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도연 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자문위원
(노무법인 청춘 대표 공인노무사)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시행령을 개정할지 아니면 완화하는 방식으로 개정할지 알 수 없다.

경영계는 그동안 줄기차게 중대재해처벌법 2조(정의)9호와 관련 ‘경영책임자 등이란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로 규정한 부분을 개정할 것을 요구해 왔다. 경영계의 요구사항은 같은 법 제2조 9호의 ‘이에 준하는 사람’을 시행령에 ‘법인의 정관, 이사회 의결을 통해 안전보건조직, 인력, 예산을 관리하도록 책임을 위임받은 사람’으로 구체화하고 ‘안전보건관리를 담당하는 이사(CSO) 등이 선임된 경우 사업대표는 책임을 면한다’는 규정을 삽입하자는 것이다.

만약 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경영계가 요구하는 대로 개정한다면 헌법 75조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어 위법한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위임입법의 한계 때문에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치 않다. 왜냐하면 윤석열 정부는 이른바 ‘검수완박’ 관련 더불어민주당이 법률상 검사의 수사권을 제한했으나 시행령 개정으로 검수완박법을 무력화시킨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생 노조운동에 투신하다가 노동부 장관이 된 이정식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경영계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 아닌 윤석열 정부의 노동부다. 노동부 장관이 시행령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더라도 그대로 신뢰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노동부는 지난 9월1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과 관련해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 경영자측의 주된 주장은 △법률 규정의 여러 문제점들로 인해 아직까진 산재사고가 감소하지 않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고 있으며 △중대재해처벌법만으로는 ‘이에 준하는 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려워 시행령 개정으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동자와 경영자를 이분법으로 바라보고 수천억원대 이익을 올리는 기업 CEO를 대상으로만 처벌을 강화하면 실제 처벌을 받는 건 근로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상시근로자 50명 미만 작은 기업 사업주들일 수 밖에 없으므로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법 적용시기를 최소 2년 이상 연기해야 한다고 경영자측은 주장했다.

반면 노동자측 주된 주장은 △일부 정부부처와 경영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시행령에 위임되지 않는 것까지 개정을 요구하고 있고 △아직 시행된 지 반 년밖에 안 된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는 쪽으로 개정하는 건 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며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령은 이미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면책될 수 있도록 규정됐으므로 이제는 노·사·정 모두의 노력으로 현장에 안착하도록 노력할 때라는 것이었다. 경영계는 처벌보다 예방이 우선이라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예방을 미끼로 한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에 지나지 않으며,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은 다른 국가의 유사한 중대재해처벌법보다 경영책임자의 의무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와 같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경영계와 노동자측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관련해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SPC(파리바게트) 자회사 SPL평택공장 샌드위치소스 배합공정에서 2인1조가 공정을 수행해야 하는데 혼자서 작업하다가 23세의 여성작업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중대시민재해에 해당될 만한 사고가 이태원에서 발생해 156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중대재해가 계속 발생되고 있는 이 시점에 기왕의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소한 5년 이상 시행해 본 후 충분한 통계를 가지고 그때가서 다시 검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보다 더 합리적이리라 본다.

윤석열 대통령은 SPL 사고가 발생하자 경위 파악을 지시하는 등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또한 이태원 사고가 발생하자 매일 빈소를 방문하는 등 진정성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보이는 눈물이 ‘악어의 눈물’인지 ‘천사의 눈물’인지 올해 말에 개정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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