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 19일부터 국제운수노련(ITF) 안전운임대표단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ITF에 가맹된 8개 국가의 노조를 대표해 12명이 안전운임제 캠페인에 참여하고 한국 정부에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22일 공공운수노조와 안전운임 워크숍을 열었고 23일에는 국회 앞 기자회견, 세계 화물노동자 결의대회에 참여했다.

지난해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파업에 연대한 데 이어 올해도 우리나라를 방문한 노엘 코드(58·사진) 국제운수노련 내륙운수실장은 방한 목적을 묻는 기자에게 “한국 보수정부의 노조탄압이 매우 우려된다”고 답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한국 정부의 노조탄압을 국제 노동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2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에서 이루어졌다. 통역은 오성희 공공운수노조 국제국장이 맡았다.

“화물노동자 부족 해결하려면,
양질의 노동조건부터 만들어야”

- 국제운수노련에 대해 설명해 달라.
“영국에 본부를 두고 전 세계 13개 지역에 사무소가 있다. 조합원은 2천만명 정도고 가맹 노조들을 지지하는 활동을 한다. 조직화를 지원하기도 하고 국제연대활동도 이어 가고 있다. 유엔(UN)이나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협약들이 나라별로 잘 지켜지고 있는지 개입하기도 한다. 국제 사용자단체들과 안전 문제를 논의하거나 노동기본권, 국제노동기준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활동도 한다.”

- 이번 방한 목적은 무엇인가
“내륙운수실장으로서 도로운수·철도·창고·물류 4개 분야의 노조들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을 지원한 지는 10년 이상 됐고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다.

한국 보수정부의 노조 탄압이 극심한데다가 노조를 대하는 방식이 무척 걱정스럽고 우려돼 방한하게 됐다. 올해 3월에 요하네스버그에서 분과별 회의가 있었는데 도로운수 부문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굉장히 중요한 의제로 다뤄졌다. 정부와 사용자는 운전자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배경에는 양질의 노동을 할 수 없는 환경이 있다. 도로운수 부문에 청년노동자를 어떻게 유입시키고 안전하게 일하게 할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한국뿐 아니라 브라질, 캐나다 등에서도 화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안전 문제는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걸 돌파하기 위해 안전운임제를 각 나라에 도입할 수 있도록 세계적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3월에 요하네스버그에서 하게 됐다. 특히 화물연대본부가 안전운임제 투쟁을 국제적으로 이끄는 노조이기 때문에 안전운임대표단이 방한하게 된 것이다. 화물 파업 때문에 아직까지 체포된 2명의 노동자가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구금된 것이기 때문에 이분들이 석방될 때까지 지원하고 연대하겠다는 결의도 했다.”

“안전운임제 일몰시킨 한국 정부, 시민 안전에 해 끼쳐”

- 화물연대본부가 지난해 11월·12월 파업하면서 정부와 사용자는 “안전운임제가 유례 없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흐름은 어떠한가.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다. 캐나다·브라질·미국·호주에서 안전운임제 같은 제도가 굉장히 오랫동안 운영돼 왔다. 호주는 전국 단위의 제도는 없어졌지만 주 단위의 제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다.

한국 정부의 안전운임제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는 산업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 도로운송산업뿐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도 위협하기 때문이다.

세계 안전운임 캠페인을 39개국의 63개 노조가 참여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추세는 안전운임제를 어떻게 하면 각 나라에 잘 도입할 수 있게 고민하는 것이다. 도로운송산업은 공급망이 다단계 하청 구조인데 공급망 최하단에는 화물노동자가 있다. 상단에는 정부나 경제적 사용자인 화주, 즉 운송서비스를 발주하는 대기업과 같은 재벌이 있고 그 아래에 운송사가 있다. 당연히 화물노동자는 안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운임제는 필수적이다. 대형 화물차가 사고 나면 도로 위 모든 차를 위협한다. 다른 차들도 사고에 연루되기 때문에 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국민에 대한 안전 문제다. 이러한 문제를 한국 정부가 자꾸 거부하는 것은 자국 국민의 안전을 해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잘못된 행동이다.

지난 2019년에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노사정이 모여 ‘운수산업 도로안전 및 양질의 일자리 증진을 위한 지침’을 채택했다. 한국 정부의 안전운임제 일몰 조치는 해당 지침을 위반하는 행위다.”

- 안전운임제에 대한 생각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놀랍다.
“이번 방한은 한국 정부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걸 정부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Safe rates saves lives’(안전운임제가 생명을 구한다)라는 슬로건이 나올 만큼 안전운임제는 많은 나라에서 도입된 제도다.

한국 정부가 안전운임제를 재도입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단체가 굉장히 세게 로비하기 때문일 텐데, 이들의 로비는 결국 노동자의 안전을 담보로 해 사용자들이 이익을 챙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번 대표단의 방문을 보고 경각심을 가지길 바란다.”

“안정적 노동조건 보장하면
도로 위 탄소배출 줄어들 것”

- 캐나다에서 전기예인선 가동을 준비하거나 독일과 우리나라에서 공공교통 활성화 정책을 고민하는 등 운수산업에서도 기후위기에 따른 변화가 감지된다. 국제운수노련에서는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변화나 노동자에게 끼칠 영향 등을 어떻게 전망하나.
“국제운수노련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렇다. 친환경 교통수단이나 대안적 운송수단으로의 전환이 많이 이야기된다. 특히 도로운수 부문에서도 사용자나 정부가 전기차나 자율주행차에 대한 전환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결국 비용이 핵심인 것 같다.

재생에너지로 운용되는 수소차나 전기차로 옮겨 갈 경우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지금처럼 안전이 부재한 상황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데 사용자 입장에서는 전환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특히 한국에서는 화물노동자가 특수고용직이다. 이들의 노동조건이 좋아지면 적절한 수준에서 차량을 운영할 것이고, 결국에는 탄소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도로 운송수단이 지금보다 줄어들기 때문에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노사정이 함께 모여 결정하고 이행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 정부가 일방적으로 기후위기 대책을 내다 보니 노동자는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도 적고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정부의 그러한 대응은 만국공통이다. ITF도 탄소를 줄이기 위해 철도를 장려한다. 하지만 한국은 굉장히 긴 거리의 철도 연결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다를 수 있다.

기후 문제도 결국 노동자에게 양질의 노동조건과 임금이 주어지면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어제 아프리카에서 온 동지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곳은 노후한 차량이 많고 차량 유지보수가 잘 안 돼 환경에 악영향을 많이 끼친다. 임금 수준도 매우 열악해 하루 18~20시간씩 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당연히 탄소 배출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아프리카 동지들도 안전운임제가 기후위기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점을 인지했다. 돌아가 정부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영국·독일이 성공적 철도 민영화? 웃음만 나와”

- 철도노조와 간담회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나.
“(타투 스티커가 붙여진 팔을 내밀며) 지난 20일 철도노조에 가서 이전에 있었던 파업과 앞으로의 파업에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토교통부가 시설 유지·보수 및 관제권들을 포함해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서 그와 관련된 상황을 공유했다.

정부에서 철도 기능을 분리하기 위해 컨설팅 회사에 연구용역을 줬는데 그런 연구용역은 돈을 준 사람의 입장을 반영할 것이기 때문에 결과가 의문스럽기는 하다. 또 노조를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으니 컨설팅 회사에서 (일종의 민영화) 성공 사례로 영국과 독일을 사례로 들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완전히 웃어 버렸다. 영국의 철도는 민영화했던 걸 다시 공영화하는 추세다. 민간 운영사는 돈을 벌면 시설에 재투자하지 않고 주주에게 배당금을 주기 때문에 문제가 크다. 철도노조와 영국·독일의 가맹 노조들을 연결해 사실 확인을 하도록 하려 한다.”

- 한국 정부와 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2천만명의 조합원을 대신해 말하고 싶다. 한국 정부에게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21년 ILO 기본협약 29·87·98호를 비준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협약을 준수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를 탄압하고 시민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정책을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고, 대표단의 방한이 이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화물노동자의 평균 나이를 봐라. 운수산업이 청년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운수산업이 한국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를 노조와 함께 결정하고 논의하길 바란다.

동지들에게는 계속 신념을 가지고 투쟁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도 아버지로서 우리 세대는 지구를 파괴하는 데 일조했다. 미래 세대에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지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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