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12월7일 선고를 앞두고 있는 대법원 2023도2580 사건의 피해자 변호사입니다. 5년 전 2018년 12월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원·하청 대표이사 등 다수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저는 유족을 대리해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변론을 해 왔습니다. 변호사로서 담당 사건에 대해 공개된 지면에서 재판부에 의견을 밝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변론은 이미 충분히 했으니 제가 이 사건을 수행하면서 무엇을 보게 됐는지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일터는 깜깜했습니다.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현장을 처음 둘러본 김지형 전 대법관께서 남긴 글의 일부입니다. 재판 진행을 위해 많은 기록을 보면서도, 위와 같은 반응은 평소 일터를 가까이서 접하지 못한 분의 새삼스러운 감상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그 후 저도 글로만 읽던 현장을 1심 재판 중 잠시나마 경험하게 됐습니다. 사건 이후 일정한 설비 개선 조치가 이뤄진 데다가 마치 법원의 방문을 대비한 듯, 컨베이어벨트를 멈춘 채 평소보다 더 밝고 깨끗하게 ‘준비된’ 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발전소와 각 구조물의 광활함, 공간을 채우는 묵직한 소음과 빽빽한 설비들, 채 가려지지 않은 낙탄과 흩날리는 분진 등은 여전히 거기 있었습니다. 너무 달라서 차마 비교할 수 없다는 사고 당시의 현장은 어땠을지 떠올리는 것만으로 아득했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비정규직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는 온갖 보호구들을 착용했는데도 스며든 검은 먼지들을 씻어낸 후, 겸허한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기록을 읽었습니다. 김용균과 동료들이 남긴 영상과 사진, 그 속의 일터를 들여다보며, 눈앞의 계약과 형식으로 쉽게 가려지는 현실과 실질을, 법리 이전에 체감했습니다.

단순히 현장이 깜깜하고 위험해 보여서가 아닙니다. 그곳에 서 보니, “피해자가 왜 사망했는지 모르겠다” “작업환경은 안전했다” “위험하게 일을 하는지 몰랐고 그렇게 일하라고 시킨 적도 없다” “안전조치를 할 아무런 권한과 책임이 없다”와 같은 피고인들의 변명이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지 또렷이 보였습니다. 원청 발전소에서 원청이 소유·운영하는 설비를 원청이 만든 지침에 따라 점검하고 이를 원청에 보고하는 노동자가 누구와 어떤 계약을 체결했든, 그 노동자가 온 삶으로 감내하고 있는 위험은 반드시 원청이 통제·관리해야 한다고 저는 이 사건을 통해 생생하게 배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법원의 관행적 판단들은 원·하청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를 당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사건 하급심 판결이 대표적입니다. 관심이 없을수록, 오랫동안 위험을 방치할수록, 현장에 가지 않을수록, 해당 산업과 현장에 무지할수록, 도급·위탁계약 등으로 위험을 타자화한 후 비정규 노동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을수록 책임으로부터 멀어지는 식입니다. 무엇보다 위험이 다양하거나 심각할수록, 위험에 노출되는 노동자가 많은 큰 기업일수록 안전조치 여부나 정도를 결정하는 권한이 있는 이들의 의무는 작아집니다. 법원이 결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위험이 방치되고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더 취약한 노동자들이 감내하고 있는 현실, 하루 7명 이상이 일터에서 죽는 우리의 현실에 법원의 몫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재판장님, 저는 이 사건 재판을 담당하면서 제가 손에 붙잡고 있는 법이란 것을 더 절박하고 무겁게 살피게 됐습니다. 우리 법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이 최소한의 준수 여부에 달려 있는 노동자의 삶을 깊이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이 노동자의 안전망으로 존재할 때 현장에서 안전조치는 쉽게 무시될 수 없습니다. 반면 위반해도 딱히 잃을 것이 없는 우스운 무언가가 될 때 노동자는 사실상 맨몸으로 일하게 됩니다. 안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배부른 소리가 되고, 근로감독관이나 전문가의 조언이 사업주 귀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안전조치에 인력과 비용이 드는 위험한 일터일수록 이 사건 판결에 주목하고 가이드라인 삼을 것입니다. 부디 대법원이 일터의 실체에 가닿아, 김용균 5주기 추모주간에 간절한 위로를 선고할 수 있길 바랍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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