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 위원장을 비롯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 11명이 16일 오전 샤니 성남공장을 찾아가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현장조사를 했다. <정기훈 기자>

SPC그룹 계열사 샤니 성남 제빵공장의 50대 노동자 고아무개(55)씨 사망사고의 경위가 일부 드러났다. 2인1조로 작업하던 중 경보 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동료가 반죽 기계 작동 버튼을 눌렀을 때 고씨가 대피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문제를 일으킨 리프트에는 ‘안전센서’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장치에 결함이 있었다면 사전에 점검했는지도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비공개 현장시찰, 사고 경위 일부 확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16일 오전 10시 경기 성남시 샤니 제빵공장을 현장시찰한 결과를 이날 취재진에게 일부 공개했다. 사고 8일 만이다. 이날 현장시찰에는 환노위 의원 11명이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박정 환노위원장을 비롯해 이수진·김영진·윤건영·이학영·전용기·진성준 의원이, 국민의힘에서는 임이자·김형동·지성호 의원이, 정의당은 이은주 의원이 참석했다.

샤니에서는 이강섭 대표이사·공장장·관리팀·안전보건사무국장 등 4명과 박인수 식품산업노련 샤니노조 위원장과 이승열 부위원장이 동석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과 민길수 중부고용노동청, 양승철 성남지청장 등 노동부 관계자들도 현장을 방문했다. 현장시찰은 환노위 의원들과 샤니 대표의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로 약 40분간 진행됐다.

현장시찰 결과, 예상되는 ‘가설’이 나왔다. 고씨는 지난 8일 오후 12시33분께 치즈케이크 생산공정 중 사고를 당했다. 증기라인에서 생지(빵 원료) 분할 중량을 맞추기 위해 왼손으로 분할기(반죽기) 내부에 있는 볼트를 조절하던 중 동료 A씨가 리프트의 배합볼(반죽볼) 하강 버튼을 실수로 누르는 바람에 작동한 배합볼이 내려와 ‘배합볼’과 리프트 사이에 몸이 끼였다고 추정된다.

사실상 ‘동시 작업’이 이뤄진 정황이 짙다. 분할기 위의 호퍼(분할기 상부에 부착된 사각 스테인리스 용기)에 생지를 넣는 작업을 마친 A씨가 품목 교체 과정에서 고인에게 노즐을 건네받아 세척대로 이동하다가 리프트 버튼을 눌러 배합볼을 둘러싼 장치와 리프트 사이에 고씨 복부가 눌린 것이다. ‘노즐 교체’작업과 ‘세척’작업이 같이 이뤄졌다고 볼 여지가 있다.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16일 오전 10시 경기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샤니 제빵공장의 사고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16일 오전 10시 경기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샤니 제빵공장의 사고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안전센서’ 없고 경보음은 안 울려

문제는 ‘장치 결함’에 대한 ‘안전 점검’이 평소 이뤄졌는지다. 사고가 난 리프트에는 끼임을 감지해 멈추는 ‘안전센서’도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위원들은 현장시찰에서 시연한 다른 층의 리프트 기계는 경보음과 경광등이 모두 설치됐다고 밝혔다. 해당 기계의 경보 장치가 울리지 않은 이유가 고장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박정 위원장은 현장시찰 직후 “다른 유사한 기계와 비교했을 때 경보음이 울리지 않은 것을 볼 때 경보 장치가 고장 난 상태였던 것이 아닌지 추정된다”며 “배합볼이 빠진 상태에서 공간을 확보하고 순차적으로 작업해야 했는데 (사수와 부사수 작업이) 동시에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수진 의원은 “시연한 기계에는 굉장히 큰 소리로 경보음이 났다”며 “위험 표시 포스터나 경광등도 있어 사고가 난 기계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사고가 난 기계는 반죽볼이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약 40초가 걸리는 다른 기계보다 20초가량 빨랐다고 했다. 위원들은 현장 CCTV 영상도 노동부에서 받기로 했고, 안전수칙과 관련한 교육과 설비 점검도 이뤄졌는지 향후 자료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비 결함’ 사전 미점검, 법령 위반 소지

사고 현장에는 5명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경보음이 울리지 않아 고인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사각지대’가 존재했는지도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박 위원장은 “동료가 반죽을 긁어서 (반죽기에) 넣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고씨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며 “경보 장치 고장인지,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는지는 수사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지난해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밝힌 안전예산 1천억원 중 180억원이 샤니 공장에 투입됐다고 한 사측 조치와 관련해서는 “제대로 투자가 안 된 것 같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샤니 공장에 조기 투자하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강섭 샤니 대표는 현장시찰에 앞서 진행된 모두발언에서 “사업장에서 다시는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한 산업현장을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측은 배정된 180억원 중 46억원이 집행됐다고 밝혔다.

‘경보 장치 미작동’이 수사결과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밝혀진다면 산업안전보건 법령에 위반 소지가 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3호에 따르면 경영책임자는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고, 유해·위험요인의 확인 및 개선이 이뤄지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결함이 있는 ‘경보 장치’를 주기적으로 점검하지 않아 경영책임자가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예상이 가능하다. 이강섭 대표와 안전보건총괄책임자, 나아가 허영인 회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을 어겼는지도 조사할 지점이다. 안전보건규칙 92조는 사업주는 기계 정비·청소·교체 등 유사한 작업을 할 때 노동자가 위험할 우려가 있으면 운전을 정지하도록 한다. 또 ‘기계 또는 방호장치 결함’이 발견된 경우 반드시 정비한 후에 작업자가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공장 리프트 기계 경보 장치의 결함이 있었다면 정비가 필요했는데, 이를 사전에 어느 정도 실시했는지 살펴야 할 대목이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안전작업표준서’ 이행 여부도 관건

실제 사측이 의원실에 제출한 ‘안전작업표준서’를 보면 “작업 전 작동센서 및 비상정지 작동 유무 확인” “협착 경고 표지 부착” 등이 적혀 있다. 안전센서와 경보 장치 작동 여부를 사전에 파악했는지 의문이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경보 장치도 일종의 안전장치라고 봐야 한다”며 “그런데 이를 점검하도록 하는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이 들고, 매뉴얼에 세부사항이 정하고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안전 장치 점검에 대한 관리·감독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한편 공동행동은 이날 샤니 공장 앞에서 사고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사고 경위가 무엇인지, 사고 당시 고인이 어디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끼임 장소가 정확히 어디인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며 “SPC그룹과 허영인 회장은 사망사고 현장과 관련 자료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동행동은 △작업표준서 이행 여부 △재해자 작업 환경 △안전센서 부착 여부 △리프트 전원 차단 연동 여부 △위험성 평가 여부 △재발방지대책과 이행조치 여부 △동료 작업자 진술 여부 등 19가지 의혹에 대해 규명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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