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주최로 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방송제작 현장 노동환경 문제와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정기훈 기자>

주요 방송사 및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서 일한 드라마 스태프 4명 중 1명만이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2018년 드라마 제작 현장과 2021년 지상파 3사 방송작가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근로계약 체결을 장려하는 등의 조치를 했지만 현장은 아직도 변화가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당 평균 4일, 하루 14~16시간 일해”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지부장 김기영)·류호정 정의당 의원·정의당 정책위원회는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방송제작 현장 노동환경 문제와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는 지난해 실시된 드라마 스태프 노동실태 긴급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실태조사는 지부와 정의당이 실시했고 지난해 10월24일부터 11월2일까지 여론조사 전문업체를 통해 시행됐다. 드라마 스태프 324명, 프리랜서PD 174명, 방송작가 325명이 조사에 참여했다.

조사 결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일한 이들은 26.5%에 불과했다. 대부분 프리랜서 도급계약(43.2%)을 체결했고, 제작 부문별 팀장이 계약을 체결해 팀원에게 일한 만큼 나누는 ‘턴키계약’(23.5%) 관행도 여전했다. 구두계약을 맺는다는 사람도 4.6%나 됐다.

장시간 노동도 여전했다. 주당 평균 근로일수는 4일(44.1%), 6일(17.9%), 5일(16.7%) 순으로 나타났고 하루 평균 총 노동시간은 14~16시간이라는 응답이 37.7%로 가장 많았다. 하루에 16~18시간 일하는 이들도 27.5%로 적지 않았다. 12~14시간 일한다는 이들이 16.4%를 차지했다. 가장 많이 응답한 결과만을 단순 계산하면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6시간에서 최대 64시간으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명시한 근로기준법을 어긴 셈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증언에 나선 이들은 방송제작 현실을 폭로했다. 17년차 방송작가로 외주제작사에서 일하는 전아무개씨는 “월차, 연차가 없고 당연히 휴가도 없고 4대보험도 없고 출근은 있지만 퇴근은 없고 계약서가 없는 그야말로 ‘모든 게 없음’이 방송계의 관행”이라며 “17년간 외주제작사에서 일하는 동안 단 한번도 계약서를 쓰고 일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20년 넘게 독립PD로 일하고 있는 곽아무개씨도 “이 일을 시작하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동안 계약서라는 걸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며 “현장 스태프들은 방송사에 계약서를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계약서를 강제하는 방안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화처럼 근로계약 공적 의무로 부과해야”

변하지 않는 방송계의 계약 관행을 바꾸기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영재 정의당 정책위원회 정책위원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화비디오법)에는 업자와 근로자가 계약을 체결할 때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밝히도록 명시돼 있다”며 “영화산업 사례처럼 공적 지원을 받아 제작되는 방송콘텐츠에 임금체불 금지나 표준계약서 사용 등 최소한의 공적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계약 관행의 변화뿐 아니라 노동위원회 등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방송노동자를 노동관계법 보호 아래 놓일 수 있도록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기영 방송스태프지부장은 “방송제작 특성을 이유로 위탁, 도급, 위촉, 프리랜서라는 명목 아래 전근대적이고 불공정한 관행이 만연한 곳이 방송제작 현장”이라며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 스태프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그 지위에 따른 권리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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