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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원도에서 근무하는 교무행정사 ㄱ씨는 10여년간 ‘악성 민원인’과 다툼으로 인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얻어 2021년 업무상질병 판정을 받았다. 민원인은 ㄱ씨의 답변과 표현을 꼬투리 잡아 2014년부터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한 가지 안건을 문장만 바꿔서 수차례 정보공개 청구하고 국민신문고에 청원을 넣고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다양한 명목으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했다. ㄱ씨는 경찰서, 검찰, 법원에 수시로 출석해 증언해야 했기 때문에 개인 생활과 학교 근무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다. 소송은 모두 기각되거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민원인은 무고죄로 법정구속 됐지만 출소한 후 또 소송을 제기했다.

#2 경남의 한 초등학교 전문상담사는 새벽과 주말에도 학부모에게 문자 폭탄을 받아야 했다. 학생을 품지 않고 규칙을 강요해서 기분이 나빴다는 이유다.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답변을 안 하면 무시한다고 끊임없이 문자를 보냈다. 학부모는 도교육청에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내용의 민원을 넣었다. 학교에서는 이 문제를 조용히 넘어가기 위해 사과하는 내용의 답변을 작성하도록 요구했다. 거부하자 교감이 자의적으로 답변을 작성했다.

30일 학교비정규직노조와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강원지부에 따르면 학교 비정규 노동자들도 학부모 등으로부터 민원 전화를 받거나 대면하면서 폭언을 듣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시·도교육청에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에 소극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안전보건법 41조(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등)에 따라 모든 노동자들은 고객 폭언 등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민규 교육공무직본부 조직국장은 “법 41조 적용 대상이 고객응대 근로자에서 전체 근로자로 개정이 된 지 2년 정도 됐는데, 민원 응대 매뉴얼이 갖춰지거나 보호조치를 하는 교육청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정호 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실장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민원인이 학교에 전화할 때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에 대한) 사전 안내 멘트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논의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직종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령에서 급식조리사 등 일부 직종을 제외하면 학교 현업종사자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개최, 산업안전보건교육 실시 등의 조항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일부 교육청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민원인 폭언·폭력으로부터 학교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충북교육청에서는 전문상담사 보호 조치가 심의·의결됐다. 노동계가 위클래스(학교 내 상담실)에 비상상황 발생 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가까운 거리에 비상벨을 설치하자고 요구했고, 미설치된 위클래스 규모를 파악한 후 본예산 편성시 반영하는 방안을 담았다.

교육공무직도 교원처럼 민원인으로부터 소송을 당할 때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원은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등으로 소송에 휘말릴 때 각 시·도교육청에 설치된 교원치유센터에서 민·형사상 소송비용과 심리상담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교육공무직은 교원에 해당하지 않아 지원받을 길이 없다. 최민혁 교육공무직본부 강원지부 정책국장은 “ㄱ씨의 경우 법률 지원을 요청했으나 지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됐다”며 “대상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교권보호 일환으로 학부모 민원 업무가 학교 비정규직에게 떠넘겨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25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부 기관에서도 민원을 통합으로 접수한 뒤 해당 과에 보내서 처리하고 결과를 다시 통보하는 방식”이라며 “1차적으로 별도 창구를 만드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교사가 일부 학부모 민원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는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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