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조파괴’를 자행한 여러 건의 부당노동행위를 개별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불법행위를 사안마다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소멸시효 기준 시점도 달라지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4일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조합원인 A씨 등 106명이 회사와 곽정소 전 KEC그룹 회장 등 8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개별 부당노동행위의 소멸시효 부분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소송이 제기된 지 6년여 만이다.

노무팀 문건 작성해 ‘노조 탈퇴’ 종용

노사 갈등은 지회가 2010년 6월 파업에 돌입하자 사측이 직장폐쇄를 하는 과정에서 촉발됐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는 무려 8개에 달했다. 먼저 회사는 2010년 8월 ‘직장폐쇄 대응방안’을, 2011년 2월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과 ‘노무전략 시나리오’ 등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는 현 지회 집행부를 퇴진시키고 친기업 성향으로 대체해 징계와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을 통해 파업자의 전원 퇴직을 기도했고, 자발적 퇴직자가 기준에 미달하면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해 친기업 성향 노조를 설립하기로 전략을 세웠다.

노조파괴 전략은 구체적이었다. 노무팀 담당자들은 문건을 토대로 지회 탈퇴자가 발생하는 경우 부서별로 기획조정실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2011년 5월 지회가 파업을 철회하자, 사측은 다음달 조합원들에게 사직서와 조합원 탈퇴서에 서명을 강요했다. 노무팀 담당자 3명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으로 기소돼 2017년 1월 벌금 200만~300만원이 확정됐다.

조합원 75명 정리해고, 인사고과도 최저

정리해고도 단행했다. 사측은 2012년 1월 정리해고 대상자 166명에게 해고예고를 알렸다. 그러면서 KEC노조와 해고 회피방안(근로조건 하향)에 합의하면 해고를 철회하겠다는 노사합의서를 작성했다. 지회에도 이에 합의하지 않으면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다. 합의는 불발됐다. KEC는 2012년 2월24일 지회 조합원 75명을 해고했다가 석 달 뒤인 5월30일 해고를 철회하고 직원들을 복직시켰다. 이후 2017년 5월 불이익 취급의 부당노동행위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복직 이후에도 지회 조합원들에 대한 탄압은 지속됐다. 2014년 12월 능력고과와 성적고과 평정에서 지회 조합원 62명은 하위 등급인 C등급을 받았다. 이들은 승진에서 제외됐고, 고과상여금이 삭감됐다. ‘무파업 타결금’이라는 명목으로 기업노조 조합원에게만 금품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러자 금속노조와 지회 조합원들은 2017년 10월 회사와 사측 교섭대표, 노무팀 담당자, 신쌍식 자문노무사 등을 상대로 11억2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나의 공동불법행위’ 쟁점, 대법원 ‘소멸시효’ 파기

쟁점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하나의 공동불법행위’로 볼 수 있는지였다. 1·2심은 ‘조합 탈퇴 강요’와 ‘해고’는 단일한 부당노동행위 의사로 실행한 것으로서 포괄적인 하나의 행위라고 판단했다. 다만 ‘차별적 인사고과 부여’는 별개의 행위로 봤다. 이를 전제로 행위별로 가담한 피고들이 피해자 각각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KEC는 금속노조에 400만원, 조합원들에게 각 4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원고와 피고는 지난해 9월 쌍방 상고했다.

대법원은 노조파괴 행위 전부를 별개의 불법행위로 봐야 한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 각 행위는 조합 탈퇴 강요, 해고, 인사고과 등급 부여를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서 내용과 유형이 구별된다”며 “각각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이뤄졌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불법행위 성립 여부를 개별적으로 특정할 수 있으므로, 별개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채권이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소멸시효도 달라졌다. ‘노조 탈퇴 종용’만 소멸시효에 대한 파기환송심의 심리 대상이 됐다. 대법원은 “각 손해배상채권 소멸시효는 원고들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개별적으로 진행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조합 탈퇴 강요와 해고는 ‘건전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불법행위’라는 원심을 그대로 유지했다. 노조파괴 불법행위를 개별로 판단해야 하지만, 불법행위에 대한 회사와 관계자들의 공동 책임은 인정된다는 의미다. 2020년 12월 발레오전장시스템의 노조파괴에 대한 위자료 지급을 명령한 대법원 판결에 이은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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