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3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두 번째 법안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을 사실상 폐지하는 내용의 수사준칙이 지난달 31일 입법예고되면서 논란이 거세다. 검찰이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을 본격화한 것이다. 특히 ‘노동 사건’이 송치 전 검경이 의견을 제시·교환할 수 있는 중요사건에 포함됐다. 검찰의 수사 개입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져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더욱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검찰이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기조를 강화하는 모양새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 사건’ 검찰 직접수사 길 턴 개정안

법무부는 시행령인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 준칙에 관한 규정(수사준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 기간은 1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다. 시행령인 탓에 국회 심의 없이 국무총리와 대통령 재가만 있으면 개정안은 11월1일부터 시행된다. 경찰의 보완수사 전담 원칙을 폐지하고 검경이 사건의 특성에 따라 수사를 분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뼈대다.

송치 전 의견 제시·교환 대상인 중요사건의 유형에 ‘노동·집단행동’ 사건이 추가로 명시된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조직범죄·대공·정당·정치자금 관련 사건도 포함됐다. 법무부는 ‘송치 전 협력 활성화’라는 이유로 “협의 대상으로 예시된 항목에 범죄수익 환수 조치를 추가해 검경 협력이 보다 확대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넘기기 전에 검찰의 수사 개입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이른바 ‘검수완박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인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에도 노동 사건은 여전히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개정안 시행 이후 검찰의 직접수사 사건이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로 축소됐지만, 법무부는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직접수사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근로기준법 105조는 ‘노동관계 법령’에 따른 수사는 검사와 근로감독관이 전담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토대로 법무부는 지난해 상반기 ‘검찰청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며 근로기준법은 특별법 성격이라 일반법인 ‘검수완박법’보다 우선한다고 설명했다. 노동 사건 수사가 ‘공안부서’에 배당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은 형사10부를 공안 사건을 전담하는 공공수사3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검찰의 수사 의지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공수사3부는 노동·집단행동·중대산업재해 등 인지사건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공공수사3부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이 대검찰청과 수사 과정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공공수사3부는 노조와 시민단체 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올해 4월 건설 현장에서 금품을 갈취하고 노조 조합원을 채용하도록 강요한 혐의 등으로 건설노조 간부들을 기소했고, 지난달에는 뒷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한국노총 전직 간부 사건을 경찰에서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의 일반교통방해 및 업무방해 혐의 사건도 맡고 있다.

“경찰 수사단계서 검찰 개입, 노골적 의지”

다만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노동 사건은 ‘송치 이후’ 단계였다. 검찰이 주문하면 경찰이 보완수사에 나서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 수사준칙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송치 이전부터 검찰이 개입할 여지가 커진다. 이용우 민변 노동위원장은 “경찰의 송치 전에도 검찰이 의견을 제시한다거나 교환할 수 있는 대상 범죄를 확대한 것”이라며 “경찰 수사단계부터 검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집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공무집행방해죄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경찰이 입건하고 수사할 때부터 검찰이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의견 제시·교환 대상에 포함됐더라도 직접적인 수사 지휘가 아니라 ‘단순한 의견표명’에 불과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법조계는 경찰이 사실상 검찰의 지휘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고 우려한다. 이용우 위원장은 “검찰은 수사지휘권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 구속받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검찰이 참고하라고 의견을 표명하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경찰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수사지휘권이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수사준칙 개정안에 정부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이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집회나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문하니 검찰이 과거 공안부에서 했던 노동 사건들을 중요사건에 추가로 명시했을 측면이 크다”며 “경찰만이 아니라 법무부나 검찰까지 노동자들을 공안으로 탄압할 통로가 열렸다”고 비판했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정부가 관심을 가지는 사건이라면 검찰이 주도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중대재해 사건도 여러 방식으로 경찰을 압박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전경. <자료사진 홍준표 기자>
▲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전경. <자료사진 홍준표 기자>

‘시행령 통치 가속화’ 법조계 “수사지휘권 부활”

이처럼 법조계는 검찰이 수사준칙 개정을 통해 전반적으로 경찰의 수사 권한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를 내비쳤다고 평가한다. ‘부패·경제범죄 등 중요 범죄’ 문구에서 ‘~등’을 활용해 시행령을 바꾸는 ‘꼼수’로 입법 취지를 몰각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수사준칙 개정안은 노동 사건을 중요사건에 포함한 부분 이외에도 보완수사에 대한 경찰 전담 원칙을 폐지하고 검경이 개별 사건의 특성에 따라 사건을 분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시행된 검수완박법에 따르면 경찰이 수사개시권을 갖는 범죄는 경찰만이 보완수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경찰 전담 원칙을 폐지하고, 경찰에 부여된 1차적 수사종결권을 축소시켰다. 사건 수리 후 한 달이 지난 사건이나 송치 이후 검찰이 피의자에 대해 이미 상당한 수사가 이뤄진 경우 등에서는 검찰이 보완수사를 하도록 했다. 또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검사의 재수사 요청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 검사가 사건을 송치받아 마무리할 수 있게 된다.

현 정부 들어 하위 명령·규칙 개정을 통해 모법을 무력화하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 검찰청법 시행령인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검찰이 직접수사를 할 수 있는 범죄유형을 대폭 늘렸다. 전문가들은 검찰이 대통령·여당과 보폭을 맞추는 방식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정치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지 않은 채 시행령을 통해 통치하는 방식으로 일관하는 것은 법치 확립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상급 검찰총장 역할을 하면서 노동이나 집단행동 사건을 검찰이 가져가 정국 운영의 틀을 잡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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