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

19년 만의 보건의료노조 산별총파업투쟁이 종료됐다. 의제, 규모 모든 면에서 역대급 투쟁이었다. 워낙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은 파업이다 보니 다양한 분석과 평가가 나온다. 보다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장기파업 기조에서 왜 이틀로 마무리했나?

처음에는 민주노총 일정에 따라 이틀 총파업을 결정했다. 이후 7대 요구에 대한 교섭이 전혀 진전이 없자 무기한 총파업으로 전면 수정됐다. 9·2 노정합의 주요 사항들이 이번에는 현장에서 구체적 변화로 나타나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하지만 조정신청 이후 보건복지부와 고위급 면담, 노정합의이행 점검회의에서 논의가 진전되면서 지난 7일 대의원대회에서는 다시 2일 전면총파업을 기본으로 하되 논의가 막히면 무기한 전면총파업을 하기로 했다. 이날 지도부는 교섭 진전 여부에 따라 하루 총파업 후 현장교섭 전환이라는 전향적인 수정안을 냈지만 부결됐다.

파업 장기화를 막은 것은 파업 막전막후에 핵심 쟁점을 두고 집중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파국을 막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복지부가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고 언론의 집중비판을 받은 탓인지 겉으로는 노조 7대 요구가 교섭대상이 아니라며 ‘노정교섭 불가’를 외쳤지만 노조에게 ‘충분히 설명’ 한다는 명분으로 몇 차례 논의를 했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내용적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공식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필자는 그런 복지부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분노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노조의 파업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대통령 치하에서 어느 공무원이 노조가 파업 중인데 노정합의에 나설 용기가 있었을까? 그럼에도 확신한다. 파업 전과 파업 후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이미 7대 요구, 특히 간병비 해결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확대, 환자안전을 위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대 5명, 토사구팽 위기에 몰린 코로나 전담병원 지원확대는 이제 노조 요구를 넘어 국민의 요구가 됐다. 시행시기는 더욱 당겨질 것이고 현장에서 구체적 변화는 보다 많은 국민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 같이 지켜보자.

합의서 없는 파업 종료, 문제제기 없었나?

지난 13일 총파업대회가 진행됐다. 2만명이 빼곡히 세종대로를 채웠다. 대회 내내 폭우가 쏟아졌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이탈 없이 그 자리에서 비를 흠뻑 맞으며 대회를 사수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기자가 ‘극한 직업’의 보건의료노동자라 ‘극한 호우’에도 한 치의 흔들림없이 자기 자리에서 7대 요구를 외친다고 했다. 그런 모습에 전율을 느낀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파업해야 한다. 그래야 코로나19 팬데믹 3년4개월 동안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고 우리의 요구가 얼마나 국민건강과 직결되는지 국민이 알 수 있다”며 “이번 파업은 대정부 파업이 아니라 대국민 호소다”라고 한 지부장의 말에서도 이번 파업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현장 조합원들이 이런 절실함으로 거리에 나왔기에 엄청난 폭우도 우리의 길을 막지 못했다. 2일차 파업에도 여전히 폭우가 쏟아졌지만 서울, 세종, 부산, 광주 4대 거점 총파업대회에는 첫날보다 더 많은 조합원이 참가했다.

이런 현장 분위기는 지난 14일 파업 투쟁본부 결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교섭과 파업상황에 대한 합의서가 없지만 대다수가 산별총파업 종료에 동의했다. 이전 파업 마무리 때와는 사뭇 다른 장면이 연출된 것은 7대 요구의 특수성과 논의의 진전, 환자불편 가중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결과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 보태면 병원 파업의 어려움도 작용했다. 노조가 파업 수위를 높이면 “환자불편, 진료 차질이 커지면서 의료대란, 환자 생명을 볼모로 한 파업”이라고 비난받는다. 그런 점들을 고려해서 파업 수위를 낮추면 “노조 파업해도 병원은 정상진료, 노조 파업에 조합원도 등 돌려, 노조 조직력 한계 드러나” 라면서 전혀 다른 비난을 한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이럴 때 노조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그 사이에서 균형감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병원 노조의 고충을 말하고 싶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노조가 파업할 때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의 특수성을 감안해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에는 노동법에 따라 필수업무유지 인력을 배치하고, 별도로 노조가 응급대기반을 가동,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파업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나아가 노사가 긴밀한 협의하에 경증환자 전원과 퇴원, 신규환자 예약 연기 등을 통해 환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에 노력한다. 이번 파업 기간에 언론에 불거진 국립암센터와 양산 부산대병원에서의 환자 집단 퇴원사태는 병원이 과잉대응으로 노조 파업에 나쁜 여론을 덧씌우기 위한 의도가 엿보이는 이례적인 장면이다. 물론 이 모든 노력도 파업이 장기화되면 상황이 극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사용자는 진정으로 환자불편과 안전을 생각한다면 가능한 파업까지 가지 않기 위한 선제적 노력을 다 해야한다. 그런 진정성이 확인된다면 노조 또한 적극 협력할 것이다.

‘근본적인’ 환자 불편 해소와 국민건강권 실현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눈앞의’ 환자 불편에 대해 노조는 파업이 끝나면 늘 머리 숙여 환자와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 그런데 파업사태의 실질적 원인을 제공한 정부와 사용자, 정말 힘 있고 돈 있는 분들의 진정 어린 사과와 책임있는 발언을 파업 이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총파업은 간호법 투쟁의 연속선상에 있는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 기자들에게서 나왔다. 총파업은 간호법 투쟁 연속선상에 있는가? 당연한 답변이지만 이번 총파업은 간호법 투쟁과는 결이 다른 투쟁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의 모든 노동자, 50여개 직종 조합원이 있기 때문에 늘 직종 간 협력과 연대를 우선시한다. 이 원칙이 깨지면 전체 단결이 어렵다. 보건의료노조가 간호법 제정을 지지했던 것은 간호법이 단순히 간호사를 위한 법이여서가 아니라 의사 중심,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법 한계를 넘어 간호사들의 역할 확대와 처우개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직종협회에서도 유사한 법안을 낸다면 지지할 것이라는 점을 누차 밝혀 왔다.

하지만 간호법을 둘러싼 논란이 컸던 만큼 일부에서는 이번 보건의료노조 파업을 ‘간호법 논란 2라운드’로 보고 간호사 중심의 파업이라고 갈라치기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드러냈다. 대외적으로 근무조당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대 5명 요구가 부각됐지만 이것은 간호사만을 위한 요구보다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 안전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 학술적으로 공인된 핵심 정책이기에 포함된 것이다. 총파업 7대 요구에는 간호사 요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 포함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6개 직종 적정인력 기준을 만들고 직종 간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하고, 모든 보건의료 노동자에 적정보상을 하라는 것이 핵심요구에 들어가 있다. 코로나 전담병원 지원 확대도 특정 직종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공병원 종사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에 의사 조합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인력 확충을 주요 요구로 하는 것은 의사인력 부족으로 PA간호사 등 불법의료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고, 환자 안전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모든 보건의료 노동자를 위한 파업인데도 간호법 제정 반대로 뭉친 의사협회 포함 14개 직종협회가 파업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환자 생명 위협 운운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연 것은 상도덕(?)을 넘어선 갈라치기식 부도덕한 정치선동에 가깝다. 자신들의 직종협회 회원들이 조합원으로서 파업에 참가하는데 사용자단체인 의사협회와 같이 손잡고 버젓이 파업 비판 성명서를 함께 낭독한 것은 누군가가 이를 부추겼다는 소문과 별개로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납득키 어렵다. 직종협회가 현장 직종 노동자들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협회 산하 직종 관리자협회’인지 ‘직종 교수협회’인지 그 정체성을 다시 묻게 된다.

산별 노사관계 필요성 재확인, 입법 논의로 이어져야

노동운동하는 이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단 하루라도 한날한시에 하나의 요구를 내건 총파업’을 해야 노동운동이 산다고. 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다. 대다수 산별노조가 ‘무늬만 산별’이라고 비판받는 것은 여전히 활동은 기업별교섭이 주를 이루면서 현장이 기업별 의식, 실리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적 한계를 너무 잘 알기에 이번 보건의료노조 산별총파업이 주목받는다. ‘기업별교섭(부분적 집단교섭) →산별 공동요구 → 시기집중 →산별공동파업’을 성사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산별총파업투쟁을 위해 보건의료노조는 1년 이상을 꾸준히 준비했다. 조직 내부에서 수 차례 교육과 토론, 의제를 국민에 알리기 위한 6차례 이상 국회토론회와 현장증언대회, 3차례의 대국민 여론조사, 2차례 현장실태조사, 지하철과 버스 광고, <덕분에 라더니, 영웅이라더니 의료현장의 민낯을 증언하다>라는 책 출판을 통해 의료현장의 절실한 문제를 사회공론화하려고 노력했다.

멀리는 2021년 공공의료확충, 의료인력 처우개선을 위한 보건복지부와 노정합의라는 승리적 경험, 2022년 산별노조운동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2박3일 정책대회를 통한 산별노조로서의 자부심 형성이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산별노조로서 인적·물적 집중을 통한 파업기금확보와 조직력도 큰 힘으로 작용했다.

8만5천여명의 조합원 중 6만4천여명이 91.6% 찬성률로 파업권을 확보했고, 이틀 동안 연인원 4만여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단 하루라도 한날한시에 하나의 요구를 내건 총파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번 총파업투쟁을 둘러싼 정치파업, 불법파업 논쟁은 아쉽다. 국민이 지지하는 요구, 현장의 공동요구를 풀기 위해 초기업 산별교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불법파업 정치파업이라는 정치프레임 뒤에 숨어 정부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충분한 의료인력 확충이 이뤄져야 환자들에게 보호자 없는 병원인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을 전면 확대할 수 있다.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대 5명을 통해서 보다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의료는 공공재다. 국민건강보험은 모든 의료기관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제대로 된 혜택을 받으려면 정부가 적절한 제도를 만들고 사용자가 의료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정부나 사용자의 역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책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정부는 그동안 중단된 각종 의료정책협의체와 노정합의 이행점검회의를 가동해 7대 요구에 대한 구체적 시행을 준비해야 한다. 상반기에 산별교섭 활성화 5만 입법청원을 달성한 만큼 하반기에는 국회에서 ‘불평등 양극화,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초기업 산별교섭 활성화’ 논의가 본격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침 여야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안을 앞다투어 냈다. 진영 논리를 넘어 모든 이들을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 확대, 노사관계 혁신방안도 함께 모색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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