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혜경 노동법 박사

5·16 군사쿠데타의 실질

5·16 군사쿠데타는 정치·사회적 불안 내지 체제 위기 대안으로서 ‘혁명적’이라는 평가보다는 4·19 이후 혁명적·민주주의적 실험이 오히려 5·16 군사쿠데타로 ‘좌절’ 내지 ‘저지’됐다는 평가가 타당하다. 이는 5·16 군사쿠데타 세력이 취한 주요한 조치로 확인된다. 부정부패 척결이나 사회정화를 그들이 단행한 개혁조치 배경으로 주장하지만 실질은 5·16 군사쿠데타 반대세력과 진보세력을 권력에서 배제하는 것이었다. 박 정권은 억압과 통제를 기본으로 하되 대내외적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표방해 ‘반공주의적 개발 동원 체제’였고 국가가 위로부터 사회를 조직, 재편해 아래로부터 동원을 이끌어나가는 체제로서 ‘국가주도의 개발 동원 체제’의 본질을 갖는다.

박 정권의 노동정책은 노동조합의 재편성 측면에서, 그리고 1963년의 집단적 노동관계법의 개정 측면에서 구체적 본질이 드러난다. 우선 노동조합의 재편성 측면에서는 다음과 같다. 5·16 군사쿠데타 세력은 쿠데타 이후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를 해산시킨 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별도로 허가하는 소정의 절차에 따라 재등록하라고 공고했다. 사실상 단체의 활동을 금지시킨 것이다. 이후 군사정부가 지명한 9인위원회에서 위로부터 산업별 단일조직 체계를 확립해 노동조합을 전면적으로 재조직했다. 그러나 이러한 9인위원회에 의한 산업별 노조로의 확립은 노조자유설립주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었고 그동안 노동조합 활동의 성과를 단절시키는 것(한국노련의 부정)으로서 억압과 통제를 구체화한 것이다.

둘째 1963년의 집단적 노동관계법의 주요 개정내용을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1963년의 개정법의 특징은 복수노조를 금지함으로써 단결선택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고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에 국가의 개입을 광범위하게 강화하려는 본질을 갖고 있다. 노동위원회가 사전에 쟁의 적법 여부를 판정해 근로자의 헌법상 단체행동권이 사전에 제한되도록 했다. 따라서 제도적 차원의 법 개정 작업은 노동조합 재편성 작업과 마찬가지로 억압과 통제를 구체화한 것이다. 이렇게 억압과 통제를 본질로 하는 박 정권하의 노동정책은 형식상으로는 산업별노조 방식으로 단위노조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노조법에서 사실상 기업별노조로 유도하는 규정을 둔 것이다. 사실상 산업별노조 조직형태에서 벗어난 유사 기업별노조 형태를 지향하는 것으로서 조합주의적 통제 방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즉 단체교섭이 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지역별 산별노조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형식적이며 국가와 노조 간 정치적 연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특성을 본질로 한다. 국가가 위로부터 공식노조를 조직하고 코포라티즘(조합주의)적 제도를 부과해 노동자를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을 배제하고 있다.

1960년대 양적으로 약한 억압·통제적 노동정책

박정희 정권의 노동정책이 항상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이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에서 국가와 노동관계는 중립적 → 포섭적 → 억압적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이 입장은 타당하지 않다. 박 정권이 산별노조 체제를 요구했다지만 위로부터 공식 노조를 조직하고 조합주의적 제도를 부과해 노동자를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려는 것이 아닌 단지 기존의 노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단일한 독점적 노조를 자의적 방식으로 재조직화한 것뿐이다.

잠재적인 중요성을 지닌 사회집단이 정치적 혼란기에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차원에서 소극적인 예방조치에 불과하다. 산별노조 체제를 위로부터 조직해서 산별노조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하려는 통제유형이 아닌 예방적 차원에서의 단결체의 소극적 용인의 형태다.

또한 박 정권과 노동관계가 중립적·포섭적·억압적 관계로 변화했다는 주장은 1960년대 집단적 노동관계법의 개정 내용을 검토해 볼 때 타당하지 않다. 개정 내용은 복수노조 금지, 노조설립 신고제도, 규약의 변경 명령, 결의의 취소 변경 명령, 해산 명령 시 ‘공익을 해할 염려가 있는 경우’에 행정관청이 규약 개정 명령, 결의의 취소 변경 명령, 해산 명령이 가능하도록 한 점, 정치활동을 금지한 점, 단체교섭이나 단체협약 체결에서 산하지부의 대표자에게도 단체교섭권을 인정해 기업별노조나 기업별 협약 체결을 유도한 점, 노사협의회의 설치를 의무화한 점이다.

핵심적으로 행정관청의 개입을 과도하게 허용해 국가기관에 의한 노동관계 개입과 통제를 확대했다. 정치활동 금지를 통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기업별노조를 전제하면서도 독점적 노조조직 방식을 유도해 단결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측면에서 박 정권의 노동정책은 노조조직을 인정하려는 전제 내지는 산별노조를 통한 통제전략에 있다기보다는 애초에 노동조합의 조직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목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박 정권하의 노동관계가 1960년대는 중립적이거나 포섭적 단계였지만 1970년대에 와서 억압적으로 변모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1970년대 폭압적 노동정책 본질은 그대로

1960년대 박 정권의 노동정책은 1970년대의 긴급조치와 국가보안법 등의 초법적 기제를 결합해 노조활동을 전면 중단시키거나 억압했던 노동통제 방식과 일관된 흐름에 놓여 있다. 약한 억압·통제 방식이 강한 억압·통제 방식으로 양적으로 변화한 것뿐이다. 1960년대 노동정책이 조합주의적 통제라는 질적 변화를 추구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박 정권의 정치권력은 노동조합의 상층부를 자신의 권력으로 포섭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었다. 초기 산별노조 체제도 순전히 예방 차원에서의 통제 시도로 나타났을 뿐이다. 이후 1960년대 내내 노동자를 권력 체제 내로 수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었다는 점은 한국노총이 1960년대 후반 스스로 정치세력화를 모색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주요 노동운동에서 행정관청이나 중앙정보부가 직접 나서서 쟁의에 개입해 억압과 통제의 노동정책을 노골화했다. 시그네틱전자 쟁의에서 행정관청이 ‘노조해산에 관한 경고’ 조치한 것이나 면방 쟁의에서 중앙정보부가 직접 쟁의에 개입해 쟁의를 종결시켰던 점, 조선방직 쟁의에서 긴급조정권을 발동해 사후적으로 쟁의를 금지시켰던 것이 그 예다.

결론적으로 1960년대의 박정희 정권의 노동정책은 1970년대와 구별되는 독자적 의미를 가질 수 없고, 단지 1970년대 폭압적 노동정책과 본질적으로 동일하지만 양적으로 약한, 억압적·통제적 노동정책이었을 뿐이다.

노동법 박사 (labork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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