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SPC그룹 계열사 샤니 성남 제빵공장에서 지난 8일 일어난 끼임사고로 이틀 만에 숨진 노동자 고아무개(55)씨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SPL 평택공장에서 목숨을 잃은 20대 노동자의 사고원인 중 하나로 ‘장시간 밤샘노동’이 꼽혔는데도 여전히 노동시간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1시간 근무, 1주 3~4일 ‘만성 과로’

20일 <매일노동뉴스>가 샤니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요구자료 답변에 따르면 고씨는 올해 5월부터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인 8월7일까지 연속해 11시간을 일한 날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주일에 무급휴일과 주휴일 이틀을 제외하면 한 주 47~52시간을 일했다.

석 달간 근무시간표를 보면 고인은 ‘만성 과로’에 놓였던 것으로 보인다. 샤니측은 고씨가 2019년 2월17일부터 올해 8월8일까지 주간근무를 했다고 밝혔다. 그중 5일은 고씨가 야간근무를 지원했다. 통상 평일에 쉬고 주말 중 하루는 일하는 식이었다.

고씨는 일주일 중 3~4일은 꼬박 11시간씩 일했다. 5월에는 3주 연속으로 일주일에 4일간 11시간 근무했다. 5월 평균 업무시간은 52시간으로 노동시간 한도를 꽉 채웠다. 하루 8시간 법정 노동시간을 지킨 날은 주당 하루에 그쳤다. 6월에도 비슷한 패턴은 이어졌다. 5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휴일을 빼고 모두 11시간씩 일했다. 상급자인 파트장·라인장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근무시간이 길었다. 상급자들은 휴가와 교육 등으로 근무를 빠진 날이 있었지만, 고씨는 쉬지 못했다.

7월 들어 다소 근무시간이 줄었지만, 이전 달과 큰 차이는 없었다. 주당 45~51시간을 꼬박 공장에 있었다. 쉬는 날은 평일에 집중됐다. 11시간 연속근무는 계속됐다. 8월에는 근무시간이 2~3시간 줄었다. 하지만 지난 8일 사고가 발생해 휴일을 제외한 5일간의 기록만으로 노동시간이 줄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근무일지를 보면 고씨는 3개월간 야간조 근무 교대까지 계속 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루 11시간 근무는 ‘만성 과로’ 기준에 근접하는 수치다. 판례는 뇌심혈관 질환 발병 전 3개월 이상 연속적으로 과중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켰다고 인정되는 업무적 요인이 확인되면 만성 과로라고 판단하고 있다. 뇌심혈관 질병이 사고원인이 아니지만, 고씨의 육체적 부담이 있었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교대제 업무” 지적에도 개선 안 돼

주 단위 근무시간은 고용노동부 고시가 정한 과로 기준에는 미치지 않는다. 노동부는 ‘뇌심혈관 질병의 업무 관련성 인정기준’에서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주 52시간 미만이라도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교대제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 △유해한 작업환경 노출 업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는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해당한다. 고씨에게 적용될 수 있는 항목도 있다.

중대재해 전문가들은 사고 위험을 높이는 주야 12시간 맞교대제가 사고 위험을 높였을 것으로 지적한다. 지난해 SPL 사고가 되풀이됐다는 것이다. 당시 숨진 20대 노동자도 밤샘근무로 졸아 잠시 균형을 잃고 오른팔로 물체를 짚으려다가 교반기를 헛짚은 것으로 추정됐다. SPL은 지난해 2~4월 업무량 폭증을 이유로 특별연장근로를 인가받기도 했다. SPL 공장은 주야 2교대 12시간 맞교대로 운영돼 왔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노동이 피로 누적은 물론 ‘사고 위험성’을 높이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고씨는 지난 8일 오후 12시33분께 치즈케이크 생산공정 중 증기라인에서 생지(빵 원료) 분할 중량을 맞추기 위해 왼손으로 분할기(반죽기) 내부에 있는 볼트를 조절하던 중 동료가 리프트의 배합볼(반죽볼) 하강 버튼을 실수로 누르는 바람에 작동한 배합볼이 내려와 리프트 사이에 몸이 끼였다.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업무량이 적어 여유가 있었다면 리프트에 들어가서 작업할 때 배합볼을 분리한 다음 했을 수 있다”며 “작업에 쫓기다 보면 볼을 분리하고 밸브를 조정한 다음 다시 볼을 끼울 새 없이 다음 작업에 바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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