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건설노조와 전봇대 개폐기 작업을 하다 감전사고로 숨진 한전 하청노동자 고 김다운씨의 유족이 지난해 1월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한국전력에 위험의 외주화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한국전력공사에서 최근 3년간 한 해 평균 8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기관은 한전을 모두 발주자로 판단했고 형사처벌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한전 지위를 ‘도급인’과 ‘발주자’ 중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온 통계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사고가 발생했을 때 건설공사 발주자는 처벌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했을 때 ‘도급인’으로 인정된다. 발주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실제 검찰은 최근 2021년 11월 전봇대 작업 도중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한전 하청노동자 고 김다운(사망 당시 38세)씨 사고와 관련해 한전을 ‘발주자’로 보고 직원을 불기소 처분해 비판에 직면했다.

2021년 10명 사망 최다, 사고 행렬 지속

1일 <매일노동뉴스>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한전 사업장 내 중대재해 3년치 월별 발생건수’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한전(도급·발주 작업현장 포함)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는 총 24건(사망자 25명)에 달했다. 통계는 한전 안전보건처에서 작성했다.

한전의 산재 사망사고는 2021년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2020년 6명, 지난해 3명, 올해 9월까지 6명이 각각 목숨을 잃었다. 사고유형별로 보면 떨어짐(6명)·감전(5명)·끼임(4명)·부딪힘(4명)·맞음(2명)·교통(2명)·벌쏘임(1명)·깔림(1명) 순으로 나타났다. 사망자 나이대는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했다. 감전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망사고가 연이어 터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전은 ‘배전작업’과 관련해 2017년~2021년 총 2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감전사는 7건이었고, 2020년 직영 작업장 사고 1건을 제외하면 모두 하청업체 작업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본지 2022년 4월13일 “하청 전기노동자 22명 사고사, 5년간 한전 처벌은 ‘전무’” 기사 참조> 이번 통계를 통해 고 김다운씨 이후에도 노동자 9명의 죽음이 새롭게 확인됐다.

그러나 수사기관과 고용노동부에서 ‘발주자’로 인정된 탓에 한전 관계자는 모두 형사처벌을 피했다. 직영 사업장의 사망사고만 동료 노동자에게 벌금 500만원이 부과된 것이 전부다. 특히 2021년 1월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이후에 일어난 사고에서도 한전은 ‘발주자’ 지위를 획득했다. 2021년 이후 발생한 한전 사고는 18건에 이른다. 시공사인 하청업체 7곳에만 과태료 144만~4천만원이 부과됐다.
 

‘발주자’로 전부 면죄부, 검찰 “한전 공사업자 아냐”

한전을 유독 ‘발주자’로 판단하는 경향은 고 김다운씨 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동부는 한전을 도급인으로 보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9월19일 한전은 도급인이 아닌 ‘발주자’였다고 보고 원청 직원을 불기소 처분했다. 하청업체 책임자 5명만 업무상과실치사·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전기공사업법을 근거로 한전이 발주자 지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전기공사업법 3조1항에 따르면 전기공사는 공사업자가 아니면 도급받거나 시공할 수 없다. 당시 김씨가 수행했던 작업인 회로차단 전환 스위치(COS) 투입·개방 작업은 ‘고압배전공사’에 해당하고 이는 배전공사 전문회사에서 맡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한전은 전기사업자에 해당할 뿐 전기공사업법에 따른 전기공사업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전기공사를 도급받거나 시공할 수 없으므로 ‘발주자’ 지위에 있다”고 해석했다.

‘발주자’ 판단은 배전공사업체가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어 전기공사 시공을 총괄하고 관리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한전에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무가 아닌 ‘일반적인’ 감독 업무만 있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당시 한전 여주지사장과 여주지사 차장은 혐의를 벗었다.

‘인천항만공사 사건’ 대법원 판단 주목

건설공사에서 ‘발주자’ 판단 흐름은 ‘인천항만공사 사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2020년 6월 인천 중구 인천항 갑문 수리공사 과정에서 노동자가 숨진 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준욱 전 인천항만공사 사장은 지난 9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은 최 전 사장을 도급인으로 판단해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2심은 반대로 ‘발주자’로 보고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발주자-도급인’ 판단기준은 대법원이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최 전 사장에 대한 2심 선고 이후 5일 만에 인천지법 형사3부(재판장 이호규 부장판사)에 상고했다. 2심이 항만공사가 항만시설의 유지·보수 공사를 ‘스스로 시공할 자격이나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 만큼 대법원이 도급인 의미를 ‘원청의 실질적 지위’에 따라 규범적으로 해석할지, 아니면 실제 시공 전문성을 중심으로 살필지가 관심사다. 1심은 항만공사가 시공 과정에서 하청업체를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했다고 판단했다. 하급심이 엇갈려 법리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 하청노동자 김씨 사건에서도 검찰은 ‘실질적 시공능력’을 토대로 한전 지위를 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미 한전이 ‘도급인’에 해당한다는 지난해 3월 대법원 판결이 있어 검찰의 논리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인다. 전문가들 역시 도급인의 범위를 좁히면 ‘위험의 외주화’가 더욱 양산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전문가 “발주자 해석, 위험의 외주화 양산”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발주자라도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이면 도급인 책임을 지게 된다”며 “그런데 실무에서는 발주자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주자가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장소에 건설공사를 발주했다면 종사자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김씨 사건 불기소와 관련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한전이 수행하는 전기사업은 한전에 전문지식이 있고 현장을 통제할 수밖에 없으므로 도급인으로 봐야 한다”며 “그런데 검찰은 한전이 ‘공사업자’가 될 수 없다는 논리로 작업지시를 할 수 없다고 봤다. 논리상 모순”이라고 했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도 “최근 검찰과 법원 판단을 보면 계약의 형식이 아닌 실질에 따라 판단하는 법 해석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한전 불기소 이유와 같은 논리라면 기업은 위험한 업무를 하청에 외주화해 그 위험을 관리·통제할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고 꼬집었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더라도 경영책임자의 구체적인 관리·감독의무는 인정된다”며 “한전 역시 마찬가지로 공사 현장을 통제했으므로 도급인 지위로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호정 의원은 “한전을 ‘발주자’라는 형식만 보고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이라는 실질을 판단하지 않아 법적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줬다”며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면죄부로, 산재 발생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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