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 16일 오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이튿날 행사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박인상 한국퇴직자총연합회 회장(83·사진)은 메모지를 꺼냈다. 연합회가 내놓은 <살아온 삶의 경험은 살아갈 삶의 나침반> 출판기념회의 인사말을 쓰기 시작했다.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기념회에서 그의 기념사 첫 마디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고언할 테니 전해 달라”였다. 윤 대통령과 면담하는 정부 인사들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그는 이 자리에서 “노동자에게 위로의 말을 해 줄 것”과 “노동계와 만날 것”을 윤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매일노동뉴스>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연합회에서 박 회장의 속마음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었다. 그는 “전 한국노총 위원장 생각이 아니라 노·사·정·전문가 출신의 퇴직자 회원들이 있는 연합회 내부 숙의 끝에 나온 결론을 기념사에 담았다”며 "“앞으로 국정운영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노동계와 반드시 대화하고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에게 노동계와 만나야 한다고 쓴소리했는데.
“노동계 선배로서 한 말은 아니다. 노동현안에 대해 노동계 선배랍시고 훈수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답도 줄 수 없다. 연합회는 기업·학계·언론계·전문가 등 많은 분야에서 활동하다 퇴직한 이들이 회원으로 있다. 최근 너무나 딱딱한 노사-노정관계에 대한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그 의견을 대통령에게 고언으로 전달해 달라고 정부측에 건의했다.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 현 정부는 노동계와 거리를 두고 있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고언을 귀담아들으면 좋겠다. 세 가지 의견을 청취해 주면 좋겠다. 먼저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으로 올라오는 데 노동자의 노력과 희생이 바탕이 됐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산재통계가 노동자의 희생을 이미 입증하지 않나. 희생하고 땀 흘리는 노동자에게 대통령이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앞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데 정부와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양대 노총과 만나야 한다. 지금은 대화의 문이 완전히 닫혀 있다. 대통령 임기가 1년6개월이 지나는데 노동계와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대통령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일단 닫힌 문부터 열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 기념사를 준비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해 들었다.
“사실 한 가지를 빼 먹었다. (웃음)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만들어 오고, 그 속에서 경제대국으로 키워 내기까지 갖은 풍파를 겪은 이들이 있다. 공무원, 기업가, 노동자, 언론인, 전문가 등. 이런 분들과 격의 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를 대통령이 가져야 한다. 오랜 경험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국정운영의 밑거름으로 삼아 보면 좋지 않을까.”

- 고언이 뜬금없는 소리가 되지는 않을까.
“연합회로서는 절박하다. 세 가지를 왜 제안했는가 하면, 고령자 문제 때문이다. 경제발전에만 초점을 맞춘 국가 운영 속에서 노동자의 삶은 발전하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고작 1988년에 생겼고, 퇴직자들의 연금 수령액은 월 5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20~30년을 넣고 받는 연금으로도 사람다운 삶을 살기 어렵다. 가장 열심히 일했던 노인·퇴직자들이 가장 힘들게 사는 나라가 됐다.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압도적 1위다. 퇴직자를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해 국가가 역할을 해야 한다. 노동계를 비롯해 전문가, 퇴직자 등과 만나 새로운 국가 정책을 고심해 달라는 마음을 담았다.”

-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로 노정 대화가 시작할 분위기는 갖춰졌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노동계를 압박하는 행태를 지속했다. 그런데 할 만큼 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노사-노정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부가 이제는 좀 이해하는 것 같다. 더구나 총선을 맞아 대통령실에 인적 변화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방향을 잡아 줘야 한다. 선거용으로 노동계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적 대화를 한다거나, 면담을 추진한다는 식의 구상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 여당에 있는 한국노총 출신 의원들도 용산만 바라보는 자세는 이제는 중단할 시기다. 전문성을 살려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

- 사회적 대화에 대한 전망은.
“대화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현 정권이 지금까지 해 온 모습을 봐도 그렇다. 그렇지만 작은 대화의 문이라도 열지 않으면 이런 모습은 이어지게 된다. 정부와 한국노총 모두 할 수 있는 의제를 중심으로 대화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처음부터 양자가 수용하지 못할 의제를 꺼내 들면 시작도 제대로 못 하고 문이 닫힌다. 대화를 끌고 나갈 방안을 정부와 한국노총 모두 준비해야 한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와 별개로 정치투쟁은 가져갈 수도 있다.”

- 왜 노정 대화가 중요한가.
“대화하지 않고 노정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국민의 삶을 정책으로 정하는 정부는 국민과 대화해야만 한다. 대화 없는 정책은 현실화하지 못한다. 노사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삶과 연관된 정책을 펴려면 노동자와 당연히 대화해야 한다. 닫힌 대화의 문을 정부가, 대통령이 열기를 간곡히 희망한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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