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귀 변호사(법무법인 향법)

대상판결/ 서울서부지방법원 2014가합38234 손해배상

사건의 경과


순천향대학교 중앙의료원 산하에는 서울·부천·천안·구미에 4개의 부속병원이 있다. 종전에는 각 병원마다 기업별노동조합이 있었는데, 2009년 초순께부터 노조 통합이 추진됐다. 천안병원은 통합에 반대해 제외됐고, 나머지 3개 병원은 2009년 10월27일 통합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해 노조통합이 결의됐으며, 갑이 통합노조(원고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종전의 3개 병원 노동조합은 지부 형태로 변경됐다.

2010년 3월에 취임한 병원장 A는 취임 직후에 원고노조 와해를 목적으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과 자문계약을 체결하고 1~2주마다 순천향중앙의료원과 각 병원의 주요 간부가 참석하는 ‘병원 경영활성화를 위한 전략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자료는 창조컨설팅이 작성했고, 대표인 심종두가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 자료의 기본 형식은 ① 먼저 최근 정부·민주노총·한국노총·보건의료노조의 동향을 점검하고 ② 다음으로 순천향의료원 노사관계의 주요 쟁점사항을 점검하며 ③ 마지막으로 회의와 전략적 결정사항에 대한 논의로 이뤄졌다.

사측은 위 전략회의 결과에 따라 단체협약을 해지했고, 원고노조의 구심인 갑을 축출했으며, 교육을 빙자해 중간관리자를 포섭했다. 원고노조에 대한 반대세력으로 하여금 원고노조 핵심세력을 흔들었으며,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된 때에 맞춰 각 병원마다 노조를 신설함과 동시에 수간호사를 필두로 원고노조 탈퇴 및 신설노조 가입 작업을 진행했다. 초기에는 원고노조 위원장 갑을 끌어내리고 반대세력으로 집행부를 구성하려고 시도하다가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되는 시기에 이르자 신설노조를 띄우고 조합원 강탈 작전에 나섰다. 이로써 원고노조는 조합원 비율상으로 20% 미만의 소수노조로 전락했고, 신설노조들은 80% 이상의 과반수노조가 됐다.

2011년 10월 원고노조는 부당노동행위로 사측을 고소했고, 같은해 12월에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집행됐다(이 과정에서 위 전략회의 회의록이 압수됐다). A를 비롯한 위 전략회의 참석자들은 50만~7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고, 그중 2명은 정식재판청구를 했으나 모두 유죄판결이 선고됐다.

사건 진행 및 판결 내용

원고노조를 원고로, 형사판결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자들을 피고로 특정했다. 원고는 비재산상 손해를 청구했다.

피고들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유죄판결이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위법행위는 쟁점이 되지 않았다. 피고는 인과관계를 집중적으로 다퉜다. 즉 일선 조합원들에게 원고노조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사측의 관여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신설노조가 설립되고 다수노조가 됐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2011년 6월에 조합원 약 2천300명이었던 원고노조가 약 2개월 만에 약 400명으로 감소하고, 같은 시기에 신설노조들의 조합원들이 1천600여명으로 급증한 사실만으로도 인과관계가 인정되기에 충분했다. 법원은 사측의 개입 없이 위와 같이 급격한 조합원 변동은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법원은 조합원 감소 및 단체교섭권·단체협약체결권·단체행동권을 박탈당해 노동조합으로서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진 점을 손해로 인정했다. 손해배상액수 산정과 관련해서는 매월 약 6천만원 상당의 조합비 손실과 사측이 장기간 동안 조직적·계획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참작됐다.

판결에 대한 평가

이 사건 소송은 피고들의 공동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의 요건, 즉 가해행위, 위법성, 고의·과실, 손해발생, 인과관계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일반적인 성격의 소송이다. 다만 부당노동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받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는 않을 뿐이다.

결론에 있어서 이 사건 판결은 그다지 흠잡을 데가 없다. 유사 사건 인용액수가 3천만원에서 5천만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인용액수도 1억5천만원으로 원고 청구를 사실상 전부 인용했다. 굳이 문제점을 찾자면 다음의 2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가해행위의 특정이다. 피고들이 모두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은 탓인지 가해행위는 기초사실로 정리됐다. 법원은 피고들의 노조와해 회의 진행 행위와 2011년 7월께 집중적인 원고노조 탈퇴 및 신설노조 가입 강요행위를 가해행위로 특정했다. 그러나 전략회의를 진행한 행위뿐만 아니라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한 행위, 즉 유니언숍 협정 등 무력화 목적의 단체협약 해지, 원고노조 와해를 목적으로 하는 원고노조 위원장 부당해고, 원고노조 집행부에 도덕적 타격을 입히기 위한 업무상 횡령이나 회계부정 문제제기 등과 같은 구체적인 노조와해 작업이 가해행위로 특정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법원은 원고노조 와해 목적 전략회의를 가해행위로 인정함으로써 포괄적으로 가해행위를 특정한 것으로 보이나, 전략회의를 진행한 행위와 구체적인 실행행위는 별개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음으로 손해의 내용이다. 원고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교섭체결권·단체행동권 침해를 손해의 내용으로 주장했는데, 단결권에 대해서는 특별한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다. 나머지 노동권 침해는 모두 인정됐다. 원고노조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일상적인 조합활동이 위축되고 방해를 받았다는 점을 손해로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판단은 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법원은 조합원 감소로 인한 조합비 감소를 손해배상액 산정에 반영했는데, 이는 그로 인한 조합활동의 위축을 손해로 전제했을 때 선명하게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인 바, 법원은 조합활동의 위축도 손해에 포함된다는 전제에서 판결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긴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가

원고노조는 이 사건 소송에서 사실상 전부 승소했고, 피고들의 형사판결문보다 더욱 세세하게 사측의 위법행위를 설시한 판결문을 얻었다. 2012년 10월에 창조컨설팅은 영업허가를 취소당했고, 심종두는 노무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 사건 판결로 원고노조는 병원과 신설노조에 대해 법적·도덕적 우월성을 명확히 인정받았다. 그러나 원고노조는 여전히 소수노조로서 노동3권 행사를 제약받고 있고, 사측은 원고노조 조합원에 대해서 유·무형의 차별을 가하고 있으며, 원고노조와 신설노조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공동체가 파괴됐고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병원 입장에서 이 사건 배상금은 창조컨설팅에 가져다 바친 자문액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소액에 불과하다. 손해배상 청구소송만으로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억제할 수 없고, 진정한 손해 회복도 요원하다. 어용노조 설립이 무효임을 확인받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방안이다. 참고로 이 사건 신설노조들의 설립무효확인을 구하는 소송이 진행됐는데, 1심은 소송의 성질을 형성의 소로 보고 부적법 각하 판결을 했으나, 2심은 소 제기 자체는 적법하다고 봤고 다만 청구를 기각했다(서울고등법원 2014나2042927 판결). 어용노조의 설립무효를 법원에서 확인받을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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