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노동뉴스 가공,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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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가 3년 전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노동을 하다가 숨진 노동자 고 장덕준(사망 당시 27세)씨 사망원인을 두고 ‘과도한 체중감량’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사망 당시 입사 때보다 약 15킬로그램 줄어든 상태였는데,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다가 영양결핍으로 숨졌다는 주장이다. 사측은 다이어트 용품 구매 여부를 알기 위해 장씨의 신용카드 사용내역까지 들여다볼 계획이다. 이미 ‘과로사’로 산재가 인정됐는데도 왜곡된 주장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고정 야간근무, 2달 만에 체중 확 줄어

2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쿠팡풀필먼트측은 장씨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변론에서 “망인의 사망에 대해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만 법적 책임은 별개 문제”라고 밝혔다. 사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 변호인단은 “망인의 혈액검사 결과에 의하면 과도한 체중감량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양결핍 상태에 있었다”며 “과도한 체중감량이 망인 심근경색의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2020년 10월12일 야간근무를 마치고 오전 4시 퇴근한 뒤 오전 7시30분께 자택 욕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부모에 의해 발견됐다.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하늘의 별이 됐다. 2019년 6월 쿠팡 대구칠곡물류센터에 일용직으로 입사해 일한 지 불과 1년4개월 만이었다. 장씨가 맡은 일은 물류 출고 지원 업무로 이른바 ‘워터 스파이더’로 불렸다. 1주 5~6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고정적으로 근무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노동을 하다가 약 1년4개월 만에 심근경색으로 숨진 고 장덕준(사망 당시 27새)씨가 입사 당시 입었던 청바지와 사망 무렵의 청바지를 비교한 모습. 빨간색 선으로 표시한 청바지가 사망 당시로 확연한 크기 차이가 난다. <유족 제공>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노동을 하다가 약 1년4개월 만에 심근경색으로 숨진 고 장덕준(사망 당시 27새)씨가 입사 당시 입었던 청바지와 사망 무렵의 청바지를 비교한 모습. 빨간색 선으로 표시한 청바지가 사망 당시로 확연한 크기 차이가 난다. <유족 제공>

장씨는 입사 이후 확연히 몸무게가 줄었다. 유족에 따르면 입사 당시 장씨는 키 172센티미터에 몸무게 약 78킬로였는데, 입사 1년여 만에 체중이 15킬로그램가량 급격히 감소했다. 입사 이후 6개월여 만에 바지 사이즈는 34인치에서 30인치로 줄었고, 상의 사이즈도 줄여 입어야 했다.

장씨 어머니 박미숙(55)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은 학교를 졸업할 당시 몸무게가 78킬로그램 정도 나갈 정도로 살이 쪘는데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살이 쭉쭉 빠져 2020년 2월에 약 68킬로그램 정도 나갔다”며 “그러다 7~8월이 지나며 갑자기 몸무게가 5킬로그램 이상 빠지며 지방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가 됐다”고 털어놨다. 장씨가 살이 자꾸 빠지자, 어머니는 고기반찬 위주로 아들을 챙겨줬다고 한다.

더웠던 대구, 밀폐된 공간서 중량물 운반

장시간 야간노동의 여파가 컸다. 근로복지공단 조사에 따르면 장씨는 매일 ‘핸드자키(손수레)’를 이용해 무게 20~30킬로그램의 물품을 하루 평균 20~40번 운반했다. 실제 2020년 4월 장씨는 ‘무릎관절증’을 진단받고 2주 가까이 일하지 못했다. 더구나 살이 급격히 빠지던 2020년 7~8월은 대구 지역 최고 기온이 30도 이상인 날이 35일이었고 열대야도 13일이나 됐다. 센터에는 냉방 시설이 부족해 고온다습한 환경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장씨의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으로 밝혀졌다. 건장한 청년에게 심근경색이 발병한 원인으로 야간노동과 과로가 지목됐다. 장씨는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았고 태권도 4단 유단자였다. 대구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2021년 2월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사망 전 12주간 근무시간이 1주 평균 58시간 이상에 교대제 근무로서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됐다는 것이다.

쿠팡측 “다이어트 물품 구매내역 확인하자”
재판부에 금융거래정보 제출 요구까지

하지만 사측은 ‘과도한 체중감량’에 초점을 맞추고 대응하고 있다. 화우 변호인단은 “망인의 의도적인 과도한 체중감량이 급성심근경색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장씨의 △낮은 알부민(간에서 합성되는 단백질) 수치 △낮은 콜레스테롤 수치 △높은 간 수치를 들었다. 장씨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체중감량을 해 영양결핍이 생겼다는 논리다.

장씨가 의도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아 단기간에 15킬로그램 감량을 했다는 것이 사측 주장의 핵심으로 읽힌다. 변호인단은 장씨 동료들에게 급속한 체중감소가 없었고, 업무로 인한 체중감소라면 영양결핍이라는 의사 소견을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간 수치가 극도로 악화할 정도로 체중감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적 스트레스 또한 심근경색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씨가 2020년 4월 걸린 무릎관절증도 사측은 “무리한 운동에 따른 전형적인 후유증”이라고 반박했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 20일 서울동부지법 민사17단독(김정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변론기일에서도 반복됐다. 변호인단은 의도적인 체중감량을 증명하기 위해 체중감량 관련 물품 구매내역을 알 수 있도록 장씨 급여계좌의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을 재판부에 신청했다. 유족측은 광범위한 내역 조회라고 주장했지만 사측은 거래내역 공개를 요구했다. 재판부는 쿠팡의 은행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 신청을 받아들였다. 다만 인터넷 쇼핑몰에 관한 사실조회신청은 금융거래내역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자식을 굶겨 죽였다는 말이냐” 유족 분노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2020년 10월12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진 고 장덕준(사망 당시 27세)씨의 어머니 박미숙(55·왼쪽)씨와 아버지 장광(61)씨가 지난 20일 오후 손해배상 소송 재판이 끝난 뒤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2020년 10월12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진 고 장덕준(사망 당시 27세)씨의 어머니 박미숙(55·왼쪽)씨와 아버지 장광(61)씨가 지난 20일 오후 손해배상 소송 재판이 끝난 뒤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유족은 ‘다이어트’ 주장이 암담하다며 분노했다. 고인의 아버지 장광(61)씨는 “다이어트에 따른 영양실조라고 주장하면 부모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오죽 부모가 못났으면 자식을 굶겨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겠나”고 울분을 토했다. 장씨 어머니는 “당시 대구는 엄청 더웠고 물류센터는 밀폐된 공간이라 아들 얼굴이 움푹 들어가고 급격하게 주름이 생길 정도였다”며 “그래서 단백질 종류의 음식을 많이 해줬는데, 다이어트를 하면서 하루 다섯 끼를 먹는다는 말이냐”고 반박했다.

특히 장씨가 근무시간이 길어 사생활을 할 여유도 없었다고 했다. 장씨 어머니는 “아들 통장을 보면 20대 청년이 쓴 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절약했다”며 “근무시간이 워낙 길어 개인적인 시간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호소했다. 유족을 대리하는 정병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사측은 혈액검사 수치를 두고 영양결핍이라고 주장하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과중한 업무를 계속하도록 방치해 급성 심근경색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쿠팡풀필먼트 전무는 2020년 국정감사에 나와서도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며 “이후에도 유족과의 대화는 단절한 채 유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무리한 체중감량이 심근경색 원인이 됐다고 주장하는 점이 매우 개탄스럽다.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장씨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됐지만 부모는 포기하지 않을 계획이다. 장씨 어머니는 쿠팡풀필먼트 대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고정적인 야간노동을 하던 아들은 사회적 살인을 당했다. 쿠팡측은 지난 국감 때도 지금도 여전히 사과하지 않는다. 본인 자식이 사망했다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노동자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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