ H그린파워 면제자
7명 중 1.7명 감축 시정지시

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H그린파워는 이달 1일부로 H그린파워노조 근로시간 면제자(풀타임) 7명을 모두 무급휴직 발령했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타임오프 근로감독 결과 법에서 정한 타임오프 상한을 초과해 면제자를 운용했다는 이유에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사용자로부터 급여를 받는 근로시간 면제자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정한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H그린파워 노동자는 1천여명 이상으로 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타임오프 한도는 최대 1만시간이다. H그린파워노조 관계자는 “노동부와 사용자쪽은 타임오프 한도와 비교해 전임자 1.7명을 더 두고 있다며 전임 해제를 요구하고 응하지 않자 새해 첫날 전임자 모두를 무급으로 발령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노사는 가까스로 협의를 통해 노동부 시정지시 이행기한을 22일로 연장하고, 무급휴직 효력도 미뤄둔 상태다.

이런 노동부 시정지시는 H그린파워의 사정을 완전히 무시한 조치로,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H그린파워는 2022년 현대자동차그룹 차원의 정책에 따라 H그린파워 사내하청과 또 다른 부품사인 화인텍을 H그린파워가 병합하는 방식으로 출범한 통합 부품 자회사다. 3곳의 노동조건과 임금 테이블에 차이가 있어 통합 후 사내 안정화를 위한 노조활동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에 따라 각 사업장에 있던 기존 면제자들을 유지한 채 통합해 운영해 왔다. 노동부의 근로시간면제 한도 고시에 따르면 조합원이 1명만 돼도 최대 한 명의 풀타임 면제자를 둘 수 있다. 3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합친 H그린파워노조의 면제자수가 고시 한도를 웃돈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타임오프 근로감독이 대형 자회사 근로시간 면제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악용된 셈이다.

통합 전 수십 개 업체
상이한 노사 문제 ‘나몰라라’

현대모비스의 또 다른 부품 자회사인 모트라스·유니투스도 사정은 같다. 두 곳도 지난해 11월 노동부 근로감독 뒤 근로시간 면제자가 법이 정한 상한을 벗어난다며 시정을 지시받았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더 큰 모트라스는 풀타임 면제자가 32명이다. 타임오프 상한에 따르면 8.4명이라 24명을 줄여야 한다. 이경호 금속노조 현대모비스 화성지회장은 “2022년 모트라스 출범 이전 생산 전문사 시절 공장별로 따로 존재했던 기업과 노조가 통합하면서 각 공장별 전임자도 합치면서 한도보다 높게 된 것”이라며 “이미 모트라스 노사가 2023년 임금·단체교섭 과정에서 태스크포스팀(TFT)를 구성해 올해 상반기 협의하기로 한 사항인데 노동부가 시정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유니투스는 현재 면제자가 9명으로, 법에 따른 한도는 5.6명이라 이곳 역시 반토막 날 우려다.

박선수 금속노조 현대모비스 광주지회장은 “모트라스와 유니투스 조합원들은 전국의 광역시도에 잘게 분포해 있다”며 “공장별 현안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전임자를 반토막 내라는 것은 노조활동을 명백히 저해하려는 의도이고, 이렇게 되면 현장에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 산하지부인 현대중공업은 단체협약으로 정해 유지하던 41명 가운데 무려 30명에 대한 전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시정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받아 조치하는 시정명령과 달리, 시정지시 자체는 법적 강제성이 없는데도 사용자쪽은 강행할 의지를 내비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화하자” 노조 요구에도
사용자쪽 “정부 지시” 고자세

노조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지만 협상은 요원하다. 정부 타임오프 근로감독의 대상이 노조가 아닌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사용자쪽이 타임오프를 과도하게 허용해 노조의 독립성을 해한다며 이를 부당노동행위라고 지목했다. 시정지시의 대상이 사용자쪽이다 보니 당사자가 아닌 노조는 문제제기조차 어렵다. 박선수 지회장은 “사용자쪽이 정부의 조사에 응하면서 관련 자료를 가지고 가 문제로 삼았고, 이후 정부의 지시라며 전임 해제 이행을 완강히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를 등에 업은 만큼 변동이나 대화의 여지가 크지 않다”고 개탄했다. 정부는 이들 부품사 등을 포함한 타임오프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노동계는 정부의 이런 접근이 노동계 망신주기의 한 갈래라고 보고 있다. 정문주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노조에 온갖 불법 프레임을 씌워서 공격하는 작업의 일환”이라며 “국제적으로는 전임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는 게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은 노조 전임에 대한 노사자율을 강조하고 타임오프 상한 등을 원칙적으로 배제한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단협 시정명령까지 예상하고 있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시정지시 이후 단협으로 정한 타임오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며 “시정명령의 당사자는 노동부라 노조가 배제될 수 있어 대응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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