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노동자들의 과로를 막기 위해 지정한 '택배 없는 날'인 14일 쿠팡 택배노동자가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배송 업무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고객이 탔을 때는 기다렸다가 (배송)해야 해요.”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주민이 내리자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 박정형(가명·50)씨가 외워 둔 층의 버튼을 눌렀다. 6층, 4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배송물품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지듯 떠났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반쯤 걸친 채 그는 문 앞에 물품 배송했음을 인증하는 사진을 찍어 앱에 올렸다. 배송 물품 나르기, 인증 사진찍기, 프레시백(다회용 배송상자)·반품상품 회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수 초간 이뤄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까 염려해 열림 버튼을 누르던 손이 머쓱했다. 두 집을 배송했을 뿐인데 그의 얼굴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지난 14일 <매일노동뉴스>가 쿠팡 퀵플렉서로 일하는 박씨의 뒤를 쫓았다. 특수고용직 택배기사에게 주어진 유일한 휴일, ‘택배 없는 날’에도 박씨는 일을 쉬지 못했다.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택배, 로젠택배 등 주요 택배사들은 택배 없는 날에 동참했지만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퀵플렉스 배송기사는 1년 365일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며 택배 없는 날 동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택배 없는 날은 주 1회 쉬고, 여름휴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택배노동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날 하루를 제공해 준다는 의미를 갖는다. 2020년 택배노조, 고용노동부, 한국통합물류협회, 주요 택배사들의 사회적 합의로 제정됐다.

“고객 클레임 걸리면 잘려요”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택배 없는 날에도 박씨의 일과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오전 8시30분께 집에서 나와 아이스티와 커피를 탄 텀블러를 차에 실었다. 9시까지 캠프로 출근한 박씨는 오전 11시30분이 돼서야 본격적인 배송에 나섰다.

“오늘은 택배 없는 날이라서 그런지 물건이 좀 많았어요.”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쯤 늦은 그가 평소보다 배송이 지체된 이유를 설명했다. 아파트를 배송하는 박씨의 배송구역은 택배기사들 사이에서는 배송하기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태풍 ‘카눈’이 떠난 뒤 다시 돌아온 무더위가 그를 괴롭혔다. 맺힌 땀이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자 눈이 따가운지 껌벅였다. 다른 동으로 이동하기 위해 운전석에 타자마자 수건을 찾아 얼굴을 훔쳤다.

“복도식은 엘리베이터 잡고 있으면 욕먹어요. 안 잡아도 돼요.”

엘리베이터에 탄 그가 쿠팡 퀵플렉스 업무용앱에 뜨는 배송지를 살피며 배송 층을 눌렀다. 물건만 먼저 내려놓은 뒤 맨 윗층에서부터 걸어 내려오면서 배송을 시작했다. 무엇이 들었을지 가늠조차 안 되는 배송물품 여러 개를 한 손에 꼭 쥔 그는 탄산수 20개 한 박스를 다른 한 손으로 번쩍 들었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고객들에게 클레임(민원) 걸리면(들어오면) 그냥 잘린다”며 “절대로 고객들과 싸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빠르게 적시에 배송하되,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게 철칙인 셈이다.

땀이 비오듯 흐르자 그는 얼음물을 꺼내 마셨다. 통상 집에서 500밀리리터 생수 6~7병을 챙겨 온다고 했다. 많은 것 같지만 하루 만에 다 먹는다고 한다. 차 안에는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커피맛 사탕과 식염포도당이 놓여 있었다. “폭염 안전” “재난안전 구호 물품”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일하기 전에는 식염포도당이 뭔지도 몰랐다”던 그는 일을 시작하기 전과 일 중간중간에 식염포도당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고 했다.

쿠팡과 고객 간 약속
퀵플렉서에게는 법, 못 지키면 ‘클렌징’

▲ 낮 기온이 32도를 웃돌았다. 쿠팡 택배노동자가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다. <정기훈 기자>
▲ 낮 기온이 32도를 웃돌았다. 쿠팡 택배노동자가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다. <정기훈 기자>

오전에 일하는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는 2회전 근무를 한다. 2회전 근무란 오전에 한 차례 캠프에서 물건을 싣고 나와 배송을 한 뒤, 오후 3~4시께 캠프에 다시 들어가 물건을 싣고 나와 배송을 하는 것을 뜻한다. 신선식품의 경우 오후 8시 전까지, 다른 일반 상품은 자정 전까지 배송을 마치는 것이 원칙이다. 점심을 챙겨 먹을 여유는 없다. 그는 보통 캠프에 다시 들어가는 때 편의점 김밥으로 끼니를 떼운다고 했다.

“여기 다이아(몬드) 표시 있잖아요. 이걸 저녁 8시 전까지 배송해야 해요. 시간 맞춰 배송해야 하니 (오후에 캠프에서 들고나오면) 먼저 다이아 물건만 배송 돌리고 하다 보니 한두 시간씩은 까먹어요.”

시간제한이 없다면 자신이 정한 배송 동선에 따라 물건을 배송하면 되는데 쿠팡이 고객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배송 비효율’이 생기는 셈이다.

제때 배송을 하지 못하거나, 고객이 요청한 프레시백이 제때 회수되지 않는 경우 모두 ‘클렌징(구역 회수)’ 사유가 된다. 택배기사에게 배송할 구역을 잃는 것은 일터를 잃는 것이라 해고와 다르지 않다.

클렌징은 쿠팡이 직접고용해, 관리·감독하던 쿠팡친구(옛 쿠팡맨)가 아닌 쿠팡 퀵플렉서에게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일정 정도의 배송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CLS가 대리점에 공지한 클렌징 사유는 1일당 2회전 배송업무 미수행, 대리점의 월 배송 수행률 95% 미만, 명절 당일배송률 40% 미만, 휴무일 배송율, 예정된 날짜에 배송해야 하는 비율 0.5% 이상 등이다. 이런 요건은 쿠팡이 고객과 약속한 배송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직접·관리 감독이 아닌 대리점 간, 기사 간 경쟁을 통해 간접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이다. 직접 지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플랫폼 기업의 전형적인 행태다.

“쉬면 수입 줄고, 동료 피해”
소규모 대리점은 백업기사도 못 구해

▲ 프레시백 회수를 하고 있다. 배송 업무 내내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정기훈 기자>
▲ 프레시백 회수를 하고 있다. 배송 업무 내내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정기훈 기자>

쿠팡 퀵플렉서로 일한 지 3년 차가 된 박정형씨는 통상 주 하루를 쉰다.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업무를 대신할 동료기사에게 미안한 마음도 일을 쉬지 못하는 이유다. 택배기사가 쉬더라도 쿠팡이 대리점에 부여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고, 쿠팡이 원하는 수준의 배송률 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CLS는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하지 않는 이유로 대리점이 백업기사를 두고 있어서 “1년 365일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CLS의 설명이 현실과 거리가 있는 이유다.

CLS가 이야기하는 백업기사수는 대리점마다 편차가 있다는 게 택배노조 설명이다. 택배기사가 구역을 비우면 백업기사가 업무를 대신하는데, 일종의 대체인력인 백업기사를 많이 고용할 수록 대리점은 손해다. 백업기사를 놀리지 않고 계속 부리려면 기사들의 쉬는 날(통상 주 1회)을 계산해 백업기사를 고용한다. 퀵플렉서가 다치거나, 불가피한 개인 사정으로 구역을 비울 경우 난감해지기 십상이다.

대리점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물량은 쿠팡 직접고용 기사인 쿠팡친구가 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리점 배송률에 계산되지 않는다. 배송하지 못함에 따른 페널티가 유지된단 의미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연차를 붙여 여름휴가를 보내는 일은 그림의 떡이다.

박씨는 “큰 규모의 업체들은 과거에 대체기사를 많이 구해 뒀는데, 몇 년 안 된 업체는 백업기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택배기사가) 7~8명인 대리점도 많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고정된 휴일이 없다. 그의 대리점은 쉬는 날을 순번제로 돌린다. 휴일에 쉬고 싶은 노동자 마음은 매 한 가지라 대리점주가 고안한 자구책이다. 주 1회 휴무다. 물론 무급이다.

퀵플렉서 상황 점점 열악해져
“일을 지키기 위해 노조 하는 것”

“저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이 일을 지키기 위해서 노조를 하는 거예요. 그건 꼭 말하고 싶어요.”

박씨가 꼭 좀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가 쿠팡 퀵플렉서로 처음 일하기 시작할 때 배송 건당 단가는 770원이었지만 언제부턴가 700원으로 내려갔다. 퀵플렉서의 일이 아니던 잡무도 늘고 있다. 과거에는 상품이 반송되면 캠프에서 송장만 뽑아 해당 상품에 붙여 두면 됐는데 현재는 스캔업무까지 수행하고 있다. ‘헬퍼’라고 불리는 인력이 분류작업을 수행해 주고 있지만 과거보다 세밀한 분류가 이뤄지지 않아 기사끼리 자신의 물품을 또 다시 나눠야 하는 상황이다. 알게 모르게 노동강도는 늘어났지만 충분한 설명은 없다.

박씨가 사측 눈 밖에 날 위험을 무릅쓰고 노조를 하는 이유다. 주 6일 밤낮으로 근무하는 탓에 노조할 시간도 마땅찮은데 시간을 쪼개 노조활동을 하니 몸은 더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노조 하기 전보다는 행복하다.

점점 열악해지고 있는 근무환경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프레시백 회수율이 90~95% 수준이 되지 못하면 클렌징 사유가 됐지만 노조의 계속된 문제제기로 프레시백 회수 기준일 주간 60%, 야간 40%로 조정됐다. 고객이 신선식품 보존을 위해 넣은 얼음팩을 버리지 않으면 기사가 대신 얼음팩 안 물을 버리고 정리해야 하는 일도 하지 않게 됐다.

그는 노사가 생긴 뒤 바뀐 것을 꼭 좀 전해 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다시 배송에 나섰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CLS는 14일 택배 없는 날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도 쉬게 해 달라는 요구가 들끓자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퀵플렉서(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역시 택배 없는 날이 아니어도 용차 비용 부담 없이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구조를 도입했다”며 “민주노총은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쉴 수 있는 택배기사의 선택권을 빼앗고 소비자와 판매자, 그리고 택배기사 모두의 불편을 초래하는 선동을 멈춰 주시길 촉구”한다고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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