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건설이 시공한 광주시 남구 봉선동의 한국아델리움더펜트57 신축현장에서 추락한 리프트에 깔려 지난달 11일 목숨을 잃은 하청노동자 고 마채진(58)씨의 유족들이 지난 6일 오전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 대상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고 있다. <유족 제공>

“아버지가 두시간 동안 리프트에 깔려 있다가 발견됐다는 게 기가 막힙니다. 안전관리자 없이 혼자 작업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죠. 승강기 작업은 2인1조가 원칙인데, 만약 아버지가 혼자 왔다면 돌려보내는 게 원청 역할이 아닌가요. 그런데도 원청은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합니다.”

광주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지난 6월11일 1.2톤급 화물용 리프트(호이스트카)에 깔려 목숨을 잃은 고 마채진(58)씨의 장녀 혜운(32)씨는 9일 <매일노동뉴스>에 “원청 책임이 분명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학병원 외과의사로 일한다는 혜운씨는 “중증외상환자를 수없이 봤지만, 아버지 마지막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노동청 수사도 지지부진하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장소장 없이 홀로 작업, 원청은 ‘책임 회피’

사고는 광주 지역의 중견 건설사 ‘한국건설’이 시공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어났다. 마씨는 지난달 11일 한국건설이 시공한 광주시 남구 봉선동의 한국아델리움더펜트57 신축현장에서 추락한 리프트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하청업체인 C사 소속으로 리프트 자동화설비 설치작업 중이었다. 마씨는 사고 당일 하청 지시로 일요일에 출근해 일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문제는 사고 발생 두시간이 흐른 뒤에야 현장 안전관리자에게 발견된 점이다.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주변 CCTV와 마씨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오후 1시30분께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됐다. 안전관리자는 오후 3시33분께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블랙박스 영상에는 마씨를 찾아 급히 119에 신고하는 육성이 녹음됐다. 안전관리자가 작업 당시 현장에 없었던 것이 확인된 셈이다.

경찰과 소방관이 오후 3시46분께 현장에 도착했지만, 추락한 리프트를 움직이지 못했다. 이후 구조대와 리프트 업체 관계자가 와서야 겨우 꺼낼 수 있었다. 다음날 부검 결과 외인사(압사)로 확인됐다. 유족은 2박3일간 장례를 치렀다. 원청 팀장 A씨는 그날 장례식에 와서 장례비를 전액 부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장례식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원청은 지역에 사건이 알려지자 사고 열흘 만에야 유족과 접촉해 원만한 해결을 약속했다. 그러나 공염불이었다. 원청 상무이사는 지난달 30일 유족에게 전화해 “하청과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원청 “전부 책임 억울”

유족은 원청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한다. 혜운씨는 “상무이사는 원청이 책임을 전부 지는 건 억울하다는 취지로 얘기했다”며 “법적 처벌을 피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말하자 법을 피하지 않으려는 기업이 있겠느냐고 했다”고 분개했다. 이날 통화를 마지막으로 원청과의 연락은 끊겼다. 이에 대해 한국건설 안전관리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하청이 직접 나서 정리할 부분들이 있다”며 “하청이 쏙 빠지고 원청에만 처리하라고는 부분이 있어 (하청에) 협의를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고현장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이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상시근로자 50명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한국건설은 사원수 290명에 매출액만 올해 기준 2천400억여원에 달한다. ‘아델리움’을 주력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다. 혜운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하려고 책임비율을 최대한 하청에 떠넘기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2인1조 위반 진상규명은 ‘제자리걸음’

고용노동부 수사 진행도 ‘오리무중’이다. 사고 당일 작업중지 명령은 내려졌지만, 현장 안전관리자에 대한 소환조사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달 19일 1차 현장감식을 했다. 그러나 유족측은 사고 3주가 지나도록 조사 내용에 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이에 지난달 30일 진정서를 노동청에 제출하고 청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사고 현장은 의문투성이다. ‘2인1조’ 작업이 지켜지지 않았고, 안전관리자는 현장에 없었다. 혜운씨는 “원청 안전관리자가 경찰조사에서 사무업무가 있어 현장에서 이탈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리프트 낙하시 통상 30~50센티미터의 공간이 확보되게 설계하는데도 사고 당시 리프트가 바닥까지 충돌한 부분도 규명할 지점이다. 리프트 오작동에 대한 점검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기계 결함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라고 유족측은 주장한다.

유족측은 △작업계획서 작성 △위험성 평가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안전보건관리자 배치 △안전보건 관련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 및 개선 이행 점검 △중대산업재해 발생시 작업 중지 등 매뉴얼 이행 점검 △하도급 업체의 안전보건 확보조치 준수 여부 판단기준 마련 등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정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유형이다.

▲ 광주시 남구 봉선동의 한국아델리움더펜트57 신축현장에서 추락한 리프트에 깔려 지난달 11일 숨진 고 마채진(58)씨의 사고현장 모습. 마씨는 사고 발생 두시간 여만에 발견됐다. <유족 제공>
▲ 광주시 남구 봉선동의 한국아델리움더펜트57 신축현장에서 추락한 리프트에 깔려 지난달 11일 숨진 고 마채진(58)씨의 사고현장 모습. 마씨는 사고 발생 두시간 여만에 발견됐다. <유족 제공>

사고개요 파악 못 한 노동청, 2차 감식 예정

그러나 노동청이 사고 개요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유족측은 호소한다. 유족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한 후 노동청 담당자들과 면담했지만,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유족을 대리하는 박영민 공인노무사(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는 “면담 대표로 나온 산재예방지도과장은 사고 내용을 전혀 파악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며 “한국건설은 도급도 아닌 시공사라 당연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데 조사가 이뤄지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진정서에서 특별근로감독과 작업중지명령을 요구했다.

혜운씨도 “노동청 과장은 ‘한번 들어줄 테니 얘기해 봐라’ 식의 고압적 태도로 일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폐기물처리업체 조선우드에서 파쇄기에 몸이 끼여 아들 김재순씨를 잃고 광주·전남 노동안전보건지킴이로 활동 중인 김선양씨는 “휴일에도 작업거부권은 전혀 발동되지 않았다”며 “안전장비가 제대로 지급됐는지, 왜 안전관리자가 배치되지 않았는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6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원청 현장소장 등 안전관리 책임자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광주지방노동청은 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안전보건공단과 함께 2차 현장 감식을 벌일 예정이다. 광주노동청 근로감독관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고, 관계자 조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2인1조 수칙 위반 여부 등 법 위반 사항을 2차 감식에서 철저히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외손주 못 보고” 울먹인 유족

유족은 여전히 충격 속에 지내고 있다. 더딘 조사에 항의하기 위해 10일부터 광주 북구 한국건설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할 계획이다. 다음달 출산 예정인 고인의 장녀도 피켓을 든다. 그는 원청에 책임을 물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첫 외손주를 기다렸는데 안아보지도 못한 채 떠나셨어요. 사고 당일에도 가족들이 깰까 봐 혼자 씻고 나가신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이후 사고 현장이 생각나 너무 괴로웠어요. 한국건설이 서류를 조작할까 봐 걱정됩니다.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세우는 아파트 현장에서 사고가 난 만큼 원청에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당연한 게 아닐까요.”

▲ 한국건설이 시공한 광주시 남구 봉선동의 한국아델리움더펜트57 신축현장에서 추락한 리프트에 깔려 지난달 11일 목숨을 잃은 고 마채진(58·왼쪽)씨는 따뜻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고 유족들은 기억한다. <유족 제공>
▲ 한국건설이 시공한 광주시 남구 봉선동의 한국아델리움더펜트57 신축현장에서 추락한 리프트에 깔려 지난달 11일 목숨을 잃은 고 마채진(58·왼쪽)씨는 따뜻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고 유족들은 기억한다.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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